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개새끼 하나쯤은 품고 사는 거 아냐? 좋은 사람이 어딨어? 참을만하니까 참고 사는 거지.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새끼를 무한정 인내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 그러니 주인마저 물어뜯기 전에 적당한 먹잇감 하나쯤은 던져줘야 하는 거라고. 안 믿는 눈치네? 이거 내가 한 말 아냐. 프로이트 알지? 정신분석학의 대가라는 그 고명한 양반도 인간의 마음속에는 리비도와 타나토스라는 게 있다고 했거든? 살다 보면 그런 충동들을 자꾸 누르게 되더라는 말이야. 그래서 무슨 신경증적 불안? 뭐 그런 게 생긴대. 대충 짜증 같은 거겠지? 응! 맞아. 지금 네 표정 같은 그런 거 말이야. 너도 지금 듣기도 싫은 말을 들어주느라고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 그렇지? 사실은 입을 꿰매어 버리거나 당장 자리를 뜨고 싶을 거 아냐? 그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서 방어기제가 작동한대나 뭐래나...
어! 그렇지. 지금 네가 내 말 듣자마자 아무렇지 않은 듯 웃음 짓는 거. 나한테 들키지 않으려는 거잖아? 그런 것도 방어기제야. 저쪽 테이블에 서로 투닥거리는 남녀를 보면서 "저런 배려심 없는 것들!" 하고 혀를 차면 그것도 방어기제라는 거야. 그건 '투사'라던가?
암튼! 서론이 길었는데, 결론은 이거라고... 늘 참고 사는 그 본능이란 놈들을 어딘가 풀어둘 곳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익명성'이라는 거야. 내가 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상태가 되면 그동안 도저히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할 수 있게 되잖아? '이름'은 정체성을 대변하기도 하고. 거기다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이라면 행위를 들킬 가능성도 없고 말릴 사람도 없겠지. 너라면 그런 순간에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겠어? 거기다 못하던 술이라도 한 바가지 들어갔다면 게임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지.
탐색
화면에는 여전히 아까의 사이트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던 그는 옆에 놓인 물 잔을 집어 들었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거칠게 내려놓았다. 물이 아니라 소주였다. 진한 알코올 냄새만으로도 속에서 쓴 물이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넥타이를 풀어헤친 그는 계속해서 사이트를 살펴내려 갔다. 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이채를 띠었다. '아이를 납치하는 척해서 데려간 뒤 대신 키워서 돌려주겠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이트를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정말 아내가 이걸 신청하려고 했단 말이야?'
놀람이 분노가 되어 들끓던 마음이 진정을 되찾은 것은 문득 어떤 안타까움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사람에게도 표현할 수 없었던 힘겨움과 부담은 나름의 출구를 찾고 있었음이 분명했고, 이런 일에 10:0의 과실비율은 없었다.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안정감을 줄 수 없었고, 기울어진 마음이 일상이었다면 버티고 버티다 어느 순간 굴러 떨어지고 마는 것은 예정된 결과였을지도.
사이트 하단에 표기된 고객센터 번호를 누르자 으레 들릴 법한 다정하지만 인위적인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객님. 어떤 일로 전화를 주셨나요?"
새벽 1시가 넘은 시간까지 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보다도 그저 눌러보았을 뿐인 전화를 누군가가 받았다는 것이 더욱 뜻밖이었다. 적잖이 놀란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상담원은 재차 응대 멘트를 또박또박 읊었다.
"고객님. 편안하게 문의하셔도 됩니다. 어떤 일로 전화하셨나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에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인터넷 사이트 보고 전화드렸어요. 이거 정말 하는 게 맞나요?"
"어떤 서비스를 말씀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이 대신 키워준다는 서비스 말이에요."
"대리양육 서비스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물론입니다. 저희는 힘들어하는 친부모를 대신해 최상의 양육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해드리고 있습니다."
"정말 아무 비용도 들지 않나요?"
"네. 그렇습니다."
"신청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사이트 상단의 탭 중에 왼쪽에서 3번째 [신청하기]를 누르신 후 몇 가지 사항을 입력하시고 주의사항에 동의해주시면 됩니다."
"아이를 돌려준다는 건 어떻게 보장받죠? 최상의 양육환경이라는 것도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믿지 못하실 경우 신청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원하신다면 본사를 통해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비밀보장을 약속해 주셔야 합니다."
착각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그는 종전의 대화를 되새기다가 불현듯 두통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허겁지겁 알약 하나를 털어 넣은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뭐야? 장난이 아니었던 거야?' 터질 듯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아내가 신청을 완료했는지 여부였다.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 아내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내가 이런 고민을 했다는 것도 머릿속에 든 것이 일제히 곤두박질칠만한 충격이었지만, 그 사실을 남편에게 들켰다는 사실은 아내가 감당할만한 범위를 넘어선 충격일 것이었다. 아내는 그런 수치심이나 지극한 자기혐오를 견딜 만큼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사진을 한 장씩 되돌려보았다. 교차되던 이미지는 이윽고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 엎드려 잠든 아내를 지켜보던 장면에 도달했다. 모두 잠든 집.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던 서재. 흩어진 소주병. 인사불성이 된 아내. 그리고 컴퓨터 화면. 화면에 전시되어 있던 것은 분명... '아무 내용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