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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Sep 26. 2024

에필로그

왜 그렇게 심각했지?


지난 과거를 돌이키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진지하고 왜 그렇게 무거웠냐고! 내가 원해서 내 발로 외국에 나갈 때마다 난 진저리 치게 외로워했다. 영국에 워킹홀리데이를 갈 때도 그랬고 미국에 유학을 갈 때도 그랬다. 외로움에 대한 정당성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 강도가 적당한가 하면 언제나 과하다.  


사실 나는 왜 인지 안다. 난 반푼이가 맞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죽는 건 아니고 일상생활에 큰 장애가 되는 건 아니고 내 삶의 기능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남친이랑 싸우거나 헤어졌다고 일을 늦거나 빠지거나 밥을 안 먹거나 잠을 못 자는 일이 없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가족도 모른다. 남편이 대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도 난 현재의 자금사정이나 앞으로의 변화를 경우의 수 별로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호자 침대에 누워 계획을 세웠다. 물론 누구보다 남편이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아닌 경우에도 난 아들과 또는 아픈 남편과 함께 살아야 하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살 수는 있는데, 행복하지 않다. 내가 반푼이인 이유는 그 행복을 나 혼자 못 채우기 때문이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을 보면 장애인인 조제가 츠네오의 본가에 가려다 방향을 틀어서 바닷가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본가에 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츠네오의 마음을 알고 그런 것이다. 바닷가 물고기 모텔에서 야한 사랑을 나누고 눈을 감고 있는 츠네오 옆에서 조제가 말한다.  


출처 namu.wiki

조제: 눈감아봐. 뭐가 보여? 

츠네오: 그냥 깜깜하기만 한데. 

조제: 거기가 옛날에 내가 살던 곳이야. 

츠네오: 어딘데? 

조제: 깊고 싶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츠네오: 왜?

조제: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야. 

츠네오: 외로웠겠네 

조제: 별로 외롭지도 않았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제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중에서 )


난 길 잃은 조개껍질이었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 풍요로운 기회의 땅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오는 정적만이 가득한 깊은 바닷속'이었다. 나는 조제처럼 강하지 못해서 그곳이 나빴다. 으이그... 반푼이. 그리고 지금은 온전하냐 물으면 역시 반푼이다. 난 크고 싶지 않고 온전하고 싶지 않다. 엄청 성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가 않다. 앉은뱅이와 장님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불완전하게 살겠다.  난 알았던 거다. 그게 내 한계고 내 본모습이다. 그리고 난 그런 내가 괜찮다. 


힘들게 들어간 미국 박사과정을 왜 때려치웠냐고 물으면 답은 명확하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제까지 미국에서 상담박사 때려치기 연재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좀 더 새롭고 유익하고 재밌는 이야기로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모든 분들의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From Lali 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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