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화하고 있다
지난주에 브런치 작가 딴짓 님의 [아들 둘 엄마의 대한민국 탈출기]를 정주행 했다. 작가의 소개 말을 빌어 쓰자면 "아들과의 갈등으로 심연을 헤매던 어느 날,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을 찾아서 떠나는 이야기"로 그곳은 바로 아이슬란드다. 아들 엄마인 나 역시 종종 갈등에 마주하고 바닥을 치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싶은 1인이기에 혹해서 보았다. 단순한 여행기였으면 좀 아쉬웠을 텐데, 여행에 대한 정보가 주가 아닌 여행 중에 얻은 연대의 경험이 핵심인 것 같아 좋았다. 여행의 시작부터 과정, 여행 후의 모든 경험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의 연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도서관 사서와의 연대, 도서관과 출판사는 물론 작가가 포함된 동화모임과의 연대,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다양한 공존이 참 따뜻했다.
나는 연대와는 참...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옛날부터 함께 하는 일보다는 혼자 하는 일이 좋았다. 어릴 때 엄마가 딸들이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우리는 자매는 대체로 집안에서 놀았다. 마당이 있는 2.5층 집이었는데, 셋이서 마당에서 고무줄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얼음땡도 할 수 있었다. 나름은 언니들과의 연대이기도 하나 그 연대가 담벼락을 넘지 않았다. 학생 때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혼자 다닐 때가 많았고 고등학교 때는 오직 대입만이 목표였다. 누군가와의 연대보다는 연대에 가고 싶었다. 대학 때는 돈을 벌어야 했고, 뒤늦게 눈뜬 연애에 다른 활동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친구 중에 가장 훌륭한 친구는 남자를 소개해주는 친구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대학도 나오고 대학원도 나왔는데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다. 20대 때는 배낭여행도 혼자 갔다 왔고, 극장도 연회원권을 사서 혼자 다녔고, 콘서트도 혼자 다녔다. 알바도 여럿이 하는 일보다는 혼자 하는 자리를 선호했다. 혼자 못할 일이 없었고, 누군가 함께 하면 불편했다.
심리상담은 취직을 해도 혼자 일을 하지 누군가와 협력할 일이 거의 없다. 협회나 학회에도 참여하고 지역 사회나 종교계로도 발을 뻗어 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아니다. 1년에 한 번은 의무 참석 해야 하는 학회도 닌자처럼 조용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다녀왔다. 심지어 지금은 줌으로 학회에 참석할 수 있어 이제는 직접 갈 필요도 없다. 난 완벽한 아웃사이더였다.
언제부터 변했을까? 아마 유학을 위한 토플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혼자서는 공부하기가 힘들었다. 재미없고 외로워서 주리가 틀렸다. 고등학교 때는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혼자가 아니었다. 한 반에 엉덩이에 땀나게 앉아있고, 야자실에 함께 있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졸업해서 정말 혼자서 공부를 하려니 진도가 안 나갔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에 스터디 원을 모았다. 5명을 모아서 한 달 뒤면 3명이 되고, 또 한 달이 되면 2명이 되었지만 그래도 목적을 이루기에 충분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결속되어 있는 집단. 대단히 단단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때부터는 필요에 따라 모임을 만들고 참여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출산을 하면서 시기마다 버팀목이 되어주던 육아동지들이 생겼고,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누군가 있었다. 대부분 특정시기를 함께하고 자연 소멸되었지만 여전히 명맥이 유지되는 모임도 있다. 10년이 지나며 목적은 흐려지고 친분이 남은 소설스터디팀이 있고, 아들엄마 모임인 준준준맘이 있다. 지금 활발히 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과 정체기를 겪고 있는 독서모임도 있다. 한동안은 지역의 환경보호와 안전 감시를 목적으로 모니터 요원으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오지랖이라고는 문지방을 넘지 않는 나였는데 괄목할 만한 변화이다.
특히, 동네에서 만든 글쓰기모임은 나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글 쓰기는 단기간에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고, 공모전이 있으나 의무가 아니며,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부어도 반드시 결과가 따라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혼자 하면 금방 좌절해서 때려치우고 그러다 또 시작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 끝을 못 낸 작품들이 내 컴퓨터 파일에 쌓였다. 하지만, 극강의 TJ인 나는 누군가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해서 약속을 하면 높은 확률로 지킨다. 수백 명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글쓰기 모임에서 우리는 매주 글을 쓰는 외로운 작업을 함께 했다. 얼굴 보고 만나고 화상으로 만나고 온라인 카페에서 글로만 만나기도 했다. 같이 써나갈 수 있게 격려하고 쓴 글을 서로 읽어 주고 소신 있는 비평을 남겨줬다. 같은 공모전에 출품해도 경쟁자가 아닌 동지였다. 떨어지면 같이 슬퍼하고 다시 일어날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위로다.
가끔은 원래의 목적이 사라져도 사람이 남는 것 역시 신기하다. 10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첫 번째 글쓰기 모임이 그렇다. 지역 소설 스터디 팀이었는데 세 명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쉽게 만나기 어려워졌고, 지금은 더 이상 소설을 안 쓰는 팀원도 생겨 와해되었다. 원래는 '소설 스터디'였는데 지금은 '소설 동모'가 되었다. 정체성은 변했지만 지금도 서로를 응원한다. 글쓰기 팀원들에게 10년째 공모전 수상하면 밥 산다고 했는데 도통 한 턱 낼 일이 안 생기고 있다.
연대에 대한 고민을 하며, 또 지난주 [미국에서 상담박사 때려치기] 연재 에필로그를 쓰고 난 어떤 사람일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남편과의 관계를 '장님과 앉은뱅이'라고 하면서 나는 의존적인 사람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그에게 물었다.
- 나는 의존적인 사람 같아 아님 독립적인 사람 같아?
- 넌 독립적인 사람이지.
- 그지? 난 혼자서도 잘하지. 그럼 우린 의존적인 관계일까 아님 연대일까?
- 둘 다?
그때는 의존을 불완전한-비독립적인 개체의 결속, 연대를 완전한-독립적인 개체의 결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둘이 다를까? 그보다 완전히 독립적인 인간이 과연 있을까? 없다. 세상에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그렇게 태어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장님과 앉은뱅이'는 한쪽이 오롯이 의존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관계, 즉 연대인 것이다. 못 보는 이가 못 걷는 이의 다리가 되어 주고 못 걷는 이가 못 보는 이의 눈이 되어 주는 것, 서로가 있어 힘을 합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관계이니 말이다.
내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끊임없는 연대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니 전보다 진화한 것이 분명하다.
- 글을 쓰는데 채찍과 당근이 되어주는 "다락방 작가들"
- 지금은 친목 모임이 된 "소설 스터디" 친구들
- 아들엄마로서의 힘든 점을 나눌 수 있는 "준준준맘" 엄마들
- 책에서 삶으로 뚫고 나온 "티키타카 독서모임"
- 그리고 가족들^^
- 모난 돌 같은 나와 함께 연대를 이뤄준 과거와 현재의 모든 동지들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