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커피와의 작별

나다움을 벗어나다

by 샨띠정

병원에 다녀왔다. 지난달 초, 그러니까 연초에 독감이 걸리고 나서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감기약 복용을 멈추고 나서 계속 복부 통증과 설사를 반복하며 통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기침도 있다. 이번 독감 증상이 그렇다며 속히 회복되길 기다리다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진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병원 대기실에서 원장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 어지간하면 병원 출입을 안 하고 살아왔던 터라 수많은 환자들 틈에 앉아 있는 내가 어색했다. 내 이름이 불려지길, 행여라도 놓쳐버릴까 귀를 쫑긋 세우고 한참 동안을 기다리고 나서야 내 순서가 도래했다.


지난 건강검진 때 복부 초음파를 하고 쓸개에 큰 결석이 몇 개 있다는 진단을 받았던 터였다. 나는 그저 독감 증상으로 겪는 설사가 빨리 완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료를 받으려던 참이었다.


선생님 앞에 앉아 나의 검진 기록을 다시 찬찬히 보면서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결국은 모든 원인이 쓸개에 있는 결석이라고 하셨다. 잘라내야 한다고.


"커피 드세요?"

"네, 최근에는 배가 아파서 통 못 마셨어요. 오늘 마셨다가 배가 아파서 병원에 온 거예요."

"커피 드시지 마세요."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건 내게 인생의 행복을 버리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커피 없는 삶은 그야말로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지 않겠는가?


'나는 커피 없이 살 수 없는데. 어떡하라고. 너무해.'


사실 독감이 걸린 후로 커피 생각을 거의 잊다시피 했다. 마시고 싶은 욕구도 차오르지 않았다. 내 몸이 스스로 보호하고 있었으리라. 어제는 처음으로 설사를 안 해서 내심 기뻤다. 이제 드디어 몸이 회복되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끓여주신 호박죽이 효과가 있어서 이제 복통은 사라지는 줄만 알았는데, 오늘 아침 커피를 마시고는 다시 설사와 복통에 시달렸다. 사실 커피 향도 별로고 커피맛도 내 입에 달지 않아 머그 컵으로 반 잔도 채 마시지 못했다. 겨우 몇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몸이 반응을 보내왔다. 덕분에 병원에 다녀왔다.


수요일에 복부 CT 촬영과 갑상선과 유방 초음파 검사, 대장 내시경까지 예약을 해두고 왔다. 수술하라면 해야 하겠고, 다음 과정을 밟아야만 한다.


이제 커피를 손에 들고 후루룩 기분 좋게 커피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나는 사라지는 걸까? 여태 나는 커피를 마시는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이라 여겼는데 말이다.


나는 나다움을 버리게 될까? 다시 커피를 즐기는 나다움을 회복할 수는 있을까?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최고로 감사했었는데, 이제 커피와 작별을 해야만 하나 보다.


마음이 꽤나 무겁고 서글픈 날이다. 커피와 함께 나다움을 버려야만 하는 이별의 날이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