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년 반을 함께 하던 내담자와의 상담이 잠정 종결되었다. 잠정이라고 한 것은 개인적인 상황의 변화로 잠시 멈추어 정리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튼 종결이라고 생각한다. 그 내담자는 작년의 상담목표를 작년에 이루었고, 올해의 목표를 1/4분기에 이미 이루어 2/4분기에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도 했었다. 물론 그가 가지고 있던 오랜 개인적 목표는 1~2년이란 기간 안에 완전히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남은 과제가 되었다. 성장해서 상담실을 나가는 내담자를 보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난 장기 상담보다는 단기 상담에 더 최적화되어 있는 편이지만, 긴 호흡으로 하는 상담이 몇 있다. 내담자와 3~4개월을 만나 단거리를 잘 달리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몇 년간을 상담하며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함께 하는 것은 또 나름의 득이 있다. 물론 내담자의 입장에서는 손실도 있다. 1회기 10만 원이라는 큰 비용과 주 1회의 상담을 받으러 오는 시간과 노력이 그것이다. 왕복 이동을 고려하면 보통 2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시간과 비용을 장기간 지출 한다는 것은 분명히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오래 상담을 한 내담자에게는 그 노력과 투자만큼의 득이 있기를 기대하고 나는 그 부담을 마땅히 받는다.
하지만 장기간 상담을 한다고 그 변화가 반드시 눈에 보이고 모두가 만족한 성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변화에 영향을 줄 뿐 변화의 주인공은 내담자 본인이다. 하지만 상담을 길게 하면 할수록 변화의 책임이 좀 더 느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약 3년간 거의 매주 만나온 나의 아픈 손가락이 있다. 나는 그녀를 고등학교 때부터 만났다. 대학생이 되면 덜 힘들 거라는 기대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면 상담실에 올 일도 없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여전히 힘들고 나는 그녀를 지금도 매주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성인이 되어도 나는 왜 나아지지 못하는가'에 그녀는 좌절했다. 나 역시, 긴 시간이었는데 충분히 효과적인 상담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가 우리에게 더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감사히도 그녀는 도망가지 않고 스스로가 진실로 나아지지 못한 인간이라는 자책과 내가 그녀를 실패로 본다는 의심을 확정하지 않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녀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고 말했다
"선생님 제가 빨리 그만 오길 바라죠? 그래서 행복해지길 바라시는 건가요?"
나는 그녀의 슬픈 고백이 기뻤다. 아마 작년의 또는 재작년의 그녀라면 상담을 일방적으로 중지했을 것이고 나에게 지금과 같은 해명의 기회는 주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판단하고 상처받아서 인간관계를 끊고 도망가는 이제까지 패턴이 드디어 깨진 것이다. 눈물을 똑똑 흘리고 내 앞에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안 오고 싶었을 텐데, 이렇게 와서 솔직히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그냥 안 왔다면 저도 상처받았을 거예요."
어느 시점에서 상담자가 자기 개방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었다. 내가 감사한 이유를 설명했고, 내가 고민한 이유도 오픈했다. 당신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내가 혹 당신에게 맞지 않는 상담을 제공했을 것에 대한 고민을 말했다. 내가 두려운 것은 내가 충분하지 못할까 봐이지 그녀가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관계에서의 변화는 단기 상담에서는 쉽게 이루지 못하는 목표다. 그리고 그 변화를 바라보며 나는 내가 충분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스스로 정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기뻤다.
오늘 종결 한 내담자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당부한 것이 있다. 자신에게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자책하는 것이 그녀의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였다. 마지막까지 남겨둔 과제가 '스스로에게 좀 더 관대하기'였다.
당신은 시간이 걸려도 결국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그 고민의 과정에서 겪은 실수보다 결국 이룬 그 선택에 자부심을 느껴도 됩니다.
유독 눈물이 많은 그의 눈에 눈물이 또 맺혔다.
그런데 이 말은 나의 엄마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엄마가 나의 결혼식에서 양가 가족 친지들과 손님들에게 한 얘기였다. (나는 결혼식에서 얼굴도 모르는 명망 있는 지역 유지 분의 주례를 빼고 양가 부모님과 절친의 덕담을 받았다.)
내 딸은 똑똑한 아이입니다. 가만히 두면 알아서 잘할 거예요.
엄마는 사돈어른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고 단상을 내려왔다. 엄마는 내가 결국은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가 알고 표현해 준다는 것은 큰 힘이고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내가 아끼는 나의 내담자들에게 말해줄 수 있어 감사하다.
화요일의 감사
- 오랜 내담자와의 건강한 종결에 감사합니다.
- 시간이 걸려도 자신의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나의 내담자에게 감사합니다.
- 그들이 스스로 옳은 사람임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를 옳게 봐주는 가족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 내가 타인에게 그들에 대한 저의 믿음을 전할 기회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 엄마가 일하는 동안 학교와 방과 후, 학원에서 잘 있어준 아들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