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납치극 - 7

추격

by 작가 전우형

* 6편에서 이어집니다.


모성애


마른걸레 쥐어짜듯 정신머리라고는 한 방울도 남지 않은 현재가 몽둥이처럼 그녀의 삶을 후려치고, 아이가 사라진 잠깐의 시간 동안 숨 막힘은 상수가 되어버렸음에도 그녀를 내리누르는 끝 모를 막막함은 그보다 곱절은 더 무거운 것인지 밧줄에 목매단 듯 버둥버둥 애를 써봐도 눈앞은 자꾸만 흐려진다. 엄마로서 아이를 양육하며 느낀 뿌듯함은 스스로에 대한 기만이었던 걸까? 아이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진심을 덮어둔 건 나도 모를 위선이었을까? 걸음걸음 치밀어 오르며 이제와서는 존재했을지도 모를 양심을 바늘로 콕콕 찔러대는 느낌에 한여름 소낙비 같은 죄책이 쏟아지며 처진 어깨를 부서져라 두드린다.


남편과의 전화를 마친 그녀는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와 아이가 납치된 장소로 향했지만 보도블록이나 시멘트 바닥에 발자국 따위가 남을 리 없으니 고려해볼 만한 건 아이를 낚아챈 범인이 쏜살같이 사라졌던 골목길을 다시금 살펴보는 것뿐이었다. 아이를 되찾고픈 엄마의 모성애스런 본능과, 인간성을 의심받을지 모를 무시무시한 속사정이 속속들이 밝혀진 상황에 대한 두렴 중 어느 쪽이 실질적인 동기에 더 근접했는지 스스로도 감이 흐려질 지경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런 복잡한 마음의 작용이 그녀로 하여금 홀로 사지에 뛰어들 것을 강요했기에, 누군가를 쫓는 건 술래잡기 경력조차 단절된 지 십수 년인 도시 엄마에게 비록 버거운 일이더라도 '무슨 수'라는 세 글자에 자신의 남은 운명을 맡겨보아야 할 판이었다. 하나 정작 할 수 있는 건 발을 동동 구르며 주위를 살피거나 애꿎은 입술만 씹어대는 것뿐이었으니 아이 잃은 엄마의 말 못 할 초조는 절로 짙어만 갔다.


추격전


아이 하나 짊어진 사람의 발걸음이 어찌 그리도 빠를 수 있는지 지금도 이해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불과 십 수 미터를 쫓아 골목길로 들어설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범인과 아이가 이미 종적을 감추고 만 것은 그녀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렵다는 것만 제외하면 분명한 현실이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은 추적하는 이의 발걸음을 순간적으로 붙들어 매기에 충분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정신 나간 여인처럼 근 1시간여를 골목이란 골목은 모두 헤집으며 아이의 이름을 고래고래 소리쳤다. 고교 가을 운동회 이후 해본 일 없던 과한 질주를 남발한 탓에 체력은 이미 바닥을 뚫고 내려간 지 오래였고 후들거리는 다리는 이미 한계를 부르짖고 있었지만 그녀는 초인적인 힘으로 아이를 찾아 한참을 더 인근 거리를 맴돌았다. 그러니 이미 지구에서 화성만큼 시간이 지나버린 시점에 다시 그 골목을 뒤진다 해도 별다른 소득이 없을 것임을 이성과 합리는 진즉에 계산했지만, 1분 1초가 귓바퀴 옆에서 째깍거리는 그녀가 기약도 없는 고딴 것들에 기댈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느 분이든 한 번만 도와주세요.' "부처님, 하나님, 예수님, 성모님..." 떠오르는 대로 아무 신의 이름을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아이가 짠 하고 품에 돌아오기만 하면 어느 분이든 평생 믿어드리리라 다짐하던 그녀 앞으로 익숙한 남성의 실루엣이 스쳐가고, 돌변한 눈빛의 그녀가 "이봐요, 이봐요! 야! 너 거기 안 서?!" 하며 해당 남성의 뒤를 급히 뒤쫓지만 어느덧 저만치 멀어진 그는 길가에 세워둔 스포츠카 조수석에 올라타더니 쓸데없이 시끄럽기만 한 굉음과 함께 출발해버린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야 오늘만 제발 버텨다오 하며 주정차 단속 카메라도 아랑곳없이 도로 한편에 세워둔 자신의 차로 달려가 스마트키 버튼을 수 차례 눌러보지만 오늘따라 시동이 걸리지 않는 상황에 미치려 하다가, 이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오른발로 브레이크 페달을 꾸욱 밟은 채 시동을 거는 데 성공한다. 운전대를 잡은 손아귀가 덜덜 떨려오는 것도 모른 채 평소답지 않게 거친 마찰음을 내뿜으며 출발하는 것도 모자라, 끝 차선에서 반대편 끝 차선으로 불법유턴을 감행하는 바람에, 한가로운 오후의 라디오 프로그램 시그널 리듬을 타며 직전에 구입한 아이스 라떼 한 모금을 가볍게 빨아들이던 상대편 운전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브레이크 페달을 운전면허 시험 중 비상경보가 울렸을 때만큼 강하게 밟을 수 밖에. 급격한 출렁임으로 인해 복부와 사타구니가 차갑고 끈적이는 액체로 축축해진 탓에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이 정신 나간 동네 아줌마야 집에서 애나 보지 왜 길바닥에 나와서 이 난리를 만드냐며 경적도 울리고 손가락질과 함께 한동안 잊고 있던 욕설도 던져보지만, 지금 그딴 것들이 그녀의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임계점에 다다른 심장의 진동이 다급함의 끝자락에 선 그녀의 심정처럼 일정치 못하고, 당첨된 로또 복권 1장을 손에 쥐고 판매점을 향할 때의 두근거림이 이럴까 싶기보다는 앞으로 남은 생에 다른 소원은 없을 것이니 아이만 되찾게 해 주소서 하는 속내로 제발을 연달아 외치며 악을 쓰듯 가속페달을 밟아대는 그녀의 눈빛에는 일종의 광기마저 흐른다. 저쪽이었던가 하고 뒤를 쫓는데 마침 정지신호에 발이 묶인 스포츠카가 보인다. 그녀는 망설일 것도 없이 네 이놈 지금 내게 브레이크는 없다 하며 달리던 속도 그대로 스포츠카의 꽁무니를 으스러져라 받아버리는 찰나에 거대한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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