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물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다만 결혼을 해서 사람 아이를 낳아 잘 기르고 싶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그 정도로 라고 '책임질 수 없는 생명은 처음부터 집에 들이지 않는다.'가 철칙이었다. 나는 내 그릇을 꽤 작게 보는 편이라 일을 벌이지 않는데, 어느 순간 스며든 녀석들이 몇 있다.
그중에 가장 성가신 녀석이 왕개 짜구이고 굵직한 이벤트와 함께 남은 대형 화분과 호기심 천국 아들이 집에 들인 식물, 선물 받은 화분들이 있다. 내가 키우고 싶어 적극적으로 데려온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집에 있는 것을 허락한 이상 잘 키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 함께 사는 생명들이 자꾸 늘어났다. 짜구는 존재감이 너무 커서 후에 주인공으로 따로 쓸 때가 있을 테니 생략!
오늘의 주인공은 우리 집 식물들이다.
지난주에 보니 사해파에서 아기 주먹을 모아 놓은 것 같은 연두색 잎이 돋아나있었다. 사해파는 2년 전에 선물 받은 테라리움에 있던 다육이 중의 하나였다. 유리 글라스로 된 테라리움은 물이 빠지지 않아 수분량 조절이 어려운데, 물의 양이 잘못되었는지 통통하던 가시잎들이 짜글짜글해지며 시들어갔었다. 인터넷 카페에 질문글을 올려 문제의 원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후, 녀석의 건강한 삶을 위해 유리볼에서 파내 재활용 요거트 통에 물구멍을 뚫어 안착시켰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단단한 잎과 제법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생존해 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사해파에 노란 꽃이 피었다! 작년에 다 죽어가던 녀석이 지금은 이렇게 당당하게 꽃을 피운 것이다.
장하다, 사해파!
두 번째는 바질이다. 녀석은 3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과 생산물을 안겨주었다. 씨앗부터 시작해 잎을 피우고 3년을 함께 산 식물은 바질이 유일하다. 아들은 호기심이 많고 수렵과 채집활동을 좋아하는데, 아주 어릴 때는 무엇이든 집에 가지고 오려고 해 나와 갈등이 있었다. 다행히 커가면서 곤충이나 동물 같은 생명을 키우는 데는 큰 책임이 필요하며, 그들은 원래 있던 곳에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을 끝까지 말리지 못한 것이 식물 기르기다. 야생에서 가져오는 것은 금지이지만, 정말 원해서 사는 것이나 선물 받은 것은 기르게 해 준다. 바질은 지리산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하동군지리산생태과학관에서 아들이 씨앗을 사고 싶다고 졸라서 구경하다가 얻었다. 직원 분이 지금은 파종시기가 아니라 안 자랄 수도 있다며 공짜로 주신 것이다. 하지만 겨울에 심은 그 씨앗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파스타나 피자, 토마토카프레제를 해 먹을 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녀석은 물만 줘도 쑥쑥 자라고 끊임없이 잎을 피운다. 여행을 갈 때는 대야에 물을 받아 담가두고 말라죽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키가 너무 자라지 않게 윗잎을 먼저 따줘야 하는데 모르고 계속 밑에 입을 따다가 키가 47cm까지 자라고 말았다.
그 밖에도 잘 보이지 않지만 아들이 외할머니에게 받아온 천냥금(가장 왼쪽 노랑 화분), 코엑스 다이소에서 사 온 식물 (왼쪽에서 두 번째 빨간 화분. 이름 모름), 바질 그리고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인 주 알고 사온 이름 모를 식물이다. 사진에 없지만 남편이 동물병원 개업할 때 받았다가 사업을 종료하면서 결국 우리 집에 살게 된 대형 화분과 친구가 준 예쁘고 파릇파릇한 알로에도 있다. 그리고 대형화분을 버리지 못하고 재활용해 심은 큰 뱅갈고무나무가 있다. 다들 몇 년씩 우리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식물 식구들이다.
식물도 생명이라 하루하루 다르고 챙겨주지 않으면 금세 시들고 만다. 화분에 담지 않고 자연에 있었다면 나의 보살핌 없어도 살았겠지만, 아파트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 살리는 것이 내 책임이다. 어떤 식물은 꽃을 피우고 어떤 식물은 줄기가 굵어지고 어떤 식물은 먹을거리를 준다. 그 쓸모는 인간의 기준일 뿐이고, 보고 있으면 하나하나의 생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번식하며 생명을 이어간다. 존재의 이유가 없어도 그것들은 아름답고 나에게 울림을 준다. 겨울에 심은 바질 씨앗이 기어이 새싹을 틔워냈듯, 죽을 줄 알았던 사해파가 노란 꽃을 피웠듯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기르던 식물과 동물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변화시킨다. 나는 풀과 나무, 개와 고양이, 두꺼비와 물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랩걸 by 호프 자런)
나도 나의 어린 아들도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으면 싹을 틔우고 울창한 숲이 되겠지.
화요일의 감사
- 시들어 죽을 줄 알았던 사해파가 예쁜 꽃을 피워 장하고 고맙습니다.
- 3년 전 추운 겨울에 심었던 바질 씨앗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자신의 잎을 내 주어 감사합니다.
- 어린 아들이 이제는 호기심에 곤충과 동물을 기르겠다고 우기지 않고 생명을 존중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물 주고 죽지 않게 돌봐온 나 자신을 칭찬합니다.
- 생명을 나눠주신 친구와 가족, 처음 만난 익명의 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