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고개만 몇 번씩 끄덕끄덕했어
여덟 번째 편지
사실 회사 때려친 지 꽤 됐어.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자랑거리도 아닌데 굳이 말할 필요 있겠나 싶더라고. 헤헤 서운한 거 아니지?
혹시나 물어볼까봐 대답 먼저 하자면 괜찮어, 나는. 응. 처음도 아닌데 뭐.
아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긴 했어.
무언가를 그만한다는 건 나한테 꽤 큰일이어서 정말 많이 고민하고 시뮬레이션도 해봐야 결심할 수 있는건데. 그래서 마음 먹은 후엔 미동도 없단 말이지.
그런데 이번엔 아무 말도 나오질 않는 거야. 몇 달 전부터 수십번도 넘게 그려봤던 순간인데. 입안에서 준비한 단어가 굴러다니기만하고 소리로는 나오질 않더라. 나는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당황하니까 입을 열기가 더 힘들어지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까 그 사람이 먼저 알아들었어.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그걸로 다 되어버렸어.
우리는 그렇게 고개만 몇 번씩 끄덕끄덕했어.
응, 응, 하고 번갈아 침묵을 깨뜨리면서.
사실 괜찮지 않아. 그만두는 일이 어려운 사람에게 시작하는 일이라고 쉬울리 없잖아?
벌써 몇 번째인데도 늘 힘이 빠져.
이번에도 이렇게 끝이구나.
그런 생각 때문에 한동안 우울하고 다시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슬퍼해. 또 이렇게 마음 쏟지 말아야지, 지키지도 못할 유치한 각오를 해.
내 입으로 또박또박 이별하지 못해서일까?
그래서 완전히 잘라내지 못했을까?
유독 여운이 길다.
그렇다고 다시 마주할 용기는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말 이럴 때도 적용되는건가?
난 지금 엄청 이상한 백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