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단편의 단편소설-5

by 작가 전우형

거리 위를 지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비틀비틀. 어정어정. 뒤뚱뒤뚱. 호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팔자걸음 중인 사람.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붙는 사람. 성큼성큼.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땅바닥만 보고 걷는 사람. 강아지에게 끌려가는 사람. 아이 손을 꼭 붙들고 걷는 사람. 허공에 대고 무어라 말하며 걷는 사람. 그들에게는 각자의 사정과 발걸음, 그리고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어딘가를 향하는 발걸음 아래 붙어 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목적지이기도 하고 돌아갈 곳이기도 하다. 바삐 움직이는 그림자들 사이로 멈춰있는 그림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연유로 그는 한 곳에 못 박힌 것처럼 멈춰 서 있는 걸까? 갈 곳이 없는 걸까? 돌아갈 곳조차 없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걸까. 무엇이 그의 발걸음을 땅바닥에 단단하게 묶어둔 걸까. 멈춤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세상은 움직인다. 세상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멈춰 있는 한 남자. 그에게 기다림이란 어떤 것일까. 막막하고 답답하고 외로운 것일까.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움직임을 보였다. 해와 달이 움직이고 가로등 불빛이 다가오는 어둠을 밀어냈다. 기다림이 지루한 듯 그림자는 온몸을 비틀었다. 나에게는 그 모습이 도망치고 싶은 어린아이 같았다. 어릴수록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딘다지. 발에 밟힌 그림자는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그림자는 주위를 빙빙 돌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듯했다. 그림자와 그가 접촉한 곳은 차갑고도 뜨거운 세상의 바닥이다. 딱딱한 현실에서 그림자는 주인에게서 달아나지 못한다.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것은 그림자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그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비어있는 눈동자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부끄러워 눈을 피한다. 왠지 정면으로 응시하기 어렵다. 바닥을 향해 눈을 내리깔았다가도 이내 궁금증이 일어 다시 힐끗하고 그를 쳐다본다. 그의 눈동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무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 아니, 그는 특별히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초점이 사라진 그의 눈동자에는 어떤 것도 비치지 않았다. 멀리, 아주 멀리 떠나버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이의 뒷모습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밤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별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의 눈에 반짝이는 별 따위는 없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사람의 눈동자 같았다. 그 눈동자가 너무 안쓰러웠다.


"함께 걷던 거리에 혼자 서서 오지 않을 그녀를 기다렸어. 털어지지 않는 미련을 털어내려고. 늦기 전에 사랑한다 말할 걸. 이제 나는 누구와 이 거리를 걸어야 할까."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건조하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구름의 장막에 갇힌 듯 음울하고 탁하고 생기가 말라있었다. 목소리에서 피어난 슬픔이 마음을 급격하게 채워왔다. 소름이 돋고 눈물이 흘렀다. 영혼처럼 알 수 있었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나란 걸.


그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아니, 안기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는 나의 등 뒤에 있었다. 그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지만 그를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한 곳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다소곳한 모습으로 잠든 한 여자가 있었다. 너무 익숙해서 절대 모를 수 없는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문득 무언가에 이끌리듯 발 밑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에게 존재하는 거무죽죽한 그림자가 나에게는 없었다. 추웠다. 소스라칠 정도로. 그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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