인도에도 워터파크가 있다. 물론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에는 갈 수도 없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 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풀 더위가 꺾이면 젊은이들이 워터파크에 간다. 우리도 딸아이를 데리고 한 번 가 본 적이 있다.
인도의 워터파크 입장할 때의 복장은 아주 엄격하다. 몸을 드러낸 수영복을 입을 수 없다. 비키니를 입을 생각은 꿈도 꿀 수 없다. 차라리 나 같은 사람한테는 더 마음 편한 곳이다. 해녀들이 입을 법한 수영복 아닌 수영복을 입고 젊은이들이 더위를 식히며 즐기는 모습을 보면 참 재미있다. 아마 우리나라도 옛날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워터파크는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워낙 물이 부족한 국가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간혹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이용시간은 아침 6시에서 9시까지 그리고 오후 5시가 넘어야 사용할 수 있다. 인도의 수도 델리 하늘의 한낮의 태양은 두려움의 존재와 가깝다. 무조건 여름 동안 낮 시간에는 강렬한 태양빛을 피해 실내에서 머물러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냥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노출되어 다니다가는 바로 병에 걸리거나 쓰러지기 쉽다.
인도의 워터 파크
이렇듯 무더위와 오랜 여름 동안 싸워야 하는 인도에는 물이 부족하다. 물이 아주 귀하다.
물이 너무 소중한 나라이다.
"More than 50% of the population has no access to safe drinking water and about 200,000 people die every year for lack of access to safe water. India is currently facing the rural households are without piped water supply." (The Financial Express, Sep 23, 2020)
인도 파이낸셜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인도 인구의 50퍼센트 이상이 안전한 식수를 접하지 못하며,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매년 안전한 식수 공급의 부족으로 사망한다. 인도는 최근 수도관 공급이 없는 농촌가구들의 문제와 직면하고 있다. 또한 여기에 더해서 2030년까지 인도 인구의 40%가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게 될 것이며, 가정용 물의 75% 이상이 깨끗한 식수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인도의 물 상황을 보면 '인도의 물 위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도 인도에 물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갔었지만, 현실과 직면했을 때는 정말 암담했다.
처음에는 인도 수도시설이나 시스템에 대해 전혀 모르던 터라 어떻게 가정에서 물을 관리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서서히 인도 생활에 적응하면서 인도에서의 물 사용 설명서를 스스로 만들어 가게 되었다.
인도에서 집을 구할 때 부동산 업자가 '1500 L 물탱크가 있다.', '수도가 들어오는 집이다.', '물차가 와서 물을 넣어준다.'라고 소개할 때는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 후, 델리에 살면서 차차 인도의 물 사용설명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인도 델리에 살면서 델리의 가장 좋은 장점 중 하나가 델리 시내에는 수도관이 설치되어 하루에 한 번 수돗물이 공급된다는 것이다. NCR 지역인 구르가온이나 노이다에는 수도관이 아직 없다. 델리의 수돗물은 그나마 수질이 좋아서 정수기를 사용해 그냥 물을 마셔도 괜찮을 정도였고, 빨래를 해도 그런대로 깨끗했다.
하지만, 설거지를 하거나 야채와 과일을 씻을 때 마지막 헹굼은 꼭 정수기 물로 헹궈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설거지하고 난 그릇과 과일에 석회가 그대로 하얗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는 사정이 다르고 더 어렵다. 땅 속에서 끌어올린 지하수나 물차로 날아오는 수질은 그리 좋지 않아 빨래를 하면 옷 색깔이 점차 누렇게 변해가며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델리에 살면서 하루의 일과는 기도를 하거나 묵상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물탱크 모터를 올리는 것이었다. 아침 시간에만 공급되는 수돗물을 모터를 올려서 옥상에 있는 물탱크에 받아야만 했다. 물탱크에 받아진 물을 하루 종일 나눠서 사용해야만 했다. 아침에 늦잠을 자거나 깜박 잊고 모터를 올리지 않은 날은 낭패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전 날 남은 물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보통은 하루치 사용물만 물탱크에 받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거의 물이 남아서 다음 날까지 가는 일은 없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집은 그렇다. 빨랫감도 많고(빨래도 하루에 딱 한 번 할 수 있다. 행여라도 세탁기를 두 번 돌렸다가는 샤워나 요리할 물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처음 우리가 인도에 갈 때는 딸아이가 만 두 돌이 되던 때라 배변훈련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이불이나 옷에 실례를 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세탁기를 돌릴 수가 없어서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한 여름에는 물탱크가 옥상에 있기 때문에 아침에 모터로 올려서 물탱크에 받아 둔 물은 한낮이 되면 50도 이상의 뜨거운 물로 데워져서 손을 씻을 수도 샤워를 할 수도 없게 된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찬 물을 뜨겁게 데워서 사용하는 일은 오히려 쉽고 간단하지만, 뜨거운 물을 식혀서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미리 큰 통에 물을 받아서 좀 식혀 둔 후에 아이를 씻기곤 했다. 돌아보면 그것도 추억이 되었다.
물탱크에 저장된 한정된 물을 사용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남아있는 물의 양을 계산하며 하루 동안 물을 나눠서 쓰게 된다. 예를 들면, 야채를 많이 씻고 다듬거나 요리를 많이 하는 날은 다른 용도의 물을 좀 더 아껴야만 한다. 머리를 감으면 안 된다든가, 세탁기를 돌리지 않거나, 샤워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등... 어느 날은 최소한 화장실 용변을 볼 수 있는 물이라도 아껴서 비축해둬야 하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물을 다 써버려서 수도꼭지에서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는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다가 물이 떨어졌을 때다.
그나마 델리에 살아서 아침에 공급되는 수돗물을 사용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시골 지방에는 수도시설이 전혀 없는 곳이 태반이며, 델리 안에도 낙후된 지역은 수도시설이 되어 있지 않고, 물 차가 물을 실어 나르곤 한다.
아마 그냥 상상만 해도 이해가 될 것이다. 나 또한 제한된 물의 양을 하루 동안 나눠서 사용해야 하니, 야채를 씻을
때도 물을 아껴야만 하고, 청소할 때도 물을 아껴야만 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인도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게 꺼려지기까지 했다. 과연 손님들을 위해 부족한 물로 재료를 얼마나 깨끗하게 손질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인도의 가정집에서는 우리와 같이 야채를 깨끗하게 여러 번 헹구거나, 씻지 않는 것을 보았던 이유에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형편을 알고 있으니 불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요즘은 여러 회사에서 생수를 판매하고 있어서 식수를 해결할 수 있지만, 그것도 형편이 되어 물을 사서 마실 수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다.
요즘 인도의 가정에도 정수기를 많이 설치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통계에 따르면 정수기를 사용하는 가정은 전체 인도 인구의 4%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식수를 마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도에서 외출할 때는 가방에 항상 물을 넣어 다니곤 했다. 집에서 끓여 마시던 옥수수차다. 우리는 늘 물을 끓여서 마셨다. 딸아이도 다행히 끓인 물을 좋아해서 학교에도 항상 집에서 끓인 물을 들고 다녔다. 무더운 여름에 물을 끓이면 더운 공기 때문에 물을 식히기도 참 힘들었지만, 인도에 사는 내내 우리는 거의 매일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그것도 우리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길을 가다 보면 중간중간 항아리가 보였다. 무더위에 길을 다니는 행인들을 위해 공급되는 물이었다. 그것 조차 없으면 마실 물이 없어서 더위를 견디어 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종 길에서 오이를 깎아서 파는 사람들이 있는데, 더위에 물 대신 오이를 깎아 먹으며 갈증을 해소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여름에 오이가 있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더위를 인도 수박을 하루에 하나씩 먹으며 해결하곤 했는데,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여름에 나는 열대과일 망고와 수박, 오이를 통해서 긴 여름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고는 했다.
식수를 마시는 대신 해갈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게 참 감사했다.
인도 망고
아무튼 나는 인도에 살면서 아이스커피와 이별을 고했다. 내 몸이 어느새 아이스커피를 거부하고 타는 듯한 무더위에도 뜨거운 커피와 짜이를 마시며 더위를 이기곤 했다. 이열치열을 인도에서 이해했다.
덕분에 인도에 살면서부터 지금 한국에 와서도 우리 집 냉장고 냉동실에 얼음이 없다. 얼음 없이 사는 게 익숙해진 거 같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부모님과 동생네 식구가 우리 집에 다니러 왔다.
나는 아침부터 이것저것 요리를 한다고 분주했다. 한참 야채를 씻고 요리를 하다가 문득 가슴이 철렁했다.
'아... 물 떨어지면 어떡하지? 오늘 물을 너무 많이 쓰고 있네~'
나도 모르게 인도에서 하던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 여기 인도가 아니고, 한국이잖아. 물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친구가 나에게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물었다. 난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 받으러 모터 안 올려도 되는 거."
한국에 와서 얼마 동안 아침마다 모터를 올려야 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다.
눈을 뜨면 '아.. 모터 안 올려도 되지.' 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는데, 그것이 내게 큰 안식이었다.
코로나로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우리는 이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물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잊어버린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잃었을 때에야 물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인지를 뒤늦게 깨닫게 되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