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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Apr 15. 2024

예술가의 정체성

나는 성실한 예술가

나는 성실한 예술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과거에는 방만하였으나 지금은 그렇다. 난 생각이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내 창작의 표현 도구는 '글'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그것을 내 안에서 소화해 나만의 결과로 만드는 과정이 좋다.


토요일에 10시부터 5시까지 쉬는 시간 없이 상담이 있었다. 전날 고지받은 스케줄이라 중간중간 에너지 충전을 위해 2200원짜리 매머드카페의 아이스 라떼와 지난주 선물받은 초콜릿을 가져갔다. 토요일은 평일에 시간이 없는 직장인이나 학교 학원 때문에 오기 어려웠던 청소년 내담자들이 올 수 있는 시간이라 다른 날보다 일이 많다. 


근래 상담을 하고 있는 내담자 중에 대기업에 다니는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그녀는 너무 힘들다. 꿈도 많고 열정이 넘쳤던 20대 때는 작은 브랜드에서 스스로를 갈아가며 일했다고 한다. 유학도 가고 싶고, 자기 브랜드도 만들고 싶어 부당한 대우나 폭언, 밤샘작업도 참아가며 일했는데 불행하고 도저히 못하겠어서 1년 만에 그만뒀다고 한다. 자신이 롤모델로 가졌던 사람들을 옆에서 보니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 여전히 불안해하고 성과에 허덕이며 힘들게 살고 있더란다. 그때부터는 처음의 화려했던 꿈이 없어지고 일상인이 되었다. 그때부터는 즉각 확인할 수 있는 업무 고가나 주변의 인정, 판매율 등이 목표가 되어 살아왔는데 그게 잘 될 땐 행복하고 안 될 때 불행하니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상사는 알아주기는커녕 깎아내리기 바쁘고 잘 팔릴 거라 생각한 옷의 판매율은 예상과 달랐다. 말하지 않았는가! 움직이는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삶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안녕 나의 선샤인 -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 움직이는 과녁 https://brunch.co.kr/@highnoon2022/21)     


"그럼 어떻게요?"

"같이 생각해 볼까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 말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 중에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있나요?" 

"그리고 만드는 일 자체는 좋아해요. 내가 만든 것이 바로 결과물로 나오는 것도 좋고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네요."

"네."

"좋네요!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바로 확인되는 결과 말고 함께 가고 싶은 가치를 가지는 거예요. 결과를 목표로 삼으면 결과를 못 이루면 못 이룬대로 불행하고 이루면 이룬대로 잠깐은 좋은데 다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리게 되거든요. 프로메테우스처럼요." 

"가치요? 선생님은 그런 게 있으세요?"

"전 예술가의 정체성이요."


나도 당황했다!

내 입에서 그 말이 너무 당연히 나왔다. 


등단하지 못한 습작생인 나에게는 타이틀이 없었다. 작가라고 하기에는 등단을 못했고 작가지망생은 억울했다. 작가가 되려고 국문과를 들어갔고, 작가교육원도 다녔고, 혼자 또는 같이 글도 써왔다. 나는 분명 글을 계속 써왔는데 고3 수험생도 아니고 지망생이라니 그것 또한 맞지 않았다. 등단하고 싶고 공모전 수상도 하고 싶고 내 책도 갖고 싶지만 그것이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 인정을 받으면 받는 대로, 못 받으면 못 받는 대로 나는 계속 쓸 것이기 때문이다. 전에 남궁민 배우가 무명으로 있던 10년이 넘는 시간도 너무 행복했다고 인터뷰에서 얘기했다. 큰 성공을 한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무명이라고 스텝들이 무시하고 쌍욕을 해도 연기를 하는 것이 좋아 촬영장으로 가는 길이 설레고 좋았단다. 인정받지 못할 때도 무능감을 느낄 때도 배우라는 확고한 정체성이 그를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의 열매는 치명적으로 달고 도파민을 샘솟게 하지만 그것에만 취하면 술이나 마약처럼 중독이 된다. 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안고 사는 삶은 끝이 없는 과정이기에 그 가치는 매일 먹는 밥처럼 힘이 된다. 간혹 맛없고 간혹 거르고 간혹 인스턴트로 대체하긴 하지만, 밥을 먹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한다. 


나는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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