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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높은구름 Nov 19. 2022

울산 신흥사에서

시간이 흐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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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의 조용함과 여유로움이 좋다.


산 깊은 곳에 한참을 차로 올라오다 보면 정말 이곳에 절이 있을까 싶은 곳에 딱 알맞은 크기로 절집이 있다.

함월산 신흥사(含月山 新興寺)

여기는 울산에 있는 달을 품은 산 함월산 신흥사(含月山 新興寺)다.


크지도 또 작지도 않고, 한눈에 들어오는 게 토요일 오후의 여유로움처럼 편안하다.


절에 도착하면 늘 대웅전에 가서 인사부터 드리지만, 여기는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산신각에 바로 올라 아래를 면서 바람빛, 구름빛, 하늘빛, 저 멀리 흐르는 산빛을 보는 게 너무 좋다.

산신각에서 바라 본 신흥사 경내

아랫동네의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 한복판에서 나만 홀로 떨어져 나와 고요하기까지 한 편안함에 한참을 내려가기가 싫어진다.


돌아 내려가다가도 무슨 미련이 그렇게도 많은지 다시 이 자리 난간에 걸터앉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하늘도 보고, 바람도 보고, 저 멀리 산들도 보면서, 그 어려운 무아(無我)의 경지를 아주 쉽게 깨치고 있다.


여기 계속 앉아 있으면 시간의 흐름도 사라지고 만다.

멍하니 바라보는 산의 색깔도 이제는 제 뜻을 다한 듯 겨울로 서서히 흘려가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명랑조사가 호국불교의 기치를 내걸고 건흥사로 출발하였고, 신라 때부터 왜구들에 대항하여 승병들이 무술을 수련하면서 수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는 승병들이 모여서 왜군들에 대항했던 호국불교의 산실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당시 결 건흥사는 왜군에 의해 소실되고, 전쟁 이후 인조 24년(1646년)에 다시 중창되어 신흥사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그 당시 건흥사 대웅전(현 응진전)은 여기에 옮겨져 그 예스러움을 소담스럽게 내보이고 있다.

조용하고 아담한 절집에 강하고 험한 사연들이 있음이 놀랍고, 치열했을 그 당시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승병들의 슬픈 번뇌를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바람이 차갑게도 느껴진다.


또 고향을 떠나 어떤 원한도 없이 싸움에 끌려 여린 타국 백성들을 죽여야만 했을 그 당시 왜군들도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드니, 이 조용한 절집에 이것저것 안타까운 생각에 슬픔도 몰려든다.


그 치열함도, 안타까움도, 그리운 이에 대한 그리움도 시간의 흐름에 다 희석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이 절집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조차도 시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함이 참 좋다.


산신각 높은 곳에 앉아,

그 조용함 속에서 느껴지는 바람소리, 그 바람에 서로 부딪히는 댓닢들 소리, 산새소리, 구름소리, 단풍소리, 낙엽소리, 하늘소리, 햇빛소리, 저 멀리 산들의 소리가 참 좋다.


비가 올 것 같은 소리도.


그리고,

....

시간이 흐르있는 소리 참 좋다.

....


강아지 한 마리, 낯선 이가 신경 쓰였는지, 아니면 반가운 건지 꼬리를 연신 흔들고 짖어 절집의 침묵을 흔들어 깨우니 정신이 번쩍 든다.

다시 속세로 돌아가서 정신 잘 차리고 흔들리지 말고 살아가라는 듯 크게 짖고는 다시 조용히 자기 자리인양 절집 아래에 앉아 무심히 쳐다본다.


울산신흥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대한민국  보물 제2149호

대웅전에 계신 여래께 인사들이고, 열린 문으로 보이는 산에 눈을 돌리니, 토요일 오후의 절집은 또다시 고요함에 산새 소리가 더 또렷해져 있었다.


그 산새 소리 따라 흥얼거리며 또 한참을 내려왔다.

토요일 오후의 고요함을 등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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