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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Apr 22. 2024

막장

나는 소중한 사람의 딸

막장은 메주를 빻아 만든 가루에 보리쌀이나 멥쌀, 소금을 섞어 넣어 숙성시켜 먹는 장이라고 한다. 난 잘 모른다. 결혼해서 시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막장, 또는 빡장이라고 하는 이 큼큼한 냄새가 나는 장을 주셔서 처음 먹어봤다. 시어머님의 막장을 이번 식목일에 나무를 심으러 온 엄마와 먹게 되었다. 


- 외할머니가 막장을 정말 맛있게 만들었는데. 아무도 못 배웠단 말이야. 

- 왜? 

- 그 나이 때는 관심이 없었거든. 

- 그 나이?

- 결혼 전이지. 

- 그럼 20대 초. 그 시대에는 관심 있을 나이 아닌가?  


엄마는 2남 5녀 중 6번째 딸이다. 위로 언니가 셋 있고 오빠가 둘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들은 일찍이 시집을 가버렸고, 연배가 비슷한 오빠는 남자라고 집에서는 아무 일도 안 하고 폭군처럼 동생들을 괴롭혔다고 했다.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나이가 지긋하셨던 엄마의 아버지는 엄마가 크면서 병이 깊어져 힘든 일을 못하셨다. 그러면서 엄마는 어릴 때부터 풀을 베고 리어카를 끌고 과수원 일을 하는 등 사내아이가 할 일들을 도맡아 하셨다고 했다. 큰 힘이 안 드는 집안일은 엄마가 다 하셨는데 너무 바빠서 엄마를 챙기거나 소소한 살림을 가르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세대를 걸쳐 엄마에게 배울 수 있는 엄마의 음식을 우리 엄마는 모른다. 결혼해서 그 맛이 그리워 한 번 해 먹어 보려고 해도 도무지 그 맛이 나지 않았다고 아쉬워하셨다. 


- 할머니는 왜 그런 것도 좀 안 가르쳐 줬지 딸한테. 

- 할머니는 집안일이 너무 많았어. 바깥일을 하느라 엄마도 너무 바빴고. 집에서 그런 걸 볼 틈이 없었어. 그런데 그건 지금도 서운하더라. 엄마가 생리를 처음 시작했는데, 생리대가 없는 거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혼자 집에서 남는 천을 잘라 생리대를 만들었어. 면도 아니고 겉이 반들반들한 나일론이었어. 그걸 쓰고 빨아서 말려 놨거든. 분명 엄마도 몇 번 봤어. 그럼 면으로 된 천으로 하라고 알려주든가 해야 하잖아.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왜 그랬을까? 


엄마는 그럼에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을 했다. 나는 생리를 하고 혼자 당황했을 어린 소녀가, 형편없는 천조각으로 생리대를 만들어 썼을 그때의 엄마가 너무 안타깝고 슬펐다. 어떤 순간에도 기댈 수 없게 한 할머니의 무심함과 할머니를 그렇게 만든 시대에 화가 났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시다면 물어볼 수라도 있을 텐데 돌아가신 지 수십 년이 되었다. 힘들었던 할머니를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까지 무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어린 엄마도 분명 서운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 엄마 시집갈 때 창원의 넓은 집을 팔았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딸 시집가는데 집도 팔았다고 말이 많았어.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 몰라. 집은 팔았는데 엄마는 결혼할 때 정말 하나도 받은 게 없었거든. 


엄마의 서러운 스토리는 봇물 터지듯 터졌다. 얘기를 들어보니 엄마의 결혼 무렵에 나의 외할아버지가 큰 수술을 몇 번씩 하면서 빚을 크게 지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집을 파셨던 것 같다. 하지만 '왜 외할머니는 다만 얼마의 비상금조차 주지 않으신 걸까?' 하는 생각이 나만 들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엄마는 아빠를 세 번째 보는 날이 결혼식 날이었다고 했다. 너무 결혼하기 싫어서 몇 번이나 말했지만 아무도 엄마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생면부지의 남자와 경상도 시골에서 서울로 시집가는 딸에게 외할머니는 실가락지 하나 주지 않으셨다. 엄마가 아무런 혼수도 없이 시집을 와서 좀스러운 아빠는 두고두고 그런 엄마를 무시하고, 엄마는 또 오래오래 그 한을 마음에 안고 살았다. 


- 할아버지가 수술을 하고 퇴원하는 때였는데, 할아버지 기분 좋으라고 엄마가 할아버지 오는 길 목의 풀을 다 베어 놨었어. 

- 할아버지가 좋았대? 

- 몰라. 

- 엄마가 베 놨다고 말도 안 했어? 

- 그런 말 할 줄 몰랐어. 


맙소사.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착했을까?  나는 어릴 때 설거지만 해도 엄마가 집에 오자마자 손을 끌고 가 내가 한 일을 보여줬었다. 청소를 해도 빨래를 개도 학교에서 칭찬을 받아도 제일 먼저 엄마에게 얘기하고 기어이 칭찬을 받았다. 엄마만큼 격렬히 칭찬을 잘해주는 사람도 드물었다. 아마 엄마도 되게 받고 싶었는데 못 받아서 아이를 낳으면 꼭 많이 칭찬해 줘야지 하셨나 보다. 


엄마의 말대로 집안일은 못 배워서인지, 엄마는 지금도 집안일은 참 싫어하신다. 친정에 간다고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시는 일도 없다. 신혼여행을 갔다가 집에 왔을 때 난 친정에서 남편과 사발면을 끓여 먹었다.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밥은 하지만 진짜 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기대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난 고작 그 정도의 일이 서운했던 것 같다.       


- 엄마 이거 막장 가져갈래? 

- 그래. 맛있네. 


얻어온 것이 얼마 안 돼 엄마에게 반을 드렸는데 다 드릴 걸 그랬다. 


나는 소중한 사람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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