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목을 졸라서 새벽을 막자!
주방 식탁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는 남편 뒤를 지나는데 남편이 열심히 스크롤을 올리고 있었다. 낯익은 화면이다. 하얀 배경에 회색빛 글자, 브런치 스토리 어플이다.
남편이 보는 브런치는 내 것 밖에 없다. 내가 글을 올릴 때마다 읽으라고 닦달을 하기 때문에 매번 하트를 누르지 않고 퇴근을 할 수가 없다. 일종의 숙제 같은 것인데 다행히 남편은 모범생이다.([사랑은 언제나 신나] 5화 숙제하는 남편 칭찬하는 아내 참고) 나의 요구대로 글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하트를 누르고 가끔은 댓글을 다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번 연재를 끝내고 인사이트 리포트를 받았는데 전체 북의 완독률이 0%였다.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세상 사람 모두가 끝까지 안 읽어도 분명 남편이 다 읽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완독자 0명에 완독률이 0% 인지 이해가 안 갔다. 그렇다고 브런치에 '무슨 아이디가 100% 완독 했다는데 왜 완독자가 0명인가요?'라고 문의글을 남기는 것도 너무 개진상 같았다.(문의 안 했음!)
그런데 바로 오늘! 완독률 0%의 숨은 변수, 남편의 꼼수를 찾은 것이다!
남편은 내가 쓴 글을 완전히 읽은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빠르게 넘겼다. 웬수! 내가 올해 야심 차게 마무리한 장편소설 [숨통]을 검지손가락으로 쓱쓱 올리고 있는 남편을 잡았다!
- 야! 솔직히 말해! 다 안 읽었지!
- 아냐 아냐. 난 다 읽었어.
- 세상 사람 다 안 봐도 넌 끝까지 봐야 하는 거 아니냐?
- 아냐, 아냐. 난 진짜 억울해! 하트도 매번 눌렀다고. 진짜야 찡빠오!
남편은 침대에 붙어서 참새 같이 까만 눈을 깜박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은 너비도 높이도 매우 짧아서 눈을 뜨면 빈 곳이 거의 없이 까맣다. 게다가 동공이 본투비 대형이다. 남들보다 훨씬 까만 눈에 짧은 눈썹은 축 쳐져서 우스꽝스럽다. 그런데 또 너무 선하다. 그 눈으로 날 쳐다보면 다 용서해 주고 다 믿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인가?' 혹 했다.
- 아까 보니까 스크롤 훅훅 넘기던데?
- 아니야. 이번 소설은 전에 본거라서 그런거라고. 카카오가 나를 감시하는 거였어?
- 이 봐 이 봐! 이래서 완독률이 0%였구만! 역시 다 이유가 있었네. 프로그래머들이 발가락으로 만든 게 아니네!
사실 [숨통]은 완결했을 때 남편에게 읽으라고 줬기 때문에, 그는 이미 읽은 거라 넘겨 본 거라고 변명! 했다. 하지만 남편이 다 읽었든 아니든 생각보다 아무도 내 글을 끝까지 안 읽는다는 것이 씁쓸했다. 여러 가지 통계가 보여주는 수치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하트의 수와 조회수가 달랐고, 조회수는 완독률과 달랐다. 그러니, 정말 중요한 수치는 완독률이 맞다. 각 회당 완독률이 0%는 아니었지만, 전체 완독률이 평균 완독률 보다 낮았다. 0%이니 당연하다. 유사한 다른 브런치북의 평균 완독률이 1.4%라고 나와있었다. 100명 중에 1~2명이 그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이다. 정말 낮아서 깜짝 놀랐지만, 0%인 주제에 1.4%를 비웃을 수가 없다. 등수를 매기면 누가 와도 내가 끝에서 1등이다! 살면서 이런 성적표를 받아본 적이 없다.
성적을 올리려면 오답노트를 만들어야 하니 원인 분석을 비전문적으로 해 보았다. 글빨이 떨어져서가 가장 강력한 이유겠지만 그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으니 전략적인 면에서 찾아보았다.
1. 다음 회가 궁금하지 않다.
에세이 형식의 글 같은 경우 오늘 읽고 다음 주에 안 읽는다고 내용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니 단발성 글의 전체 완독률이 높기 어렵다. 나오면 상위권을 차지하는 글들은 에세이라도 기승전결이 있는 경우가 많다. ex) 외도의 발견과 이혼, 병의 발병과 완치 또는 인정, 연애의 시작과 이별, 여행의 시작과 끝
2. 사람들은 기쁨보다 슬픔에 더 공감한다.
위의 리포트는 "사랑은 언제나 신나"에 관한 것인데, 나라도 남이 신난 얘기보다는 슬프거나 괴롭고 분노하는 자극적 소재에 더 끌릴 것 같다. 사랑 주제의 상위 글을 보면 다들 그렇게 아프고 슬프고 보고 싶고 밉다.
3. 주제의 독창성과 기획의 창의성이 떨어진다.
사랑타령은 클래식이지만 유니크하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도 아닌데 누가 그렇게 궁금해하겠는가. 눈이 번뜩이게 새로운 주제이거나 보편적인 주제라도 보다 창의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그 밖에 글이 너무 길고 임팩트가 떨어진다든지, 글에 대한 홍보 노력이 전무했다든지, 이미지 활용이 부족했다든지 등의 문제가 더 있겠다. 앞으로는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임은 확실하다. 그런데...
내 목표가 앞에서 1등이었나?
물론 1등은 너무 좋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조회수가 높아지고 완독률이 높아지면 진짜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 자체가 내 목표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목표가 높으면 투자도 많아야 한다. 본업과 생업을 던져두고 12시간 이상의 무급 글공장에 취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ㅠㅠ 허리가 너무 아프고 돈도 없고 삼시 세끼 먹여야 할 아기새와 아빠새가 있다.
처음 에세이와 소설 연재를 할 때 목표는 1. 글 쓰는 루틴 만들기 2. 쓰면서 발전하기였다. 단자리로 시작한 구독자였기 때문에 어차피 몇 명 읽지도 않는데 맘대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몇 분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내가 언제는 다른 이와 비교해서 잘 보이려고 살았던가! 슬프지만 한편 자유로웠다. 1년 8개월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다. 발행된 글이 180편이지만 발행되지 않은 글도 꽤 많다. 그 기간 동안 에세이는 브런치북을 4권(안녕 나의 선샤인 1, 안녕 나의 선샤인 2, 사랑은 언제나 신나, 봄 사랑 아들 말고)을 발행했고 지금도 쓰고 있다. 소설로는 플래시 소설 수십 편과 단편소설 5편 수정 2편, 중편소설 2편과 장편소설 1편을 마무리했다. 쓰고 보니 뿌듯하다!
그래도 0%는 수치다!
- 내가 브런치 북 완결해서 또 완독률 0% 면 무조건 별금 5만 원! 오빠가 내 글을 다 읽으면 내가 공모전 수상시 상금의 15% 줄게.
- 15%? 저 찡빠오가 20면 20이고 30이면 30이지 15%가 뭐냐. 30% 그 이하는 안 되겠어.
- 관둬!
- 20%
- 세후 20% 아니면 세전 15%
내가 진짜 상금을 받기로 확정된 것도 아닌데 남편도 나도 매우 신중하다. 이과재질 남편이 쉬는 목금이면 글 쓰는 아내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기 위해 함께 카페에 가준다. 돈도 못 버는 게 꼭 비싼데 좋아한다고 쥐어박으면서도 같이 간다. 남편은 몇 시간씩 혼자 책을 보고, 허리가 아프다고 서서 핸드폰을 보면서도 가자면 언제나 함께 가준다. 아직 수익도 없고 그렇다고 수험생도 아닌 아내가 시끄럽다고 하면 텔레비전과 유튜브를 묵음으로 보면서도 한 번도 불만을 터트리지 않았다. 그러니 사실 그에게 지분은 확실하다. 그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열심히 굴리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 세후 20%!
- 대신 무조건 완독이다. 약속!
졸려서 눈을 반쯤 감은 남편의 흐느적거리는 새끼손가락을 손에 걸고 엄지도장과 검지 싸인, 손바닥 복사를 하고서야 남편을 꿈나라로 보내줬다.
"우리의 계약은 완독!"
오전 산책에서 우리의 계약을 한 번 더 공고히 했다. 가족공동체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공동체 아니겠는가. 남편은 벌금 5만 원 보다 장담 못할 세후 20%의 수익에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렇게까지 얘기해 놨으니 적어도 이번 소설의 완독률은 1% 기대해 본다. ㅎㅎ 닭의 목을 비틀어서라도 새벽을 막아보즈아!!!
화요일의 감사
- 이제까지 제가 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소중한 시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더 재밌고 진실성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사랑은 언제나 신나' '브런치북을 한 번이라도 읽어주신 56분께 감사드립니다.
- 아직 한 번도 수익금 정산이 없었음에도 관두거나 불평하지 않고 아내의 글쓰기 작업을 지지해 준 남편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