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i Whale Apr 29. 2024

멋으로 참전한 전쟁의 행운아

나는 철없는 행운아의 슈퍼카

아빠는 베트남참전 용사다. 그래서 매월 국민연금과 별도로 참전명예수당을 받고 보훈병원에서 진료받을 때 병원비 혜택도 받는다. 


어릴 때, 부모님 방의 서랍장 안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007 가방 같은 것을 열면 휴대용 전축(LP플레이어)이 나왔고 시가와 영화에서나 본 플라스틱 담뱃대, 전기가 통하는 마사지기, 크고 작은 케논 카메라 등 온갖 것이 있었다. 그때는 그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아빠의 물건들을 다 꺼내서 작동시켜 보고 놀다가 고스란히 넣어놓고는 했다. 아빠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을 때, 물자수송을 담당해서 작은 전자제품들을 몰래 들여와 팔았다고 했다. 엄마는 가져올 거면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비싼 것을 가져와야지 아빠가 좀스러워 작은 물건만 가져와 팔아서 이득이 적었다고 한심해했다. 예상컨대, 아빠가 팔다 남은 사진기나 전축, 면도기 같은 것이 남아 우리 집 서랍장에 보물처럼 모셔져 있었던 것 같다. 


가난한 시골 농부의 6형제 중에 둘째였던 아빠는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힘들게 농사를 짓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후에 미싱을 만들고 고치는 기술을 배워 취직은 하셨으나 성실하진 못하셨다. 원체 노는 것을 좋아하고 허세가 강해서 한 직장에 오래 있지 못하셨다. 하지만 아빠는 놀랍게 불안이 없고 앞 일을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사업을 하다 말아먹어도 집에 오면 배가 고프고 밥만 먹으면 텔레비전을 보다 쿨쿨 잘 주무셨다. 아빠를 생각하면 웃고 있는 모습이 많이 생각나는데, 엄마가 아무리 인상을 쓰고 당장 내일 갚아야 할 빚과 이자를 근심하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엄마의 눈을 피해 재밌는 삶을 살지 꿈꾸는 해맑은 얼굴이 있었다.  


지금 봐도 정말 철딱서니가 없는 아빠가 도대체 왜 그 무시무시한 전쟁에 참여했는지 나는 너무 궁금했다. 


- 아빠, 아빠같이 겁 많은 사람이 도대체 왜 전쟁에 참가한 거야? 

- 비행기 타고 싶어서. 돈이 없으니 해외 나갈 일이 없잖아. 총 들고 싸우는 것도 멋있고. 장남인 형님이 있으니까 나는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것 해도 된다고 생각했지. 군대도 어차피 가야 하고 하니까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지. 그런데 물자수송부에 배정을 받아서 총은 한 번도 못 쏴봤어.

- 아빠 웃통 벗고 총 들고 찍은 사진도 있던데? 

- 그거 내 거 아니야. 다른 사람 거 빌려서 사진만 찍은 거야. 아빠한테는 총을 주지도 않았어. 전쟁이 났다는데 나는 한 번도 싸우는 걸 못 봤어. 신기하지?  

- 와! 진짜 행운아네. 

- 비행기랑 헬리콥터는 원 없이 타봤지. 나중에 알았잖아. 그렇게 무서운 거였으면 절대 안 갔을 텐데. 


아빠가 웃으면서 얘기하는데 진심이었다. 미국인들이 벌벌 떨고 결국은 패전했던 베트남 전쟁에서 아빠는 총 쏘는 것 한 번 보지 못한 것이다. 전쟁 후에도 미국인들의 PTSD가 너무 심해서 그 치료를 위해 미국의 정신의료 분야가 크게 발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무일푼이었던 젊은 아빠는 그 전쟁으로 월급을 받아 집도 사고, 늙어서는 의료혜택도 받고 명예수당도 받으니 이런 행운이 없다.  


그런데 아빠는 어떻게 전쟁이 무섭다는 것을 몰랐을까? 진짜 몰랐거나 다른 사람의 얘기를 지독하게 안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하면 왜 엄마가 아빠와 살면서 그토록 답답해했는지 우회적으로 이해가 된다. 아빠는 다른 사람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상식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빠는 양치질을 해야 한다는 것을 환갑이 되어서 확실히 알았다고 했다. 홍역 때문에 치아가 많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아빠는 삼십 대부터 틀니를 꼈는데, 엄마 말에 따르면 이 닦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무리 할머니가 바빠도, 학교에서 기본교육을 받은 아빠가 양치질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상식도 윤리도 아빠만의 기준이 있었는데 그것이 보통과 너무 달랐다.     


그럼에도 아빠랑 나는 언니나 엄마보다 좋은 추억이 많이 있다. 아빠는 성격이 모나고 할 말을 다 하는 나를 좋아했다. 지랄 맞긴 한데 나는 잔소리를 하면서도 아빠 옆에 있었다. 아빠가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을 했을 때도, 내가 가니 아빠가 굉장히 반가워했던 표정이 기억난다. 아빠가 친구들과 낚시를 가면 한 밤중에도 눈을 비비며 같이 갔다. 엄마는 장사를 하느라 1년 365일 14시간 이상 일했고, 아빠는 어디에서 일해도 주말에는 놀고 밤에는 잤다. 그렇기에 나에게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 먼저 달려올 수 있는 것은 아빠였다. 편의점 유리문에 손가락이 찢어졌을 때도 아빠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언니랑 싸우다가 눈이 찢어졌을 때도 아빠가 나를 태우고 응급실에 갔다. 내가 어릴 적에 아빠가 회사를 자꾸 그만두니 그런 아빠를 달랠 심산으로 엄마가 아빠에게 그 당시 중형차였던 금색 스텔라를 사주었다. 포니 2에서 스텔라로 갈아 탄 아빠는 차고에 차를 모셔 두고 비닐로 된 전체 커버를 매일 밤 덮고 아침에 벗겼다. 매주 주말에는 물, 세제, 왁스로 3단계에 걸쳐 세차를 하는 등 아주 애중중지 하셨다. 세차를 하는 것을 지켜보다 내가 물었다. 


- 아빠 이 차를 타고 가다 내가 사고가 나면 어떡할 거야? 


나는 아빠가 차부터 걱정할 거라 생각했다. 


- 망치로 이 차 다 부숴버릴 거야. 


말과 안 맞게 너무나 소중히 차를 닦으며 아빠가 말했다. 그래도 아빠가 차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다. 아빠는 여전히 6시에 온다고 하고 8시에 오고, 모든 음식을 섞어서 먹고, 강동구에 사는데 강남에 산다는 식으로 허풍을 떤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아빠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빠의 상식은 여전히 나랑은 다르다. 하지만 근거 없는 똥고집에 나와 너무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아빠가 나를 사랑하고 과거에도 지금도 나는 그것을 안다. 그 상식만큼은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어 다행이다.      


나는 철없는 행운아의 슈퍼카다.
이전 02화 막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