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
사춘기에도 친구에게 차여 본 적이 없던 내가 사십이 넘어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차였다. 놀라운 것은 난 분명 지금 더 착한데 말이다! 그리고 꽤 깜짝 놀랐다. 이제 죽어서 헤어지는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죽어도 만남은 끊긴다는 것에 말이다. 내가 아직 젊어서 다양한 이별이 있는 것일까?
인연이란 생각보다 참 사소한 이유로 끊긴다. 집안의 원수, 고액의 빚이나 엄청난 배신과 음모가 아니어도 인연은 탄력을 잃은 머리카락처럼 속절없이 끊긴다. 나에게 잠수를 탄 친구는 잠수를 탔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들의 게임 문제에 대한 나의 발언'이 촉발사건이 되어 연락을 끊었다. 1년이 넘게 몇 번의 읽씹을 경험하며 그녀가 나를 손절했다는 것을 최근 완전히 확인했다.
억울했다. 진심 마음 한 편에 '너 자신을 아냐?'라는 비아냥이 넘실댔다. 나 역시 그녀가 완벽해서 옆에 있었던 것이 아닌데 이제까지 내가 주었던 인내와 이해의 노력이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아마도 서로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이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나는 학창 시절과 다르다. 자연스러운 회복의 기회는 장례식에서 만나지 않는 한 거의 생기지 않는다. 상대가 읽씹을 하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다가가지 않는다. 존중이면서 복수다. 이해의 노력 없이 상대를 밀어내는 사람에게 나 역시 내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마음 한편에는 '나도 너 필요 없거든.' 하고 같이 신경을 끊는다.
어쩌다 다른 친구를 만나서 오래된 친구와 손절하는 얘기가 나왔다. 생각보다 흔히 있는 일이었고 한동안 얘기가 끊기지 않았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은 많은 추억을 함께 하면서 서로 맞지 않아도 유사 가족처럼 정에 얽혀 있다. 사실은 이미 각자 성장하여 서로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이미 하던 가락들이 있어 불편을 감수하고 맞추지도 못하는데 그놈의 정 때문에 인연을 억지로 이어가는 경우가 꽤 많다. 하지만 친구관계는 이익공동체도 아니고 혈연공동체도 아니다. 그러니 서로에 대한 불만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이 '연'이라는 것은 아주 무딘 칼로도 뚝 끊긴다. 누가 먼저 그 끈을 완전히 끊었냐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끊길 것이 끊긴 거다.
분명히 그랬을 것 같다. 극강의 TJ인 나와 FP인 친구가 20년 넘게 그럭저럭 지내왔으면 선방한 거다.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시각들이 서로에게 확증편향으로 고착되었을 것이고 아닌 척 숨기기는 했지만 사실은 알았을 것이다. 나도 너도. 부부든 친구든 가족이든 서로를 좋게 보는 마음보다 안 좋게 보는 마음이 커지기 시작하고 고착되면 관계는 끝이 난다. 뭘 해도 곧게 보이지 않는다.
[미오기전]의 미옥이 작가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마다 과거를 불러 화해했다는데, 과거가 화해를 원치 않으니 화해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인연은 가면 또 새로 오고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친구야, 너와 나의 시간은 지났구나. 그간 고마웠다.
화요일의 감사
- 정으로 붙잡고 있던 부질없는 인연을 먼저 끊어준 (전) 친구에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