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언어

침묵은 아름답다

by 작가 전우형

침묵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빛은 숨겨져 있던 세상의 단면을 슬며시 드러낸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려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 말도 내뱉지 않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보물처럼, 깊은 밤의 적막이 만들어낸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맑고 선명하다. 그래서 나는 밤을 좋아했다.


세상은 늘 떠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말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말도, 사람도 아닌 힘이다. 말은 핑계를 만들어내는데 쓰이는 하찮은 장기 말일뿐이다. 방패막이로 쓰다가 용도가 소멸되면 바꿔치기 재물로 사용하기 딱 좋은 그런 것. 그래서 정작 중요한 순간이 오면 입을 다문다. 입을 열어야 하는데 힘의 눈치를 본다. 모든 것을 다 책임질 것처럼 떠들어놓곤 스스로 자신의 말을 부정한다. 그렇게 권력은 사람을 광대로 만든다.


오늘 내가 온 목적은 광대 중 한 사람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이곳에는 한 편의 연극이 펼쳐질 것이다. 그들은 인형사의 손짓을 따라 소리 지르며 춤을 출 것이다. 여름밤의 공기는 마음 한 구석을 섬뜩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선명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심장의 진동을 규칙적인 울음소리에 맞추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박동 세 번에 울음소리 한번. 떨림은 어느덧 멎었다. 아파트 모서리에 걸린 달이 사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조준경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나는 호흡을 멈추곤 손가락 끝에 지그시 힘을 줬다.


타당!


고요함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 하나가 건물 사이를 메아리쳤다. 몇몇 곳에 불이 켜지며 베란다 밖으로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방금 그거 총소리 아니었어?

여보세요?! 거기 경찰서죠? 방금 총소리가 들린 것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


크지 않은 웅성거림이었지만 밤공기는 모든 것을 증폭시키는 힘이 있었다. 목소리뿐 아니라 거기에 담긴 당황과 의아스러움, 통제할 수 없는 공포까지도. 그 사이로 뾰족한 비명소리가 털끝을 곤두세웠다.


꺄악! 여기 사람이 떨어져 있어!


그 목소리가 가리키는 곳에는 팔다리가 뒤틀린 형상의 그림자 하나가 바닥을 검붉은 액체로 물들이고 있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듯 간헐적으로 부르르 떠는 모습이 사람들을 더 큰 공포에 빠트렸다. 삽시간에 아파트 주민들이 우르르 아파트 입구로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은 어찌할 줄 모른 채 바라만 보고 있었지만 그중 몇몇 사람이 차분히 그림자에게로 다가갔다. 맥박과 호흡을 살핀 그들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림자에 숨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저격이라는 다소 고전적인 수법을 쓴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좀 더 눈에 띄는 방식으로 살해당해야 했다. 그의 공개적인 죽음은 그들에게 모종의 불안을 자극할 것이고, 그 불안이 그들로 하여금 무거운 엉덩이를 떼어내지 않을 수 없게 할 것이었다.


살해의 위협을 느낀 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다. 경호를 붙이거나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은 은밀히 조사를 시작할 것이다. 자신을 노리는 자의 정체에 대해. 주목할만한 점은 그가 살해당한 장소가 집이나 회사가 아니라 안가라는 점이었다. 사전 경고까지 했던 이 대담한 암살자를 피해 그는 미리 누구도 모르는 안가로 미리 대피해 있었다. 그가 별채에서 저격당했다는 것은 가까운 곳에 첩자가 있다는 것의 방증이었다.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던 암살자가 그를 뒤쫓아 안가의 위치를 알아내었을 수도 있지 않냐고? 하지만 그는 누군가 자신을 뒤쫓을 것을 대비해 대역을 세워두는 치밀함을 보였고 지금도 그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그의 행세를 하고 있었다. 만약 암살자가 대역의 존재를 알고 그를 뒤쫓아왔다면 그 사실 또한 가까운 곳에 배신자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과 같았다.


결국 그의 측근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희생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물밑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죽음의 언어는 은밀히 진행되던 권력의 암투 작용을 가속화하는데 안성맞춤이다. 결국 가장 힘없고 불쌍한 자가 모든 의심을 뒤집어쓰고 숙청당하고 말 것이다.


권력의 중심에 선 자에게 적은 공기와 같다. 그를 적대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원한은 사소한 것이다. 사적인 감정은 많은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 중요한 건 그가 왜 죽었는가가 아니라 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결국 노쇠한 사자는 늑대 무리에 뜯어 먹히는 법이다. 그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원한을 샀기 때문이 아니라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호받길 원하고, 권력은 중력과도 같다. 중력이 사라지면 권력에 붙어있던 것들은 일제히 튕겨나간다. 우주의 먼지는 또 다른 중력을 중심으로 세상이 재편되길 기다린다. 권력이 교체되는 과정은 지극히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권력의 속성을 아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한다.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한 톱니바퀴는 멈춰 세우기 어렵다. 그건 이미 장전된 방아쇠를 당길 때와 같다. 수많은 필요와 당위, 상황과 변수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제한하지만 선택은 결국 자신의 몫이라는 텍스트 앞에 절망한다. 장전된 총을 쥐어주고 방아쇠를 당기는 법을 알려준 건 누구일까? 죽음의 당위를 안기며 눈앞의 사람을 종용하는 이는 누구일까. 선택지가 하나뿐인 답안은 던지며 선택의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권력이 힘없는 자를 길들이는 흔한 수법이다. 그 선택은 과연 누구의 의지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자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