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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Oct 05. 2016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않는것들>;난 너를 알고싶어

사랑한다면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가족이 제일 모른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당신은 누구라고 답할까? 절친한 친구의 이름을 댈 수도 있고, 사랑하는 배우자나 연인의 이름을 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가족'이라 답할 것이다. 가족은 내 기억의 이전부터 나를 지켜주고 위로해 온 수호천사가 아니던가. 내 사소한 잠버릇부터 좋아하는 음식 종류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 가족들이야 말로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메릴린은 (메릴린의) 엄마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잠금쇠 뒤에서 안전하게 살라고, 집으로 남편에게로 내 딸을 밀어 넣지 않을 것이다. 메릴린은 리디아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도록 도와줄 것이다...(중략)... 절대로 '의사'라는 말을 듣고 남자만 떠오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평생, 엄마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리디아를 격려해 줄 것이다.'

                                                                                            -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206P


 누구에게나 결핍은 존재한다. 어떤 이는 검사가 되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려 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세상을 놀라게 하리라 다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세상을 다 가져라'라고 외치는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다. 간절함과 성취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인간의 꿈은 많은 경우, 과거형으로 끝난다. 인간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문제는 자신의 결핍을 자녀에게 투영할 때 나타난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이 못 다 이룬 꿈을 자식이 대신 이뤄주기를 소망한다. 평생 동안 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려 온 사람은 자식만은 당당히 명문대에 입학하길 바라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친구가 없었던 자신의 문제를 자식만은 겪지 않기를 바란다. 결국 모든 자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콤플렉스란 이름의 유산을 상속받는 셈이다. 전제군주라는 영조의 이상을 상속받은 사도세자처럼 말이다.


'리디아는 맹세했다. 엄마가 집에 돌아와서 우유를 다 먹으라고 말하면, 다 먹을 거야. 리디아는 양치질도 아무 소리 없이 잘할 거고, 의사 선생님이 주사를 놓을 때도 울지 않을 거야. 엄마가 불 끄면 곧바로 잘 거고, 다시는 아프지 않을 거야. 엄마가 하라는 건 모두 할 거야. 엄마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거야.'

                                                                                            -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193P   


 중국인 이민자의 아들인 제임스와 그의 부인 메릴린은 둘째 딸'리디아'를 비롯한 세 자녀의 부모다. 이민자의 자식으로서 온갖 차별과 수모에 시달려 온 제임스는 자신과 달리 푸른 눈을 가진 딸 리디아에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투영한다. 그는 딸의 같은 반 친구에게 연락해 리디아와 시내에서 놀 생각이 없느냐고 묻길 주저하지 않는다. 부디 내 자식만은 또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길 바라는 그의 욕망은 집요하다.


 반면 리디아의 엄마인 메릴린은 '의사'라는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딸에게 투영한다. 때는 1970년대 미국, 여자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인간상은 '여섯 가지 계란 요리법'을 숙지한 '좋은 아내'이던 시대였다. 당찬 소녀였던 메릴린은 편견과 맞서며 하버드대에 입학하지만 졸업 전 첫아들인 네스를 임신하면서 결국 의사의 꿈을 포기하게 된다.


'살아오면서 리디아는 언제나 엄마의 심장에서 한 가지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의사, 의사, 의사. 엄마는 그것을 너무나도 바랐기 때문에 더는 말로 할 필요도 없다는 걸, 리디아는 알았다...(중략)... 리디아는 다른 미래는, 다른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228P


 '리디아는 죽었다'라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작가는 제임스와 메릴린이 어떤 꿈을 갖고 있던 사람인지, 어떤 소망을 자신들의 둘째 딸에게 투영했는지 등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리디아의 꿈이 무엇인지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 누구도 정작 리디아의 꿈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궁금해 하긴 커녕, 제임스와 메릴린은 리디아의 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자신한다. 이 소설이 리디아에 죽음에 대한 것이되 리디아에 대한 것은 아닌 것처럼, 작품 안과 밖 모두에서 리디아는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메릴린은 화들짝 놀라 두 물건을 떨어뜨렸다. 그 물체들이 뱀인 것처럼. 그리고 책가방을 휙 밀쳐냈다. 이 책가방은 다른 사람 물건이야. 리디아의 것일 리가 없어. 우리 리디아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더구나 콘돔은...'

                                                                                          -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170P


 가족의 불행은 대부분 '나는 너를 안다'라는 오만에서 시작된다. 내 아들은, 내 딸은,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잘 안다는 착각은 가족 간의 소외를 낳는다. 한 어머니가 자신은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매번 자식에게 바나나를 양보하자 나중에는 성장한 자식들이 '엄만 바나나 안 좋아하니까.'라며 자기들끼리 바나나를 먹더라는 일화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설사 가족이라 해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가 다른 가족에게 취해야 할 제스처는 '너는 내가 잘 알아'라는 오만이 아닌 '나는 너를 모른다'는 자세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만이 알아갈 수 있으니까.


 여담이지만, '요즘 애들은 노력을 안 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강의실 앞자리에 앉기 위해 매일 새벽에 일어나 노량진행 버스에 올라타는 친구를 생각한다. 친구가 뜬금없이 불쑥 소주 한잔 하자는 날은 채용 시험이 있던 날이다. 안주도 없이 소주를 들이키는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난 '너희가 노력을 덜해서 그렇다'고 설교하던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뭘 안다고. 당신들이 뭘 안다고.


'갑자기 눈물이 메릴린의 앞을 가렸다. 리다아가 사랑한 건, 그러니까 과학이, 아니었던 거다. 눈물이 망원경이 된 것처럼, 메릴린은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찢긴 포스터와 그림들,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책들, 엎어져 있는 책상, 그 모든 것은 자신이 리디아에게 원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리디아는 그 모든 것들을 한 번도 원한적이 없었다.'

                                                                                               -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348P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 소설가 김연수


 결국, 사랑한다면 노력해야 한다. 너는 내 손바닥 안에 있다는 오만이 아니라, 널 알고 싶다는 수용의 자세로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일 뿐이니까. 결국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좀 더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킨다. 서로에게 가닿을 수 없음에도 기어이 내뻗고야 마는 손들. 상이 아직까지 살아갈만한 곳이라는 확신은 이러한 노력들에서 찾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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