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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상 Mar 30. 2024

쉼표!피 터지고,피 마르는 인생.

( 걷다가 힘들어 잠시 쉬는 중입니다.2화-1 )

창세기 2:1-3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성경의 시작은 이렇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혼돈과 공허와 어둠과 깊음이 가득한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는 시작되었다.

빛과 어둠 그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 그 골격을 세우시고 하나 둘 그 공간을 채우셨다.

해와 달과 별과 공중의 새들과 땅의 풀과 나무와 채소와 바다의 짐승들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

그 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되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이 모든 창조행위 곧 일하심으로 기쁨을 누리셨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를 향해 생육하라 번성하라 충만하라 말씀하시고, 사람을 향해서는 너희 또한 그리하며 이들을 관리하라 하셨다. 모든 것을 만드시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질서를 부여하시고 그리고 사람에게 이 모든 세계를 위탁하시었다. 그리고 딱 한 줄의 요약"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 지니라"

"휴"나는 그 숨 가쁜 진행에 큰 숨을 몰아 쉬었다.

(놀라운 창조의 이야기)

그리고 나는 상상해 본다.

그 넓은 창공과 드넓은 대지와 그 위를 활보하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운동력.

감동과 찬사와 박수가 아니고서는 표현할 길이 없는 이 웅장한 시작

하나님은 그 완성의 세계를 보시며 기쁨도 자랑도 없이 "쉼의 시간을 가지셨다"

노동의 텀 보다 쉼의 텀은 짧지만 임팩트로 가득하다.

마침표 보다 쉼표의 위대함을 보는 순간이었다.




젊은 시절은 일과 그 성취를 통해서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긴장도 많고 호흡도 가빠서 타인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부족했다.   

그렇게 일에 대한 관심과 결과에 좌우되던 나는 어느덧 하나님의 쉼을 이야기할 때 그분께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가열차게 살고 몸과 마음이 지친 인간을 향한 연민과 배려에서 한없는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삶은 노동으로 채워지지만 노동이 목적은 아니다.

그것이 나의 숨통을 트게 했다.

큰돈으로 경제적 자유와 노동의 해방을 꿈꾸는 오늘의 세대와는 분명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그렇다.

나는 지금 "걷다가 힘이 들어 잠시 쉬는 중이다".

이 연재는 내 깨어진 삶의 발란스를 돌아보는 것이다.

때로는 피 터지는 삶의 현장에서 또 때로는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비틀 거리는 걸음을 고쳐 가고자 함이다.


오래전 기억 속에 아버지처럼 나도 한여름 땡볕에서 일하다가 점심을 먹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누워

아무 걱정도 없이 매미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나뭇가지 새로 들어오는 햇살도 성가셔 밀짚모자를 덮으시던 그 짧은 낮잠은 아버지의 오후를 새롭게 했다.

그러니 참된 노동은 쉼으로 완성에 이르는 창조주의 법칙을 다시금 몸에 익히는 그것이다.


(피터지는 선수,피마르는 감독 - 포지션만 다르다)


깡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뒤처진 출발선을 만회하고자 정말 애가 타게 살아왔다.

그때는 몰랐다. 그토록 전심으로 전력으로 달렸던 시간에 대해.

긴 자취 생활과 어렵던 취업의 문 그렇게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생존의 위기를 느끼던 그때였다.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천천히 걸오 오시지 않고 첫눈에 반할 뜨거운 사랑으로 "훅" 하고 들어 오셨다. 

가난 속에서 신앙의 기본기를 익히고, 주경야독으로 신학을 졸업하고 교회 개척이라는 그 엉뚱한 발상은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또 나보다 더 가난한 아동들을 돌보는 아동센터와 사회적 기업... 등등 삶의 수레는 쉼 없이 돌아 마음의 진액이 마르던 그때 인생에 대해 "툭" 건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고보서 4장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니라


시편 90편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시편 103편

15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예레이야 애가 3장

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그리고도 쉼의 날을 기대하였으나 녹록지 않은 삶의 연속이다.

전반전 피터짐 뒤에는 후반 피 말리는 날이 남아있었다.  

그 사이에 " 하프타임" 다시금 마음과 몸을 그리고 방향을 정돈해야 했다.


아시안컵 축구를 바라보면서 분명히 깨닫는 한 가지 사실은 이것이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피 터지게 뛰고 감독은 피 말리게 맘 졸이며 그 시간을 견뎌낸다.

그라운드에 한 발도 담글 수 없도록 선명한 라인이 그어져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돌아보니 내게도 그런 날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험을 치를 때 엄마와 나는 언니의 자취방에서 하루를 묵었다.

비포장길에 버스를 타고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아침 일찍 어묵국을 끓이고 흰쌀밥을 지으시고

딸의 앞날을 피 말리게 걱정하시던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랐다.    


막내 동생의 군 퇴소식 봉성에서 철원이 어디라고 아버지는 1박 2일 그 길을 곤로를 등에 지고 가셨다.

(출처 :애지리 박물관-똑같이 생겼다)

엄마 그리고 내가 민박후 훈련소에서 만난 동생에게 고기를 구워 주던 그 풍경은 눈물겹도록 촌스럽고 부끄러웠지만 (도시인들의 자가용 행렬과 고급 찬합도시락에 비해서) 두 분이 자녀의 생을 바라보는 애틋한 심정을 어디에 견줄까?


나도 그 삶을 반복한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런 날을 맞이한 나 자신도 여전히 그런 촌스러움으로 가득한 것을...

아직 어린 쌍둥이 아들들의 유학길에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또 미국이라는 나라가 코라도 베어갈까! 노심초사(勞心焦思)

월드 뉴스의 귀퉁이 소식에도 파르르 떨며 조심을 당부하던 그때 나는 정말 피가 졸여 왔다.


수인이와 현빈이가 군복무차 훈련소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왜 주책스럽게 전쟁터가 생각나는지...

군번줄을 걸어 주는 행사는 다분히 의도된 포퍼먼스인데 왜 전사 소식이라도 접한 듯 눈물을 터트렸는지!

흰머리에 휘어진 등을 하고 있는 우리가

갓 스물이 넘은 아이들보다 왜? 더 전투력이 높다고 생각했는지!!

그 못 미더운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왜? 국방을 통째로 맡기고 있는 것인지!

웃지 못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나도 힘을 보태마!! 하신다.

아버지도 나와 같구나! 아버지는 아직도 자식의 삶을 지켜보고 계시구나!

그 기댈 언덕이신 아버지 곁에 나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아홉 살 어린 딸을 보고 있다.


그라운드를 누비며 온몸을 던져 일하던 그때 그렇다 나는 많이 성장했다.

또 다음세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결과를 지지하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완성되지 않음이다.

쉼을 통해 얻어지는 다지기. 숨고름. 돌아보고 새롭게 방향을 조절함.

쑥 자라고 마디를 갖추고 또 쑥 자라고 마디를 갖추는 대나무처럼 흔들리되 쓰러지지 않아야 한다.

그 모든 마디마디는 쉼의 시간에 만들어진다. 마디가 사람을 단단히 잡아준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새롭게 바통을 고 일과 쉼, 성장과 마디를 이룰 후반을 설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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