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지 말자!
나는 남편이 너무 좋다. 키도 작고 못생기고 골골한 그가 좋다. 지난주에 최저가 남성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전보다 훨~~ 씬 못생겨지고 말았다. 다시 파마를 하면 짜구용 바리깡으로 박박 밀어버리겠다고 하니 새우눈을 하고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내가 매일 못생겼다고 놀리면, 그가 '허허' 웃는다. 그는 아침마다 주짓수를 방불케 하는 나의 도발에도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며 방어할 뿐이다. 그러니 말로 하는 놀림이나 비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활짝 웃는다. 몇 년 전에 내가 교통사고를 내서 경찰서에 간 적이 있는데 남편이 휴가를 내고 나와 함께 갔다. 경찰서는 처음이라 남편을 옆에 딱 붙이고 갔다. 5만 원짜리 전방부주의 벌금고지서를 받아 오는데, 경찰관이 나를 보며 "남편이 많이 의지되시나 봐요?"라고 말했다. 그랬다고? 라고 깜짝 놀랐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네.' 라고 말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는 언제나 어디서나 무조건 달려온다. 그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나 역시 그렇다. 우리는 서로에게 당연히 그렇다.
우리 집 가훈은 "유고위고 위고유고"이다. 풀어 설명하면 '남편이 가면 우리(나와 아들)도 가고 우리가 가면 남편도 온다.'는 뜻이다. 남편은 아무리 월급이 높아도 지방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아들의 학업도 그와 떨어질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기러기 부부 따위는 우리 사전에 없다. 남편은 호기심도 없고, 불안도 적은 우물 안이 가장 편한 태평 개구리고 아들과 나는 호기심은 많은데 불안이 높은 예민보스 청개구리다. 지금 사는 이곳이 제일 행복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이동과 변화, 도전을 싫어한다. 그러니 나도 그를 정말 멀고 높은 곳으로는 옮기려 하지 않지만, 그도 새로운 곳에 가고 싶은 나와 신나는 도전을 하고 싶은 아들을 위해 쉬는 날을 할애한다. 우리는 그렇게 적당선에서 서로를 존중한다.
심장질환이 있는 그는 일 년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는다.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매해 가는데 매해 떨린다. 우리 집의 가장이며 나의 애인이며 친구이고 보호자인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보장이 없다. 아들과 나의 공공재이며 나의 안식처인 그는 매해 그 자신의 유효기간을 새로 확인받는다. 그래서 불안이 높은 나는 매해가 마지막인 것처럼 만사를 제쳐두고 그와 논다. (핑계가 좋다!) 일도 많이 안 하고 성장이나 발전이니 하는 것도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며칠 전 남편이 청소년의 표정과 언어를 탑재한 아들에게 말했다.
"할머니들한테 전화 좀 자주 드려. 네가 연락하면 얼마나 좋아하시니. 그런데 나중에도 엄마 아빠한테는 자주 안 해도 돼. 엄마아빠는 괜찮아. 그런데 혹시 아빠가 먼저 죽으면 엄마한테는 자주 연락해라."
"그럼 엄마가 먼저 죽으면 아빠한테는 자주 안 해도 돼?"
젠장. 그 말은 아닌데.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부모 중에 한 명만 남으면 좀 더 연락하는 것으로, 그래도 엄마한테 1.5배 더 하는 것으로 훈훈히 마무리했다. 이맘때가 되면 죽음이 성큼 잊지 않고 존재를 드러낸다. 나는 이유 없이 슬프고, 무섭고, 또 감사하다.
지난 금요일에는 남편이 쉬는 날이라 검사가 끝나고 남산에 갔다. 아산병원에서 남산까지 차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예쁜걸 나만 아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도 다 알아서 주차할 자리가 없어 뱅뱅 돌았다. 그래도 팔각정 꼭대기에서 아이스 라떼 한잔을 나눠 마시고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왔다. 어제는 검사 결과를 들으러 남편 혼자 병원에 갔다. 진료를 받고 바로 출근을 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라 따라갈 수 없었다. 다행히 내년까지 남편은 안전하다고, 바쁜 의사 선생님이 빨리 나가라고 재촉했다고 한다. 휴~
남편이 아플 때도, 아들이 화를 낼 때도, 공모전 광탈 때도 힘들면 생각한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싸고 자빠졌네!
이 정도는 힘든 축에 들지도 않는다. 내가 뭐라고 나만 아무 힘듦 없이 세상 살기를 바라겠는가. 그저 이 정도임을 감사하고 감사하며 납작 엎드린다. 부디 더 큰 고난은 살짝 비껴가기를 빌고 빌면서 말이다.
화요일의 감사
- 악화 없이 선방하고 있는 남편의 심장에 감사
- 여전히 우리 부부가 서로의 우선순위 1등임을 감사
- 아들이 그래도 엄마 혼자되면 전화 더 해줄 것 같아서 미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