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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May 13. 2024

FP시댁의 TJ 며느리

지난주에 결혼하고 처음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5일간의 동남아시아 패키지여행이었지만, 나름은 큰 결단이 필요했다. 결혼하고 몇 차례 시부모님과의 여행을 계획했지만 번번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난 섬세하고 철두철미한 계획형 인간이기 때문에 나름 모두가 만족할 만한 계획을 꼼꼼히 세우는데 시부모님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첫 번째 여행은 워터파크가 있는 리조트였다. 그 당시에는 시아버지가 계셔서 각자 사는 곳에서 출발해서 여행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이가 어렸고, 어머니 무릎이 안 좋아 많이 돌아다닐 수가 없어 바닷가에서 회를 먹고 리조트에서 수영을 하고 놀 계획이었다. 4인 조식 포함으로 1박 2일이지만 멋지게 풀코스로 대접을 하려 했지만...... 음식점에서 회는 먹지도 않은 아들이 낮에 신이 났는지 토사곽란이 일어났다. 흔한 일이어 깔끔하게 치우고 리조트에 가려고 했는데 우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아이가 아픈데 집에 가라며 홀연히 댁으로 돌아가셨다. 당황했지만, 우리 가족만 다음날 조식 먹고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놀다 왔다. 


두 번째 여행은 시부모님과 근처 당일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하고 아침 일찍 시댁으로 출발했다. 우리 가족과 시부모님 까지 5명이 한차로 움직일 계획이었고 분명히 그렇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시부모님을 모시러 집에 도착해 보니 무려 14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시댁식구가 총출동한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시부모님은 계획 변동에 대해 상의나 동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어차피 계획은 다 망한 거 배가 산으로 가건 사막으로 가건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비까지 주룩주룩 내려서 밥만 먹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시댁 식구들에게는 흔한 일이었고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이 나의 남편의 가족문화라는 생각에 나는 내 나름의 적응을 했다. 그렇게 10년간 난 시부모님과 어떤 여행도 가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내 의견에 귀 기울이진 않으셨지만, 아무것도 안 한다고 비난하진 않으셨다. 단체 생활을 싫어하고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오히려 득이었다. 


작년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올해 어머님의 칠순을 맞아 십 년 만에 다시 여행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여러 장소가 물색되었고, 어머니의 한 마디에 예약한 숙소가 단양에서 미원으로, 미원에서 주문진으로 번복되었지만 칠순 여행이니 맞춰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 10일 전쯤에 어머님이 친구들과 다음 주에 여행을 가실 거라며 우리와의 여행은 피곤해서 못 가신다고 일반적으로 약속을 파기하셨다. 대단히 황당했지만 칠순에 대한 호의는 보였고 시간과 비용, 노력을 아끼게 되었으니 그다지 화가 나진 않았다.


그런데 내가 늙었는지, 홀로 계신 어머니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머닌 여행을 좋아하지만 갈 수가 없어  '걸어서 세계 속으로'만 매일 보신다. 여행은 고사하고 운전면허가 없어 남편이 죽고 나서는 마트도 편하게 못 다니는 실정이 되었다. 친구들과 수영이라도 배우고 싶어도 차가 없으니 매번 부탁을 할 수도 없고 월 몇만 원짜리 수영을 위해 매일 몇만 원씩 택시를 왕복으로 탈 수도  없어 당신은 수영에 취미가 없다고 함께 하지 않으셨단다. 


"어머니 담에 한번 동남아로 여행이나 갈까요?"


여행이 파투난 칠순에  '담에 밥이나 먹어요~'와 유사한 톤의 말을 뱉은 것이 내 발목을 잡았다. 어머님이 여권을 만들고 언제 가나 하고 기대를 하신 것이다. 그렇게 시어머니와 우리 가족은 함께 여행을 갔다.  난 패키지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머니의 요구에 맞는 계획을 짜는 부담을 얻느니 정해진 코스가 더 나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약속을 어겨도 저가의 패키지라 포기 비용이 높지 않고, 4인용 숙소는 우리 가족끼리 넓게 쓰면 그뿐이니 그것 또한 큰 염려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정대로 우리는 모두 한 비행기를 탔다!


사실상 처음으로 어머니와 온전한 시간을 함께 보낸 경험이었다. 알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매 순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시댁의 가족문화는 수직적인 관계, 남녀차별, 윗사람에게 순종적인 문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언니랑 싸우다 힘으로 안 되면 개처럼 물어서라도 굴복하지 않았고, 부모님이든 선생님이든 내 뜻과 다르면 듣지 않았다. MBTI로 하면 어머니는 FP(감정-인식형), 나는 강력한 TJ(사고-계획형)다. 예상컨대 내가 황당했던 때 보다 어머님이 서운했을 순간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어머니는 손바닥 두 뼘 크기의 작은 창에 얼굴을 들이 밀고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내내 밖을 내다보셨다. 뽀글뽀글한 흰머리의 뒷모습이 창을 가득 매웠는데 통통하고 둥근 어깨와 팔도 창을 향해 있었다. 20살에 처음 비행기를 타고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의 어머니처럼 작은 창에 붙어 비행기가 뜨고 지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봤었다. 물론 나는 어머니가 창 밖의 무엇을 그렇게 집중해서 보셨는지 확실히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창가 쪽보다는 화장실 가기 편한 복도 쪽 좌석을 선호하게 되었다. 칠순의 할머니가 스무 살 소녀처럼 비행기 창을 내다보는 뒷모습은 꽤 오래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나는 FP 시댁의 TJ 며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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