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이 여자의 생존법 - 은서

by Lali Whale

은서는 친구들과의 해외여행 계획에 들떠서 강원도의 본가로 왔다. 오랜만에 엄마 밥도 먹고 친구들과 회포도 풀 생각에 며칠 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그간 아껴놓았던 연차를 하루 더 써서 낮에는 엄마와 바닷가 카페에서 브런치도 먹고 시내 백화점으로 쇼핑도 갔다 왔다. 특별히 아껴놓은 보너스로 엄마에게 스카프도 하나 선물해 주었다. 코트는 너무 비쌌고, 친구들 만날 때 하고 가면 포인트도 되고 자랑할 만한 화려하지만 우아한 명품 스카프였다.


일정은 그랬다. 오래간만에 고향으로 가서 거기에 사는 효원과 그녀의 남자친구를 만나서 한 턱 크게 얻어먹고 다음날 다 같이 효원의 남친 차를 얻어 타고 공항으로 갈 계획이었다. 은서를 포함해서 네 명의 동네 친구들 함께 가는 여행이었고 그중 효원은 초중고를 같이 나온 인생친구였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뿔뿔이 대학에 간 후에는 일 년에 잘해야 한두 번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 졸업 후에는 각기 다른 곳에 취업을 하고 휴가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워 거의 만날 수 없었다. 이번에는 효원이 결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가는 싱글여행이라며 다른 친구들도 모두 휴가를 맞추어 함께 하기로 몇 개월 전부터 약속을 해놓고 기다려 왔던 차였다.


은서는 엄마에게 밥만 먹고 술은 절대 마시지 않을 거라고 뻔한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은서에게 든든한 언덕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다. 은서네 집은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엄마가 혼자 은서를 길러야 했다. 살아생전에 술을 좋아하셨다던 아빠는 사실 은서의 기억 속에는 거의 없었다. 다만 제사상에서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던 술 거기선 맘껏 드셔” 라며 소주를 대자로 사서 올려 두시기에 아빠가 애주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와는 대체로 사이가 좋았지만, 엄마는 은서가 술을 먹는 것만큼은 끔찍하게 싫어하셨다. 은서는 기억도 안 나는 아빠를 닮았는지 술이 참 달았다. 또래의 여자 친구들에 비해 술도 엄청 세서 웬만한 남자들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너무나 싫어하기도 했고, 자신이 술을 먹고 오는 날에는 동네 어귀에서부터 자신을 기다리는 엄마 때문에 가능한 집에 왔을 때는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효원의 남자친구에게 술을 잔뜩 먹여 얼마나 센지도 보고 혹시 주사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자며 친구들끼리 계획을 짜둔 상황이었다.


- 너 술 마시는 건 아니지?

- 으이그. 속고만 살았나. 안 마신다고.

- 진짜지?

- 그럼! 엄마 차도 내가 가져가잖아. 내가 술 마실 때 차 가져가는 거 봤어?

- 너 진짜지?

- 그래. 그렇다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나 늦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알았지?

- 알았어. 조심해서 갔다 와.


은서는 엄마의 차를 끌고 친구들과의 약속장소로 갔다. 밥을 먹고, 근처의 술집으로 이동했다. 동네 친구들과의 오랜만의 술자리라서 그런지 술이 술술 들어갔다. 효원의 남자 친구도 술을 잘 마셔서 다른 친구들이 하나 둘 먼저 취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은서도 술이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다. 한 동안 일이 바빠 잘 안 마셔서 이전만큼의 실력은 안 나왔지만 결국 효원의 남자친구도 넉다운이 되고 말았다. 은서와 친구들이 마신 소주병이 테이블에 가득 쌓여 있었다. 은서는 휘청 휘청 술집을 나왔다. 밤하늘에 작게 보이는 비행기 한 대가 불빛을 내며 천천히 지나갔다.


- 어! 저거 내가 타고 가야 하는데. 야! 나도 태우고 가!


은서는 술에 취해 하늘을 보고 소리를 지르다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았지만 은서는 다리에 힘을 주고 간신히 서서 주차장으로 갔다. 은서는 차로 와서 시동을 걸었다. 대리를 불러야 한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친구들도 모두 취해서 차에 타는 은서를 말려줄 사람도 없었다. 핸들을 잡은 은서는 무의식 중에 집으로 차를 몰았다. 시골의 밤길은 어두웠고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쾅!”


동네 어귀에서 은서가 무언가를 세게 들이받았다. 취중에도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고라니라도 받은 것인가 간담이 서늘해졌다. 은서의 몸이 덜덜 떨렸다. 가로등이 없는 길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은서는 술에 취해 전조등도 켜지 않은 채 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앞이 도무지 보이지 않아 상향등을 켜고 차 앞으로 다가갔다. 차 앞으로 검은 덩어리 같은 것이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길바닥에는 낯익은 스카프 하나가 펄럭이고 있었다. 오늘 낮에 은서가 백화점에서 산 바로 그 스카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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