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아무도 없는 곳에 스스로 다다른 사람이므로 결국 혼자 일어나야 한다. 스스로 눈을 뜨고 스스로 이마를 짚고 스스로 아직 멈추지 않은 심장의 박동을 확인해야 한다.’
- 류근,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중
중3 때부터 통학을 위해 자취를 시작했으니 가족들 품을 떠난지도 10년이 다 되어 간다. 방학 때면 기다렸다는 듯 본가로 달려가 박혀 있던 나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주생활 공간은 텅 빈 옥탑방이나 대학교 기숙사였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난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 되어 있었다. 혼자 먹는 점심도, 혼자 보내는 여가 시간도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혼자’라는 자각은 집요하게 내 바짓단을 물고 늘어진다.
가장 외로움에 사무칠 때는 몸이 아플 때다. 다행히 여간해선 탈이 나지 않는 체질 덕에 그나마 살만 하지만, 제대로 앓는 날이면 또 그때만큼 사무칠 때가 없다. 하루는 원인 모를 오한과 허리 통증으로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하고 앓는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혼자잖아. 내 몸은 내가 추슬러야지.’
어쩌면 침대에서 앓던 몇 시간 동안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은 좀 어떠냐’고 묻는 안부 전화를 기다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은 남이다. 내가 아무리 아프고 우울해도 문자 끝에 ‘ㅋㅋㅋ ’만 한번 붙여주면 사람들은 내가 잘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여하튼 끝내 전화는 울리지 않았고, 난 장우산을 지팡이 삼아 꾸역꾸역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아아, 5월이 가기 전에, 이승의 5월이 다 가기 전에 우리 다시 만나리. 광화문 어디쯤 빵집에서. “햇빛처럼 꽃보라처럼 또는 기도처럼” 만나리. 조낸 조낸 그리운 당신.. 아.. 시바’
-류근,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중
저자의 방법대로, 외로움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이다. 발광해대는 외로움을 뒤로하고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그려보면 온갖 상념이 냄비에 물 넘치듯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허나 후회와 아쉬움, 질투, 허탈함 등등... 온갖 감정의 파도가 지나간 다음에 마지막으로 남는 건 언제나 ‘감사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움은 특권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리워할 누군가조차 없는 삶을 상상해 보면 된다. 맥주 한 캔을 안주삼아 감상에 취하는 불면의 밤. 한껏 센치해진 기분으로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리는데, 정작 떠오르는 얼굴들이라곤 속절없이 스쳐 지나간, 이름마저 가물가물한 누군가뿐이라면 어떨까. 글쎄 그런 삶이 실용적 일지는 몰라도,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리워할 만한 누군가가 내 곁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축복이다. 하지만 이성복 시인의 말 대로 ‘잔치에 흠뻑 빠져들지 않은 사람만이 잔치를 기록할 수 있다.’. 누군가가 그리워진다는 건 그 사람과의 잔치가 끝나버렸음을 의미한다. 잔치는 끝났고,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애꿎은 밤하늘만 쏘아보며 그 날의 시간들을 기록한다. 그것이 내가 터득한 외로움을 인내하는 방법론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어느 시집의 제목처럼 ‘곁에 있어도 그립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렇게 되뇌어 보는 건 어떨까.
‘조낸 그리운 당신.. 아 시바’
그렇게 외로움을 견디고 있으면, 누가 아는가? 이 책의 제목대로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