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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Oct 11. 2024

25. 은호야, 아빠 따라갈래?

죄책감에 빠진 윤영은 영철에게 연락한다! 

지난 이야기

24. 홀로서기

경찰서로 나와 집으로 들어간 지수는 자신을 학대했던 엄마에게 마지막 울분을 터트린다. 집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지수. 


윤영과 은호가 병원으로 갔다. 시간이 일러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은호의 갈비뼈 몇 군데에 금이 가고 손가락이 골절되어 있었다. 등과 다리에도 심하게 멍이 들어있었다. 검사를 할 때도 몸을 쭉 펴기 힘든지 움찔거리며 고통을 참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많이 놀랐는지 상태가 좋지 않아 응급처치를 받고 진정제를 투여받으며 침상에 누워있었다.      


윤영은 그런 은호를 보며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은호는 조심스러운 아이여서 어릴 때도 잘 넘어지지도 않았다. 그런 아이가 무슨 일인지 계단에서 넘어져 이마가 찢어졌었다. 그때는 어찌나 놀랐는지 막 소리를 지르며 아이에게 달려가 그대로 업고 병원에 갔었다. 초등학생이라 업고 다닐 나이가 아니었는데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윤영도 당황했던 것 같다. 근처의 소아과에 가도 처지가 안 되어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갔다. 이마를 꿰매는 동안 은호의 손을 꼭 잡아주고 돌아오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 먹었다. 그때는 걱정되고 속상했지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미혼모 시설에서 나와 은호를 보육원에 맡길 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단칸방 구할 돈도 충분치 않던 스물의 윤영이 일을 하며 갓난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었다. 초등학교가 되어 원룸에서 은호와 함께 살면서 아빠 없는 아이라고 손가락질받지 않게 엄하게 키웠다. 원룸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약 손님이 있으면 새벽이든 밤중이든 가리지 않고 나갔다. 텔레비전을 틀어주고 어린아이를 혼자 두고 나왔지만, 별일 없을 거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곧잘 했고, 미용 일도 경력이 생겨 수입이 괜찮았다. 이제까지 보내주지 못한 학원도 여러 군데 보내고 학교생활도 더 신경 쓸 여력이 생겼다. 아이는 학교에서 회장을 도맡아 하고 공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욕심이 났다. 은호 덕에 으쓱하는 마음을 살면서 처음 느껴보기도 했다. 아이가 잘할수록 더 악착같이 벌었고, 아이에게만 매달렸다. 윤영은 자신이 꽤 괜찮은 엄마 같았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받아오는 그의 동그라미가 가득한 성적이 자신의 인생을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뿌듯했다. 마치 한석봉의 어머니라도 되는 듯 자신이 떡을 썰면 아들은 공부만 열심히 할 줄 알았다. 엄마가 고생한 것 알아서 나쁜 짓 안 하고 곧게 클 줄 알았다. 자신도 그러지 못했는데 아이에게 바랐다. 은호의 동그라미가 엄마에게 버림받지 않으려는 아이의 발버둥이라는 것을 몰랐다.      


모든 것이 윤영과 은호를 버린 영철 때문이라고 원망하고 싶지만, 은호의 방황이 그가 나타나기 전부터인 것을 사실 윤영은 알았다. 버림받는 두려움과 분노가 어떤 것인지 윤영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았다.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본 적 없는 아빠에게 버려졌다.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 방을 치우고 혼자 세수를 하고 밤이 늦도록 자지도 않고 엄마를 기다렸다. 자신을 봐주지 않는 엄마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아도 항상 그 자리였다. 사랑받고 싶어서 절절매는 자신이 정말 싫었지만, 누군가 조금만 자신을 봐줘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은호를 키우면서 그것이 '불완전 애착'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랑이 불완전해서 상대에게 온전히 가지도 오지도 못한다니 정말 자신 같아 그 말이 싫었다. 외롭지만 무서워서 문지방에 서서 망설이는 자신처럼 은호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가 아들에게 물려준 것은 불완전뿐이라는 좌절이 그녀를 바닥에서 지하로 곤두박질치게 했다.      


안정제를 맞고 잠이든 은호 옆에서 윤영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영철에게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 은호 데려가면 어떻게 할 계획이야?      


영철이 금방 자신의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답이 없었다. 이 사람의 생각이 바뀐 건가 아니면 사실 계획이란 게 없었던 건가 불안해지면서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손에서 땀이 났다.  

    

- 최고의 보딩스쿨에서 은호가 원하는 건 다 해줄게. 약속해. 

- 다 해줄 것처럼 하고 필요 없어지면 버렸잖아. 은호한테 그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어? 

- 너랑은 더 나을 거란 보장이 있어?      


없었다. 주책없이 눈물이 났다. 손으로 눈물을 닦아도 핸드폰 화면이 안 보일 정도로 눈물이 흘렀다.      


- 윤영아. 지금 은호 위험해. 지금 얽혀 있는 얘들이 언제 다시 은호 앞에 나타날지 몰라. 너도 봤잖아. 어제는 요행히 빠져나왔지만, 다음에는 장담할 수 없어. 알아보니 은호 같은 얘들 빌미잡아서 노예처럼 만든대. 어제 끝까지 갔으면 은호는 성폭력 가해자 되는 거였어. 인생 망치는 거야. 네가 진짜 감당할 수 있어? 

- 네가 은호 이용만 하고 버리면……. 

- 윤영아. 나도 이제 그때의 내가 아니야. 나도 아빠야. 은호 공부도 잘하잖아. 은호가 원하는 거 네가 정말 다 해줄 수 있어? 난 있어.  

- 골수 수술은 아픈 거 아니야? 

- 아니야. 그건 내가 책임질게. 검사해 봐야 알아. 안 맞을 수도 있고. 하지만, 검사에 동의만 해줘도 내가 은호는 책임질게. 크리스 상태가 좋지 않아.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너 남자도 있잖아. 어제 경찰서에 있던 그 애 맞지?     


윤영의 손에서 핸드폰이 뚝 떨어졌다. 영철이 알 수 있을 거란 것은 예상했다. 미행을 붙였다면 은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윤영이 은호의 친권자 자격을 잃게 할 빌미를 더 치밀하게 찾았을 것이다. 그가 쾌재를 부르고 자신들을 지켜봤을 생각을 하니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빨개졌다. '걸레 같은 년……'.     


은호가 떨어진 핸드폰을 주웠다. 윤영이 놀라 은호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으려 하지만 닿지 않는다. 갈비뼈와 손가락이 골절된 아이의 몸을 함부로 잡을 수도 없었다. 은호는 몸의 고통을 삼키고 핸드폰을 손에 들고 등을 돌렸다. 침대에서 일어나니 팔뚝에 붙은 주삿바늘이 뒤틀려 빠졌다. 그 자리에서 피가 빨갛게 새어 나왔다. 조금 더 나아지려고 하는 모든 행동이 파국이었다. 3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은호의 핸드폰을 잡은 오른손이 툭 하고 떨어졌다. 윤영의 핸드폰도 같이 떨어졌다. 윤영은 은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화를 내면, 그때처럼 자신을 발로 차고 짓밟으면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핸드폰을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윤영이 은호의 앞으로 갔다. 은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울고 있었다. 자신의 키보다 한 뼘은 더 크고 단단한 어깨를 가진 아이가 서너 살 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윤영이 그런 은호를 안았다. 아플까 봐 꼭 안지도 못하면서 아이의 부서진 가슴이 다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간신히 잡았다.      

은호가 윤영의 품에서 미끄러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마를 바닥에 대고 엉엉 울었다. 울음소리에 섞여 빌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손은 자신을 향해 빌고 있었다. 팔뚝에서 흘러내린 피가 아이의 손끝에 묻어 떨어졌다.      


- 엄마. 나 보내지 마. 보내지 마. 엄마. 나 보내지 마. 나 보내지 마. 엄마.      

       

간호사가 놀라서 달려왔다. 엎드려 있는 은호를 다시 침대에 누이려 했지만, 은호가 굳은 것처럼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윤영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은호를 차가운 바닥에 계속 울게 둘 수는 없었다.      


- 아파. 은호야 어서 일어나. 엄마가 다 미안해.   

   

윤영이 은호를 일으켜 세웠다. 의사가 와서 더 강한 진정제를 은호의 팔에 꽂았다. 흥분해 있던 은호가 스르르 무너지듯 다시 잠이 들었다. 바닥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으로 부르르 떨렸다.       


다음 이야기

26. 바보 같은 난 자꾸 네가 보고 싶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지수에게 발길이 가는 윤영. 기어코 그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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