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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Jan 10. 2021

우리는 그렇게 고개만 몇 번씩 끄덕끄덕했어

여덟 번째 편지

사실 회사 때려친 지 꽤 됐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자랑거리도 아닌데 굳이 말할 필요 있겠나 싶더라고. 헤헤 서운한 거 아니지?

혹시나 물어볼까봐 대답 먼저 하자면 괜찮어, 나는. 응. 처음도 아닌데 뭐.


아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긴 했어.

무언가를 그만한다는 건 나한테 꽤 큰일이어서 정말 많이 고민하고 시뮬레이션도 해봐야 결심할 수 있는건데. 그래서 마음 먹은 후엔 미동도 없단 말이지.

그런데 이번엔 아무 말도 나오질 않는 거야. 몇 달 전부터 수십번도 넘게 그려봤던 순간인데. 입안에서 준비한 단어가 굴러다니기만하고 소리로는 나오질 않더라. 나는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당황하니까 입을 열기가 더 힘들어지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까 그 사람이 먼저 알아들었어.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그걸로 다 되어버렸어.

우리는 그렇게 고개만 몇 번씩 끄덕끄덕했어.

응, 응, 하고 번갈아 침묵을 깨뜨리면서.


사실 괜찮지 않아. 그만두는 일이 어려운 사람에게 시작하는 일이라고 쉬울리 없잖아? 

벌써 몇 번째인데도 늘 힘이 빠져.

이번에도 이렇게 끝이구나.

그런 생각 때문에 한동안 우울하고 다시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슬퍼해. 또 이렇게 마음 쏟지 말아야지, 지키지도 못할 유치한 각오를 해.


내 입으로 또박또박 이별하지 못해서일까?

그래서 완전히 잘라내지 못했을까?

유독 여운이 길다.

그렇다고 다시 마주할 용기는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말 이럴 때도 적용되는건가?

난 지금 엄청 이상한 백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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