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기억과 부르심)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요 13:34)
― 사랑받은 기억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불씨가 된다.
사명의 불씨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받았던 작은 사랑이 내 안에서 오래도록 불씨로 남아 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그 기억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나를 살게 했다.
그래서 나도 사랑을 계획했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사회적 기업가로 또 새로운 걸음을 재촉했다.
모두 같은 뿌리에서 생겨난 가지였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관계는 부딪히고, 감정은 흔들렸다.
때로는 모든 의욕이 꺼지고, 포기를 선언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아이들의 눈물
삶을 함께 하던 아이가 군에 입대하던 날, 작은 송별 자리에서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저는 기대어 울곳이 없어서 … 그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그 말이 내 가슴에 무거운 돌처럼 내려앉았다.
그 아이는 왜 나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을까?
거듭 질문했다.
그날 이후, 내 사명은 더 분명해졌다.
아이들의 허기를 채우는 것,
대신 화를 내고 눈물을 흘려주는 것.
절반은 고아 같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전하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기억의 조각들
'아이들은 밥을 먹으러 온 게 아니었다.
누군가 자기를 기다려 주고, 이름을 불러 주기에 아침 일찍부터 문 앞에 먼저 와 서 기다리곤 했다."
생일에는 축하모를 쓰고 해마다 같은 장끼 자랑을 했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겼던 우리의 이야기,
어린이날이 되면 또 산으로 들로 해마다 즐거웠다.
졸업식 날, 꽃 한 송이를 들고 가면 그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을 외치며 달려왔다.
사춘기, 사람 같지 않아 보였지만 신체적 성장과 마음의 갈등으로 힘들어했다.
병원으로 학교로 참 많이도 불려 다녔는데 돌아보니 다 흐뭇하고 미소를 짓게 했다.
사랑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다.
누군가의 삶에 마음을 담아 손을 보태는 것이다.
말씀 속의 부르심
스무 살, 다시 교회에 발을 들이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교회가 없던 깊고 깊은 시골에서 나는 얼마나 교회를 그리워했던가?
성가대의 찬양이 성전을 가득 메우던 그때, 아모스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 5:24)
온몸이 얼어붙고 눈물이 쏟아졌다.
그분이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셨음을 알았다.
그리고 또 다른 음성이 내 영혼에 깊이 새겨졌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그 말씀은 내 영혼에 쉼을 주었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보여 주었다.
다시 걷는 길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일의 무게에, 관계의 균열에 쉽게 지친다.
그러나 기억한다.
그날 내게 건네진 사랑, 그날 내 삶에 심어진 불씨. 사명!
그래서 나는 다시 일어선다.
사랑이 정의를 넘어 따뜻한 강물처럼 흘러넘치기를,
용서가 세상을 품는 또 다른 힘이 되어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이제 나의 바람은 단순하다.
내게 주신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주어진 사명을 완성하는 것.
그리고 그 길 끝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했고, 그래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