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의 생존법 - 향미
박교감: 이번에 그 자리로 들어오는 얘가 누구라고? 누구 대신 오는지는 알고 오는거라카드나?
박교감은 족발을 집어 먹던 젓가락으로 이에 낀 상추와 고기 찌그레기를 긁어내며 말했다. 근본 없는 사투리는 안 그래도 비호감인 그를 더 건들거리게 보이게 했다.
김주임: 알긴 뭘 알아. 그냥 변변치 못한 게 일자리 찾아 얼씨구 나하고 오것지.
학년주임인 김주임은 그런 박교감을 보고 수저를 내려놓고 물을 들이키며 말했다. 호주머니에 항상 챙겨 다니는 잘 다려진 손수건을 꺼내 입가와 아무것도 묻지 않은 손을 연거푸 닦아냈다. 김주임은 박교감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지만 그의 성미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저런 인간에게 교감자리를 뺏겼다는 것이 더없이 수치스러웠다.
박교감: 이쁘나?
김주임: 사진으로 봐서 아나.
박교감: 어떤 아인가 그런 거 잘 알아보고. 낼 서류 다시 한번 가와 봐라.
교감이 된 후 사적인 자리에서 은근히 자신을 무시하는 박교감의 작태에 동갑인 김주임은 배알이 꼴렸다.
향미: 안녕하세요. 이번에 기간제 교사로 들어온 윤향미입니다.
눈에 띄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눈매가 또랑또랑하고 입술이 도드라지게 붉고 통통했다. 지방의 작은 초등학교에 기간제로 오는 젊은 여교사가 많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과 동네 사람들의 관심도 지대했다. 향미는 교사 숙소로 주로 쓰였던 동네 이장 집 별채에 묵지 않고 동네에서 차로 떨어진 외국인들이 많이 묶는 외진 지역의 원룸에 방을 얻었다는 것도 사람들을 갸웃거리게 했다.
선생님 1: 저 샘은 자기가 누구 대신 들어온 줄 모르죠?
선생님 2: 모르지. 살해당한 사람 자리인 줄 알면 여기까지 오겠어?
선생님 1: 어휴. 저 자리 꽃 치워진지가 언젠데 바로 다른 사람 데려온 김주임이랑 박교감도 진짜. 으휴.
하나밖에 없는 교무실에 백 년은 박혀있었던 것 같은 책상들이 촘촘히 있고 그 위로 온갖 책과 비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새로운 기간제교사가 서서 인사를 하는 그 자리만 깔끔히 비워져 있었다.
향미가 인사를 하던 그때 교무실 문을 열고 박교감이 들어왔다.
박교감: 아. 이분이 새로 오신 그 기간제 교사님. 아 반갑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인재가 우리 학교에 와주시고. 앞으로 잘 부탁드리고요. 오늘 저녁 시간되시면 다들 같이 환영회 준비해 주시고요. 우리 김주임님이 알아서 회비 좀 모아 주시고요.
박교감의 눈이 향미의 몸을 스캔하는 모습을 본 선생님 1,2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핸드폰을 잡아 탁탁 쳤다. 김주임은 향미의 겨드랑이 쪽으로 시선이 꽂힌다. 하얀 블라우스가 짙게 땀에 젖어 있는 것을 보자 김주임의 안경을 지탱하고 있는 콧잔등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삼겹살 집에 모인 이들은 재빨리 밥만 먹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집으로 갔다.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한 박교감과 물 만 들이키면서 이제껏 남은 김주임 그리고 향미였다.
박교감: 꺼억. 너무 분위기 좋네. 근처 가서 딱 한잔만 더해!
김주임: 윤선생은 집이 어디예요?
향미: 근처예요.
김주임: 아 그래요. 그럼 윤선생집에서 딱 한잔만 하면 어때요? 학교생활에 대해서도 좀 의논할 겸. 박교감 저 사람은 사람이 점잖치않아서... 보아하니 지금 몸도 못 가눠.
향미: 아.. 네.
김주임은 박교감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향미의 눈치를 살폈다.
김주임: 아. 그래도 처음 가는데 편의점에라도 들러서 휴지라도 사야 하나 허허.
술도 안 마신 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향미는 저 멀리서 기다리고 김주임은 각티슈와 맥주 안주거리 몇 개를 사들고 향미가 있는 곳으로 잔걸음으로 다가갔다. 시골의 원룸촌에는 CCTV도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선생님 1: 김주임 며칠째 안 보이네요. 그런 분이 아닌데. 집이랑 핸드폰도 연락이 안 되고... 아내와 별거 중이어서 본가에서도 언제부터 안 계신지도 잘 모르는 눈치던데.
선생님 2: 그러게. 만날 붙어 다니던 박교감도 모르는 것 같고. 윤선생 환영회 이후로 안보이잖아?
선생님 1: 윤선생 그날 언제 갔어?
향미: 저는 교감님 가실 때 가고 주임님이 교감님 모셔다 드리고 어디 가신다는 것 같았는데 글쎄요.
향미는 자신의 책상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무미건조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