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최면을 믿으십니까?

이 여자의 생존법 - 은영

by Lali Whale

은영은 남편이 또 양말을 뒤집어서 빨래 바구니 뚜껑 위에 그대로 던져 놓은 것을 보았다. 10년 이 넘게 남편에게 양말은 바르게 벗어서 빨래 바구니 안으로 넣어 놓으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하고 또 얘기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한결같이 양말 밴드 부분을 손가락으로 당겨 훌렁 뒤집어 벗기고는 빨래 바구니 안이 아닌 뚜껑 위에 던져 놓았다.


은영이 양말 때문에 화가 나서 얘기를 하면 남편은 기분이 좋을 때는 ‘네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며 과장되게 굽실거리는 포즈를 취하며 양말을 다시 뒤집어 빨래통에 넣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쁠 때에는 ‘내가 놀다 왔어! 네가 집안일하는 거고 내가 돈 버는 거잖아. 싫으면 네가 나가서 일을 해. 내가 양말 뒤집고 밥하고 청소할 테니까!’라고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나다가도 양말 뒤집고 빨래통에 넣는 것도 주부의 일인가 싶기도 하고 이 꼴 저 꼴 안 보려면 남편 말대로 내가 나가서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쪼그라들기도 했다. 한 때는 알바천국을 뒤적이며 할 일이 있나 알아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주부들이 할 수 있는 자격증이나 교육은 없는지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은영에게는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연년생 남자아이가 둘 있었고 주변에는 아무도 아이를 대신 봐줄 사람이 없었다. 마트나 빵집의 시간당 급여를 따져보면 아무리 일해도 두 아이의 시터 월급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남편의 말이 자존심 상하고 억울하지만, 지금 은영이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의 그런 말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은영은 꾀죄죄하고 냄새나는 남편의 양말을 다시 뒤집어 세탁기에 넣어 돌리면서 남편도 같이 세탁기에 넣고 강으로 돌리는 상상을 했다. 앞에 있으면 소리라도 지를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양말 때문에 일하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낼 수도 없었다. 세탁기 도어로 남편의 더러운 양말들이 춤을 추며 뱅글뱅글 돌았다. 오늘따라 유독 양말조차 은영을 약 올리는 것 같았다.


세탁기를 돌리며 청소를 하고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기 전에 은영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럴 때면 핸드폰으로 지역의 맘카페도 들어가 보고 포털의 뉴스도 보고, 친구들의 인스타도 둘러보았다. 맘카페에 은영의 눈길을 사로잡는 제목이 있었다.


“최면치료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최면? 은영은 텔레비전에서 연예인들이 자신의 전생을 술술 얘기하기도 하고 영화에서 최면에 걸려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무언가에 홀린 듯하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최면에 걸리면 사람을 죽이고도 기억을 못 하고, 살아있는 곤충을 맛있는 케이크처럼 먹을 수도 있다고 들었다. 믿기 힘든 얘기지만 호기심이 가기도 했다. 은영은 제목을 클릭하고 상세내용을 훑어보았다. 맘카페의 회원의 지인인 심리학과의 대학원생이 최면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연구대상자를 모으고 있으며 최면치료에 3회 참여한 사람에게는 10만 원의 사례금도 준다는 것이었다. 은영은 최면도 최면이지만 잠깐 가서 1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것에 혹했다. 글쓴이에게 채팅을 걸어 대학원생의 전화번호를 물어 빨리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머뭇거리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지원을 하는 건 아닌가 마음이 급했다.


일은 꽤 빨리 성사되었다. 다행히 학교가 은영의 집과 멀지 않아 은영은 다음날 바로 대학원생이 일하는 연구실로 찾아갔다. 연구실은 은영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볼품없었다. 연구실에는 컴퓨터가 높인 책상이 서너 개 있고 낡은 2인용 소파가 있고 한쪽 벽면에는 책이 가득한 책장이 놓여있고, 연구실 중앙으로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회의테이블이 있었다. 가구는 오래되었고, 연구실에서는 눅진한 책 냄새가 나쁘지 않게 났다.


- 연구에 대한 설명은 전화 통해서 들으셨을 테고, 더 궁금하신 것이 있나요?

- 어떤 최면을 거는 건가요? 누구 죽이고 그런 건 아니겠죠?

- 하하. 물론 아니에요. 그런 건 영화에서나 있는 거고요. 지금 저희가 연구하는 최면은 불쾌한 기억을 유쾌한 기억으로 바꿔주는 최면치료기법이에요.

- 아. 그래요? 위험한 건 아닌 거죠?

- 그럼요. 여기 연구에 대한 설명과 동의서가 있으니 읽어 보시고요. 여기 서명하시면 돼요.

- 3회 끝나면 10만 원 주는 것도 맞고요?

- 네 맞아요.

은영은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혀있는 안내서와 여러 장의 동의서를 대충 훑어보고 서명을 했다. 지역의 대학에서 자신에게 큰 해를 끼칠 거라고 의심이 크게 들지는 않았다. 은영이 서명을 끝냈을 때 대학원생은 은영을 2인용 소파에 편하게 앉으라고 하고는 연구실의 불을 껐다. 명상 음악이 틀어지고, 산속 절에서 스님이 두드리는 것 같은 둔탁하지만 청명한 목탁 소리가 여러 차례 울려 퍼졌다. 이미 녹음된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은영에게 말을 걸었다.


- 의자에 몸을 편하게 기대고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제가 10에서 1까지 숫자를 세는 동안 나의 몸은 점점 편안해지고 이완됩니다. 10, 9, 8, 7, 6. 내 몸은 점 점 더 편안해집니다. 5, 4, 3 나의 몸은 지금 매우 편안합니다. 1이 되었을 때 나는 지금보다 더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2, 1. 지금 나는 매우 편안하고 이완된 상태입니다. 지금의 편안한 몸의 감각을 느껴봅니다. 지금 나는 냄새와 지금 엉덩이가 소파에 닿아있는 촉감, 지금 들리는 소리를 다시 느껴봅니다. 탁... 탁... 탁...


은영은 오래된 책 냄새와 목탁 소리를 마음속에 가득 담았다. 안내자의 말처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 자 이제 나를 가장 불쾌하게 만들었던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봅니다. 그때의 소리가 들리고 그때의 냄새가 납니다.


은영은 어제 남편이 던져놓은 거꾸로 뒤집힌 양말을 상상했다. 하얀 양말의 바닥은 새까맣고 굳이 코를 가져다 대지 않아도 구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때의 불쾌한 기분이 은영의 마음에 가득 찼다.


- 이제 ‘스위치’라고 하면 지금의 불쾌했던 장면은 처음의 편안하고 이완된 상태로 바뀌게 됩니다. 스위치. 탁... 탁... 탁.... 이제 나는 다시 편안해집니다. 좀 전의 불쾌한 장면은 ‘스위치’라는 말과 함께 완전히 편안하게 바뀝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1에서 10을 세면 당신은 최면에서 빠져나옵니다. 1, 2, 3, 4, 5. 최면이 풀리면 당신의 몸과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6, 7, 8. 10까지 세었을 때 당신은 최면에서 풀리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이완됨을 느낍니다. 9, 10. 이제 눈을 뜹니다.


은영이 눈을 떴을 때는 낮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연구실에 들어와서 최면이 끝날 때까지 시간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은영은 가는 길에 기분 좋게 커피를 한잔 사서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대학 캠퍼스를 거니니 기분전환도 되고 이렇게 두 번만 더 오면 용돈도 생기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도 다음 날도 주말에도 남편은 10년 간 그랬듯 양말을 뒤집어서 동그랗게 말아 빨래통 위와 옆으로 던져 놓았다.


스위치!


은영은 양말을 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양말에서는 여전히 꼬린 내가 났고,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남편을 보니 여전히 울화통이 치밀었다. 은영은 목탁 소리가 없어서 그런가 하여 유튜브에서 목탁 소리를 찾아 틀고 다시 양말을 쳐다봤다.


- 야! 너 양말보고 제사 지내냐?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이 낄낄거리며 아는 체를 했다. 은영은 그런 남편에게 다가가 남편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쳤다.


- 탁! 탁! 탁!

- 이게 미쳤나? 야 너 진짜 돌았어! 

- 아! 미안 미안! 벌레가 붙었네.

- 너 뻥이지. 진짜 이게. 어휴.


갑작스럽게 봉변을 당한 남편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자신의 손이 남편의 머리통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은영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충만한 이완과 평온이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남편의 더러운 양말도 아기 손수건처럼 깨끗하게 느껴졌다. 은영은 두 번 남은 최면치료에 참여하고 돈을 받으면 복싱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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