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목격담은 일상의 범주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경추 윗부분으로 찌릿함을 넘어 타는듯한 고통이 순간적으로 느껴진 탓에 그는 삼겹살을 굽다가 굵은 기름방울이 손등에 완벽히 안착했을 때처럼 무의식적으로 손을 빼서 뒷목을 주무르며 경악인지 놀라움인지 모를 전류를 풀어주어야만 했다. 충격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맥주 반 잔이면 얼굴이 붉어지고 봄볕에 서리 녹듯 혀가 풀어지며 원액보다 더한 주향을 내뿜는 묘기를 선보이던 아내의 정수리 앞으로 이슬 같은 소주병 2개가 굴러다니던 장면일까? 아니면 평소 눈부심이 심하다며 컴퓨터 앞에 앉지도 않던 아내가 인사불성인 채로 서재 모니터 앞에 엎드려 잠들어 있던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일까? 그도 아니면 그녀의 머리맡에 존재 여부를 의심케 할만한 괴상한 이름의 사이트가 버젓이 전시되어 있었던 탓일까?
사이트 홈페이지에는 대문짝만 한 글씨로 [아이를 대신 키워드립니다]라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신선한 문구가 쓰여있었다. '스트레스가 컸던 걸까?' 한심함이 8할이었던 그의 눈빛에 빗물 스미듯 애잔함이 침투했다. "여보, 여보! 나 왔어. 일어나 봐. 방으로 가서 자자. 응?" 흔들어 깨워보려는 노력에도 그녀는 사흘쯤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규칙적인 호흡과 함께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은근하고도 확실한 등의 움직임으로 보아 당장 생명에 위해를 가할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 그는 다만 술기운이 그녀를 너무 먼 곳으로 데려간 탓이리라 가늠하고 일단 그녀를 침실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무게감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녀를 안아 든 것은. 몸도 마음도 가볍던 20대는 종류가 다양했을 뿐 서로에 대한 부담도 보잘 것 없었다. 가혹한 한국인의 비만 기준에 빗대어보더라도 평균 이하를 맴돌던 그녀는 신체 질량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 경향은 지금과 동일했지만 적어도 그녀 스스로는 자신의 무게감에 대한 진지한 자신감 같은 걸 품고 있었다. 당시의 그녀는 스스럼없이 그에게 안겼고 그런 행위에 대해 안절부절못하거나 당황과 걱정의 경계에 위치한 감정을 억지로 감추며 자기 방어에 힘쓰지도 않았다.
엄마들의 운명을 가혹하리만치 다그치는 것은 산후에 맞이하고야 마는 어떤 수치였다. 반년 이상 아이가 먹고 싶어 한다는 자신도 확신하지 못할 이유를 들먹이며 죄책을 밀어내 왔던 과도한 섭식 행위의 잔해가 고스란히 반영된 지나칠 만큼 신선한 두 자리 숫자는 눈을 의심케 하기 마련이다. 배신당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무의식의 작용으로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평소라면 전혀 신임하지 않을 주변인의 위로가 마치 주기도문처럼 암송되며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 주지만 근거 없는 믿음은 또 다른 배신으로 돌아왔고, 때를 놓친 질량의 응어리들은 이제는 제 몸처럼 붙어 도무지 떨어질 마음이 없어 보이며 작은 절망에 무게를 더해주곤 했다.
임신과 질량의 자기 배반 행위를 몇 차례 경험한 엄마는 으레 자신의 체지방 측정을 거부하거나 건강검진 결과표를 제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현실을 부정하거니와 새벽에 눈 뜨자마자 화장실을 다녀온 뒤 폐부가 오그라들 만큼 긴 호흡을 내뱉고는 평소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진정성으로 두 손을 살포시 모은 채 두 발을 최대한 천천히 올린 이 시점에 분명 나와 상관없을 패악한 숫자를 제멋대로 산출하는 디지털 부속물의 고장 여부를 제멋대로 확정 짓는 것으로 울화를 다스리기도 한다.
내려놓는 것도 삶의 지혜라는, 서로에게 충분한 유대감을 느낄 만큼 어떤 유사성으로 뭉친 이웃 아주머니와 대화는 여자에서 엄마로의 고달픈 여정에 접어든 초보 엄마의 까맣게 탄 속내를 위안했을 것이고 그녀 역시 그렇게 세 아이를 키워내며 자신과의 수많은 협상 테이블에서 '적정 몸매 기준'의 극적 타결을 이끌어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수많은 '어쩔 수 없음'을 이유로 반갑지만은 않았을 무언가를 받아들여야 했던 지난 일들과는 명백히 다른 사정으로 신체기관을 통해 매일 그녀 스스로 체감하는 어떤 무게감을 타인이자 때로는 라이벌이기까지 한 남편에게 고스란히 들키는 것은 자존심이 달린 문제였기에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남편을 비롯한 타인의 범주에 속한 자에게 안기거나 업히는 등 무게감을 직설적으로 제공하는 행위에 자의로 뛰어드는 것은 금기시된 지 오래였다.
금기를 깬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음주였으니 주체가 그녀인 이상 잠에서 깬 후 억울해한다고 해도 도리 없는 일이다. 이만한 자극에도 아무 반응도 없는 모양새가 지금의 극적 이동이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은 왜소해 보였지만 그녀가 자신이 잠든 곳이 서재 모니터 앞이었다는 파편에 가까운 사실이나마 의식에 새겨두었다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위치 변경을 깨닫고 어떤 상상에 머리를 부여잡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팔을 통해 느껴지는 그녀의 무게감은 보잘것없었다. 나이 앞자리 수가 바뀔 만큼 긴 시간 동안 이루어졌을 신체기능 퇴화와 직장생활에 찌들어 함부로 굴린 탓에 균형이 무너진 자신의 몸 상태를 미루어보았을 때 오히려 그녀는 험난한 육아전쟁 속에 홀로 승리를 거두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질 정도였다. 이유 모를 조급함이 파문을 일으키고 그런 자극은 분명 삶의 활력소가 되어줄 것이기에 나쁠 것도 없었다. 다만...
고민
그보다는 오히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얄팍한 의심에 가까운 감정이 그의 발걸음을 양 발에 모래주머니 찬 것 마냥 잡아끌었다. 잠깐의 회상은 눈앞의 의구심을 잠시 덮어주었지만 침대에 누운 뒤에도 여전히 인사불성인 아내를 보고 있으니 다시금 육아 스트레스에 대한 고민이 그의 콧잔등을 간질였다. '그 정도로 컸던 걸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이트를 들여다볼 정도로?' 누구보다도 엄마의 역할에 충실했던 그녀였기에 드러나지 않은 스트레스가 예상치를 웃돈다고 하더라도 아이 양육에 대한 신념을 뿌리째 흔들 만큼 거센 바람은 아니리라 여겼던 그였다. 하지만 그런 확신이 조금씩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단지 술김이나 홧김에 우연히 접속했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그런 사이트가 '우연히' 접속할 수 있는 사이트이긴 한 걸까? 그는 다른 측면에서 상황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우선 사이트의 세부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의 걸음은 자연스레 서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