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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Sep 10. 2024

나의 아들은 아나키스트

아들은 나를 똑 닮았다. 그리고 진화했다.  어른들이 씨는 못 속인다고 했는데. 진리다.


녀석은 당하고는 못 산다.  

싸울 때는 인정사정없는 야수이고,

기분이 좋을 때는 야생 원숭이이고,

대체로 체제를 거부하는 아나키스트이다.  


아들은 '싫은데' 선수이다. 서너 살에 어린이 집에서도 낮잠이불을 정리하면 마이쭈를 준다는 선생님 말씀에 마이쭈를  먹고 이불을  개겠다고 해서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집에서라고 다르겠는가. 매일 문제집을 일정  풀면 핸드폰을 사주겠다고 하니 공부  하고 핸드폰  쓴다고 하여 아들은 4학년 까지도 핸드폰이 없었다. 청소를 하면 용돈을 준다고 했을 때도, 용돈을  받고 청소를  했다. 엄마의 통제에 들어가느니 당근포기하는 것이 녀석이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도 자본주의의 유혹에 타협을 했다. 게임의 맛을 안 것이다!


공부를 시작하고 간신히 핸드폰을 득템 했으나, 매주 밀리는 학습량에 핸드폰은 잠기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약속을 지키면  터인데, 아들은 호시탐탐  통제를 벗어날 궁리를 공부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녀석의 전자기기는 나와 가족으로 연동되어 있어서 아들의 핸드폰과 아이패드 사용 어플과 사용 시간, 검색기록과 시청기록이 모두 공유된다. 녀석은  핸드폰을 열고 들어가 자기 핸드폰의 시간제한을 풀기도 하고, 스크린타임 비번을 해킹해서 앱제한을 풀기도 한다.  나는 녀석이  뒤에만 있어 등골이 서늘하다. 차에 있을  특히 많이 털린다!  좌석에서 무심코 핸드폰을   뒤에서 아들의 눈이 번쩍인다! 아들 때문에  번이나 비밀번호를 바꾸다 보니 내가  핸드폰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공장초기화를  적도 있었다.

아들이 초기화시킨 아이패드

지난 주말에 녀석이 다시 한번 디지털 탈옥을 시도했다!

몇 달 전 녀석이 신박하게 자기 핸드폰을 공장초기화 해서 완전히 나의 관리를 벗어난 것이다. 그래봐야 3일도 못 가서 걸리고, 걸리면 괴물딱지 엄마가 가만있지 않을 것을 알지만 마지막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한 달간 모든 전자기기를 빼앗겼다. 그런데 몇 달 되지 않아 녀석이 또 탈옥을 한 것이다. 안 들키겠다는 굳은 의지로 아이패드를 침대 매트 아래 숨겨 놨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잃어버린 물건을 잘 찾기로 유명했다. 10분 만에 아이패드를 찾아보니 녀석의 아이패트가 아주 깔끔해져 있었다. 도대체 나의 말이 먹히지 않는 녀석은 그 무섭다는 오늘만 사는 아저씨인가?


출근 전에 아이패드를 내 계정으로 등록하여 새로운 비번으로 잠근 후 '핸드폰과 아이패드 3개월 압수. 할 일을 잘하면 1개월 만에 복귀 가능.'이라고 메모를 붙여 놓았다. 재빨리 출근하려다 일찍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과 마주치고 말았다. 아이패드가 발각된 것을 본 아들이 '에잇, 들켰네'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어차피 초기화 한 김에 아이패드랑 엄마 맥북이랑 바꾸면 안 돼?"


이 무슨 개똥 같은 소리인가. 녀석은 참 신박하다. 정말 신기한 것이, 나는 얼굴도 표정도, 목소리도 성격도 무서운 사람이 맞다. 살면서 한 번도 '만만하다 착하다 순하다'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아들도 엄마는 동물 중에 '샤크'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유일하게 아들만, 샤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빡이쳤든 아들은 소파에 누워 지긋지긋한 마법천자문 만화책을 보며 다리를 까닥거린다. 강적이다.   


그래도 최근에는 어렵게 합의 한 등교시간을 잘 지켜주고 있다. 작년부터 분기별로 반복된 합의와 투쟁 끝에 등교는 "아침 8시 40분"으로 못 박았다. 녀석의 초등학교는 8시 50분까지 등교이고 9시에 수업 시작인데 아들(놈)이 굳이 굳이 수업이 시작하는 9시까지 가겠다며 8시 55분에 집을 나섰다. 지가 대학생도 아니고 왜 수업 직전에 강의실에 들어가려는 것인지 황당했다. 심지어 학교가 아무리 가까워도 신호등에 걸리면 7분 정도 걸리는데, 최소 시간을 계산해 집에서 놀다 나가는 아들 때문에 화가 났다. 하지만 자신의 통장에 있는 돈들이 벌금으로 빠지는 잔혹한 현실을 경험한 야생의 사자는 일주일간 으르렁 거리다 결국 굴복했다. 아나키스트가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자본주의의 노예는 다시금 아나키스트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아들에 한해서 나는 이성의 끈이 야무지게 잡히지 않는다. 나는 이 친구를 잘 기르고 있다는 자신이 없고 밤에는 미친년이 되고 아침에는 수도자처럼 회개와 반성을 반복한다. 오늘도 그랬다. 간밤에 "내 방에서 나가!"라고 소리 지르고 미안한 마음에 아침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노래를 부르며 안아주었다. 내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나 아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신경도 안 쓴다. 그래도 "원숭이는 누구 사랑?"이라고 하면 "엄마아빠 사랑"이라고 말하며 씨익 웃는다. 그래도 나를 안 닮은 부분은 뒤끝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녀석은 쿨하다.  

   


화요일의 감사

- 아들이 건강하다는 것만으로 매우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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