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없어도 대신 시간을 알려주는 두 가지가 있었으니 교회 종소리와 기차다. 그때 그 시절엔 그렇게 모두의 삶 가운데 조용히 들어와 사람들의 일상을 도와주는 존재들이 함께 했다. 때문에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무난히 하루를 순서대로 살아냈다. 24시간으로 채워진 하루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흐르고 있는데, 왜 지금은 계곡의 급물살처럼 급하고 빠르게 느껴지는 걸까?
산성 언덕배기 교회 옆 마당에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종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곳에서 멀리 동서남북 사방으로 새벽마다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낮 12시가 되면 다시 정오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땡그랑땡그랑 울렸다. 저녁 6시가 되면 다시 한번 종소리가 들렸다. 그 외에도 수요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예배 시간 30분 전에 초종이 울렸고, 다시 재종이 울리면 예배가 시작되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멀리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는 교회 예배시간에 맞춰 30분 전의 초종과 본 예배시간의 재종은 정확했다.
엄마는 늘 바쁘셨다. 수요일 저녁 초종 소리가 울리면 얼마나 서둘러 교회로 달려가셨는지, 분주하게 빠른 걸음을 재촉하여 바삐 움직이시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일찍 저녁을 먹고는 밥상을 물리고 우리 삼 남매를 남겨두고 교회에 가신 부모님을 기다리던 수요일 밤을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수요일을 딱히 좋아하지 않은 무의식이 내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잠을 자느라 비몽사몽 가운데에서도 은은한 새벽 종소리가 귓가에서 스쳐 지나가는 날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깊은 잠에 빠져버렸던 나는 새벽에 울리는 종소리는 듣지 못하고 지나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을 자면서도 내 청력은 살아있었던 건지 새벽을 뚫고 울렸던 맑고 잔잔한 새벽 종소리가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종소리다.
수요일 저녁의 종소리가 내게 조금은 쓸쓸한 외로움을 남겼다면, 주일 아침부터 일요일 하루 종일 몇 번을 울려대던 그 활기찬 종소리는 마음을 교회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교회 종소리가 들판과 마당, 집안에서 일을 보는 이들에게 하루의 큰 시계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그저 추억으로만 머물 뿐이다.
어린 시절 우리가 살던 그곳은 기차가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에서 내려오는 기차가 내동터널을 지나 산성역을 통과해 달음박질하여 기적소리를 울리며 내달았다. 기차는 긴 몸통을 끌며 위엄을 자랑하며 힘차게 달렸다. 그것은 마치 그곳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해주는 신기하고 재미난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는 가끔 기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들의 삶과 이야기, 기차에 몸을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는 심정들에 호기심이 생겨 끝없는 상상이 길고 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했다.
그 기차가 교룡산성을 배경으로 길게 이어진 기찻길을 달리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교룡산성은 백제가 신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이다. 당시 그곳은 백제의 끝자락이었으니. 꽤 길이가 길고 튼튼하게 지어진 이 성벽에서 임진왜란과 6.25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역사적으로 꽤 유서 깊은 곳이다. 민족의 정서와 남다른 정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무궁화호와 통일호는 간이역에 멈춰 서지 않았다. 모든 역을 거쳐 서서히 승객을 실어 나르던 비둘기호만이 교룡산성 자락 아래의 작은 산성역에 정차해서 승객들이 오르내렸다.
어느 날엔가 역 주변에는 커다란 연탄공장이 들어섰고, 석탄과 연탄을 운송하는 화물 열차가 산성역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지금은 모든 게 사라지고 없는 빈 공터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동네 사람들은 열차 시간표를 알고 있었다. 이른 아침 6시나 7시에 오는 기차와 오전 11시쯤 그리고 늦은 오후에 내려오는 기차의 경적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예측했다. 중간에 쌩하고 지나가는 통일호와 무궁화도 몇 있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가 저녁 8시가 넘어서 막차로 항상 있었는데, 학교나 직장을 다니는 이들이 기차의 막차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때론 하염없이 남원역에서 막차를 기다리기 일쑤였다.
막차에 몸을 싣고 밤길을 걸어 들어오는 무리가 각자의 마당을 지나 마루를 밟고 문지방을 넘어서면. 비로소 동네의 하루가 마무리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