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2: 기억과 부르심)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14)
― 전반전의 사투 끝, 후반을 위한 하프타임이 필요하다.
전반전 ― 피터지게 뛰던 시간
젊은 날의 나는 경기장을 달리는 선수와 같았다.
깡촌에서 시작해 뒤처진 출발선을 따라잡으려,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했다.
라면 하나로 버티면서도 속으로 되뇌었다.
“뒤처지면 안 된다. 빨리 뛰어야 한다.”
광야 같은 삶 속에서 붙잡은 말씀은 단 하나,
"너는 내 것이다." (사 43:1)
가난 속에서 믿음을 배우고,
신학을 마치고 교회를 개척했으며,
아동센터와 사회적 기업까지 세웠다.
그 모든 과정은 피 터지게 치열한 인생의 전반전이었다.
후반전 ― 피마르게 보는 시간
그러나 인생의 경기장에는 선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경기장 밖에서 피 마르게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험날, 자취방에 찾아와 흰쌀밥과 어묵국을 끓여주신 어머니.
막내 동생 훈련소 퇴소식, 봉성에서 철원까지 곤로를 등에 지고 아버지가 오셨다.
최전방 차가운 1월에 밥과 국을 끓여 주셨다.
그 광경은 촌스러움과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분들에게 자식의 삶은 자신들의 경기보다 더 치열한 전장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경기 ― 나와 자녀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그 부모의 자리에 서 있다.
쌍둥이 아들들의 유학길,
중국과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마음은 늘 요동쳤다.
"혹여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勞心焦思).
군번줄을 목에 걸고 입대하던 딸과 아들들을 바라보며,
왜 그렇게 울컥하는 눈물을 삼켰던지?
그 순간 깨달았다. 선수로 뛰는 것보다,
조력자의 마음이 얼마나 더 피가 마르는 것인지를 ..
마디의 지혜
대나무는 곧게만 자라지 않는다.
성장을 멈추고 마디를 만들기에
다시 자라날 수 있고,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다.
내 인생의 마디 마디
전.후반의 땀과 눈물이 겹겹이 쌓여있다.
그것들이 단단히 나를 붙들어 견디는 힘이 되고 있다.
쉼의 역설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시 103:15)
창조의 절정은 쉼이었다.
노동이 목적이 아님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쉼이야말로 최고의 노동이자, 하나님의 효율이었다.
AI 알파고를 꺾었던 이세돌 9단조차
치열한 노동 끝에 결국 쉼의 필요를 절감하지 않았던가. 쉼은 도피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힘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경기의 끝을 바라보며
나는 아직 경기 중이다.
때로는 선수처럼 뛰고,
때로는 조력자로 응원한다.
이제는 후반전을 준비하는 관중석에 앉아 작전을 그리고 있다.
승리든 패배든,
모두 주인이 맡기신 달란트를 소모하는 과정일 뿐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뛰고,
최선을 다해 남기고 가려 한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마 25:23)
그 음성을 듣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피터지고 피마르는 경기의 마지막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