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목을 졸랐다.

by Lali Whale

"아빠가 나를 붙잡고 목을 졸라가지고 내 옷을 끌고 내쫓았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났다."


미숙은 동호의 두줄 공책에 적힌 또렷한 글자를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8시 50분까지 등교 한 아이들은 10분 정도 책을 보고 9시가 되면 1교시 수업 전에 두줄공책을 적었다. 이미 지난 일을 일기처럼 적는 아이들도 있고 오늘 하고 싶은 일을 적기도 했다. 4학년이지만 아직 삐뚤빼뚤한 글씨에 문법과 맞춤법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9시가 되어서야 겨우 교실문을 열고 들어온 동호가 자리에 앉아 적은 글은 힘이 묻어났고 분노가 녹아있는 것 같았다. 미숙은 "목을 졸라"라는 표현에서 어두컴컴한 반지하의 단칸방에서 술 취한 아버지가 집기를 부수며 어린아이를 때리고 겁박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와중에 '내쫓았다'의 맞춤법을 틀리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봐야 할 공책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좀처럼 손이 넘어가지 않았다.


미숙은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이다. 학교의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을 당한다고 의심되면 신고의 의무가 있다. 미숙이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회초리로 때려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숙의 어머니도 파리채나 빗자루 같은 것으로 미숙이 숙제를 안 하거나 형제들과 싸웠을 때 가끔씩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일들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사랑의 매'라는 것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부모라도 자기 자식에게 물리적인 폭력이나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은 불법이고 선생님도 다르지 않았다.


동호는 왠지 좀 시무룩해 보였다. 학습만화책에 얼굴을 파묻고 읽고 있었는데 앞의 친구가 장난을 걸어와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개구쟁이로 유명한 동호는 수업시간 중에도 미숙의 눈을 피해 자주 장난을 쳤다. 아빠에게 목이 졸려 충격을 받아 그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몰려왔다. 컴퓨터에서 동호의 학생기록부를 찾아 읽어 보았다. 학교 바로 앞의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특이 사항은 크게 보이지 않았다.


올해 전근을 온 옆반 김 선생으로부터 다른 학교에서 근무할 때 코로나로 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않으면서 가정폭력에 노출되었던 학생을 발견하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만나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알겠느냐며 분통을 터트리는 김 선생의 얘기를 들으며 미숙은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한 편에서는 아이들의 얘기만 믿고 학부모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한 새내기 선생님들이 오히려 학부모로부터 왜 아무 일도 아닌데 경찰에 신고 했냐며 비난을 받는 일도 보았다. 아직 교직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실제 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얼마나 별거 아닌 일에 많은 거짓말을 하는지 초반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더랬다. 아이의 말만 믿기도 그렇다고 아이의 말을 안 믿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말이 아닌 글 속에 있으니 증거가 확실했다. 정말 동호가 아빠에게 목이 졸리는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 위험한 일이었다.


아이들의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 수업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미숙은 다급히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책을 펴게 했다. 모니터를 켜놓고 우선 다음시간에 보려고 했던 동영상 자료를 재생시켰다. 동호가 여전히 책상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확실히 이상했다. 미숙은 인터넷으로 가정폭력 신고 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검색을 해보았다. 가정폭력과 관련된 끔찍한 뉴스들이 연관 검색으로 떴다. 하나같이 사회가 그 아이들에게 적극적인 손길을 내밀지 않은것에 은근한 죄책감을 주었다. 사명감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매해 학교에서 진행하는 의무교육에 폭력이나 안전에 관한 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신고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막막한 마음이 들고 혼란스러웠다. 그 당시 교육을 받을 때도 실제 신고를 해도 진짜 학대로부터 완전히 보호받기는 힘든 상황이 많다고 했고 뉴스나 드라마를 봐도 신고만이 답은 아닌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신고를 하기 전에 동호에게 자세히 설명을 들어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 놀이 시간에는 동호를 꼭 따로 불러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수업시간이 끝났을 때 동호는 어느새 자리를 빠져나가고 없었다. 회장에게 동호가 어디 있는지 물어봤지만 잘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미숙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미숙은 복도로 나가 동호를 찾아보았다. 복도는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동호는 보이지 않았다. 구석에서 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좀 더 빨리 확인을 해보아야 했나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미숙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학교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가 있는지 살펴보며 동호를 찾았다. 그 사이 수업 종이 울렸다. 미숙은 동호가 이미 반으로 돌아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다시 반으로 돌아갔다. 숨이 턱에 차올랐다. 교실은 아직 어수선했다. 동호는 보이지 않았다.


- 회장! 동호 아직 안 왔니?

- 모르겠는데요.


회장은 머리카락을 야무지게 묶고 뿔테 안경을 쓴 채 똘똘하게 미숙을 보며 말했다. 그때였다.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마에 땀방울을 달고 있었다. 그중에 동호도 있었다.


- 너희 수업시간인데 빨리빨리 들어와야지. 뭐 하다가 이렇게 늦게 오니?

- 좀비게임했어요.


제일 먼저 들어온 남자아이가 답했다. 좀비게임은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게임이었다. 옛날 얼음땡 같은 놀이인데, 다른 것은 술래가 좀비가 되어 눈을 가리고 나머지 애들을 잡으면, 잡힌 애들도 좀비가 되는 게임이었다. 운동장에서는 눈을 가리는 것이 위험하니 하지 말라고 해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 운동장에서는 좀비게임하면 위험해서 안된다고 했는데!

- 그래서 반만 감았어요!


장난스러운 말투에 눈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앞서가는 친구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 빨리 자리에 앉고, 동호는 선생님이랑 잠깐 얘기 좀 하자. 나머지는 잠시 다음 시간 교과서 읽고 있어.

- 아 왜요? 저만 왜요 선생님!


미숙은 동호를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이들이 창문너머로 쳐다볼 것을 고려해 같은 층의 교사 휴게실로 급한 대로 동호를 데리고 갔다.


- 동호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니?

- 아뇨. 무슨 일이요?

- 동호가 두줄공책에 아빠가 동호의 목을 졸랐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이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서.

- 아. 제가 아침에 게임하느라고 학교에 안 가서 아빠가 화가 났어요.

- 아 그랬구나. 화가 나서 아빠가 동호를 때리신 거니?

- 그건 아니고요. 학교에 가라고 해도 안 가니까 아빠가 저를 끌고 문밖으로 내쫓은 건대요.

- 목을 졸랐다고 쓴 건 뭘까?

- 제가 안 간다고 버티니까 아빠가 멱살을 잡는 거예요. 짜증 나게.

- 아. 놀랐겠네. 무섭지는 않았고.

- 별로요. 엄청 화났어요.


미숙은 순간 당황했다. 자신이 생각한 전개와는 사뭇 달랐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선생님이 신고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미숙은 이미 엉덩이가 덜썩거리고 딴짓을 하는 동호를 데리고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책을 읽고 있으라고 한 말이 무색하게 교실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동호는 마치 물고기가 물로 들어가듯 삽식간에 아이들의 신나는 분위기에 스며들었다. 미숙도 긴장이 풀렸는지 온몸이 노곤해지는 것 같았다.


- 자, 특별히 소리 내지 않는 좀비게임이다. 소리 내는 사람부터 술래! 책상 뒤로 밀어.


와! 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책상을 뒤로 밀었다. 입을 막고 신나 죽겠다는 표정의 동호가 누구보다 빨리 책상을 밀고 숨었다. 미숙은 학부모 면담을 위해 준비한 학생 특기 사항에 오늘의 일을 놓치지 않고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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