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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Feb 27. 2018

『인 콜드 블러드』: 글쎄, 너라고 달랐을까?

두 살인자가 남기는 질문


“오오 운명이여, 그대는 얼마나 멀리 뛰었는가!”

“듣기에도 무섭고 보기에도 무서운 무시무시한 곳으로 뛰었나이다.”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왕』 1,311 ~ 1,313절     


 평범한 하루였다. 창연한 달빛이 파자마를 입고 잠든 클러터 씨 옆으로 고요히 내려앉았다. 클러터가(家)의 장녀 낸시는 시골 마을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요조숙녀였고 작은 아들은 얼마 전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클러터 씨의 거대한 농장 안에서 걱정거리라고는 신경쇠약을 겪는 클러터 부인뿐이었는데 부인의 병세도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던 차였다. 어제가 그러했듯 평온한 하루였다. 몇 시간 후 총성과 함께 네 가족이 처참히 살해당할 것이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미국 캔자스 주 홀컴 마을, 1959년 11월 19일의 새벽이었다.     


 특이하다 싶을 만큼 잔혹한 살인이 일어났을 때 수사관들이 주목하는 건 피해자의 원한 관계다. 피해자의 불륜이나 채무 관계, 인간됨에 대한 주위의 평가 등이 주된 조사 대상이다. 동기가 밝혀지면 용의자를 특정하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클러터 가 살인 사건을 맡은 보안관 앨빈 듀이 역시 이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클러터 씨야 말로 원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입을 모았다. 클러터 씨는 성실한 교인이자 온 마을의 존경을 받는 지역 유지였다.     


 형사들은 돈을 노린 강도의 소행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클러터 씨는 지역에서도 알아주는 거대 농장의 소유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설에도 약점은 있었다. 범행 당일 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돈은 합해봐야 100달러를 넘지 않았다. 돈을 노린 범죄라고 보기엔 액수가 너무 적은 반면 시신에 남겨진 분노의 흔적은 과다했다. 그렇다고 정신병자에 의한 범행이라 보기에는 범행 후 뒤처리가 너무 치밀했다. ‘누가?’ 만큼이나 형사들을 따라다닌 질문은 ‘대체 왜?’ 였을지도 몰랐다.  

   


 truman capote (1of 2), Irving penn, New york, 19

 트루먼 커포티는 1959년 일가족 살해사건을 다룬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읽고 직접 캔자스 홀컴 마을로 내려간다. 6년간의 집요한 취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홀컴 마을 주민들, 보안관 앨빈 듀이 등 『인 콜드 블러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부 이때 직접 취재한 실존 인물들이다. 커포티는 클러터 가 살인사건과 관계된 인물이라면 누구든 찾아가 인터뷰했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작품에 옮겼다. 추후 클러터 가의 살인 혐의로 체포된 히콕과 페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력 범죄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범죄자를 나와는 저만치 떨어진 ‘타자’로 대한다. 뻗어 나온 뿌리도, 마시는 공기도 완전히 다른 타자.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나는 전과 기록 하나 없는 선량한 시민인데 반해, 범죄자는 말 그대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니까. 선량한 시민들이 범죄자 앞에 긋는 구분선은 커터칼처럼 예리하게 이쪽과 저쪽을 나눈다. 이쪽은 선의 왕국이고 저쪽은 순도 100% 악인이 사는 구역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은 간단한 동시에 편리하기까지 하다. 종자부터 다른 인간들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순간 더 이상 그들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인 콜드 블러드』는 독자들의 이 유서 깊은 편견을 뒤흔드는 하나의 도전이다.     


“제길,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허풍이라도 쳐야지. 그러지 않으면 나(히콕)란 인간은 정말이지 한심한 인간이 되는 거라고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인 콜드 블러드』, 504p     


“(보안관) 듀이는 페리에게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었다. 페리는 추방당한 동물, 상처 입고 돌아다니는 짐승의 오라를 갖고 있어 형사는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듀이는 라스베이거스 경찰 본부의 심문실에서 그를 처음 만난 때를 떠올렸다. 난쟁이 같은 애어른의 발이 바닥에 잘 닿지도 않을 정도로 높은 금속 의자에 앉아 있던 모습을. 그리고 이제 듀이가 눈을 뜨자, 눈앞에 그 모습이 다시 보였다. 똑같이 어린애 같은 발이, 살짝 기울어진 채 (교수대 위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

                                                                                                                          -『인 콜드 블러드』, 515p     


 『인 콜드 블러드』 속 화자의 시선은 살인자 히콕과 페리에게 오랜 시간 머문다. 사고로 인한 뇌손상 이후 병적인 열등감에 시달려온 히콕은 죽이려고 작정했던 이름 모를 운전사에게까지 인정받고자 있지도 않은 화려한 이력을 지어내는 인간이다. 가만히 있으면 시답잖은 인정 한번 받지 못하는 그였다. 아무것도 갖지 못했기에 히콕은 끊임없이 꾸며대고 또 빼앗아야 했다. 그것이 거대 농장주와 그의 선량한 가족들의 목숨이라도 말이다.   

  

 반면 페리는 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알콜중독, 형과 누나의 자살, 군대에서의 동성 강간 등 수많은 상처 속에서도 나름의 도덕적 원칙을 지키는 인물이다. 히콕이 침대에 묶인 낸시를 죽이기 전에 강간하겠다고 했을 때 페리는 그와 싸움을 각오하면서까지 낸시를, 정확히는 낸시의 성적 결정권을 지킨다. 희생자의 목숨을 빼앗은 페리의 행위는 악이지만, 미성년자의 강간을 막는 그의 행동과 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선이다. 잔혹한 살인마의 내면에 선이 공존하고 있다는 진실과 독자들은 마주한다. 범죄자는 순도 100% 악인이라는 편견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순간이다.      


 이가 갈리게 부러워서 강제로라도 빼앗고 싶었던 적(히콕), 곪고 터지면서 짓무르는 상처들이 지겨워서 행복한 사람들은 전부 적으로 보였던 적(페리), 나라고 정말 단 한 번도 없었을까. 괴물이라 믿었던 살인자의 내면과 과거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때, 이쪽과 저쪽을 나누던 경계선은 운동장 위 횟가루 선처럼 희미해진다.     


 결핍과 상처를 지녔다는 사실이 악행의 면죄부가 되진 않을 것이다.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도 타인에게 상처를 전가하지 않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단단히 결박까지 한 가족을 살해한 죄는 무엇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는 걸 작가와 독자 모두 알고 있다. 살인하지 말라. 수천 년 전 쓰인 십계명의 명제를 복습하자고 작가가 518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썼다고 보긴 어려워 보인다. *한국어판(시공사) 기준     


 알랭 드 보통은 깨끗한 양심이란 상상력이 부족한 자들의 전유물이라고 했다. 나는 그따위 범죄자들과 뿌리부터 다르다는 믿음은 충분히 상상해 보지 않은 자들의 착각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좋은 비극 작가는 악행을 저지른 악인에게 독자들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쓰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른바 "깨끗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선 역설적이게도 '나 역시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 콜드 블러드』는 하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조악한 교수대 앞에 선채 뒤돌아보며 '너라고 달랐을까?'라고 물어오는 악인의 짓궂은 질문.


 누구나 가슴속 한구석에 악이 도사리고 있고 히콕과 페리는 그 악을 꺼내보였을 뿐이다. 선량한 시민과 악인 간의 간격은 손 한 뼘 정도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나도 그럴 수 있다’는 한 조각 불안을 기꺼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 잔혹한 살인과 범인들이 교수형 당한 자리에 『인 콜드 블러드』가 남기는 교훈은 그것이 아닐까.           



#표지 사진은 작가 트루먼 커포티의 실제 사진입니다.

# 커포티의 사진을 제외한 사진은 구글에서 재사용 가능 가능한 이미지를 추린 것으로, 작품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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