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의 생존법 - 지현
139 / 96 혈압이 갈수록 높아진다. 스스로 저혈압이라고 생각했던 지현은 서른이 넘어서야 자신은 저혈압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에 온몸이 쳐지는 것 같고 일어나면 휘청거리는 것이 저혈압 때문인 줄 알았는데 적어도 저혈압이 원인은 아니었단다. 서른이 넘으니 병원에 오면 혈압도 한 번씩 재어 보고 의사를 만나면 물어보는 질문도 많아졌다.
오늘 병원에 온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두통 때문이었다. 한번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약을 먹기 전까지는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뇌출혈이나 뇌경색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마치 자신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되는 것까지 상상하게 되었다. 그런 걱정을 하다 보면 머리는 점 점 더 아파오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병원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콜록 거리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감기에 걸릴 것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처럼 유행성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때는 병원에 오는 일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지현은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대기실 공기청정기 옆에 서 있었다. 대기실 전광판으로 지현의 순서가 점 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지현 앞으로 유독 심하게 기침을 하던 남자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남자의 침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지현의 눈으로 바이러스와 온갖 세균이 루미놀 용액을 뿌려놓은 살해현장의 핏자국처럼 형광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사람 서넛은 갈기갈기 찢어놓은 잔해 같았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혈압이 치솟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피가 머리끝까지 터져 나갈 것 같아 서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자에 앉기에는 어느 곳 하나 안전하지 않게 느껴졌다. 돌아가자니 두통의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이대로 뇌종양으로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휘몰아쳤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지현이 땀을 줄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자,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가 지현에게 다가왔다.
- 괜찮으세요?
간호사의 입에서 나온 침이 지현의 얼굴 위로 튀어 형광색으로 번쩍였다. 지현의 안경에도, 마스크에도 장갑에도 형광색의 반점들이 늘어간다. 이제는 그 반점들이 안경을 뚫고 마스크와 장갑에 구멍을 내고 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살갗이 타는 듯이 아프고 눈이 파이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기절할 것 같았다. 지현은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간호사를 밀쳐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간호사는 지현의 고통에는 아랑곳 않고 다시 다가와 지현을 잡고 말했다.
- 지현 씨 이제 병실로 돌아가셔야죠. 오늘 점심에는 지현 씨 좋아하는 두부조림 나온다고 하네요. 자꾸 이렇게 병동 이탈하시면 안 돼요.
간호사가 지현을 데리고 정신과 병동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