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납치극 - 8

악몽

by 작가 전우형

* 7편에서 이어집니다.


희미한 장막이 걷히고 눈에 드는 것은 하얀 천장과 불빛,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 현실의 소재지를 파악해보려 하지만 의식의 연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각배는 방향타를 잃은 채 호숫가를 떠돌고 짙은 안갯속에서 길을 잃으려는 찰나 하나의 이미지가 번개처럼 내리 꽂힌다. 정신이 번쩍 들고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보려는데 작살이 관통하는듯한 통증에 비명만 날카롭다. 부서질듯 다문 어금니 사이로 삐져나온 억눌린 신음에 놀란 간호사가 다가와 그녀를 확인한다. "환자 분,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쏟아지는 고통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제 멋대로 비틀린 다리는 급히 수술대에 올려야 할 판이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도 운전을 할 수도 없었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지만 그 전에 반드시 확인할 것이 있었다. 그녀는 있는 힘껏 스포츠카의 뒤를 들이받았고 그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운전자와 승객 또한 그녀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잖은 부상을 입었음에 틀림없었다. 같은 사고 현장에 있었다면 그들 역시 인근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을 것이고, 제대로 된 응급실을 갖춘 병원은 드물었으니 어쩌면 같은 병원에서 응급처치 중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라면 분명 아이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라는 믿음은 마른 시멘트처럼 강한 확신으로 굳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을 추궁하는 것 이외에 달리 그녀에게 남은 패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힘겨운 목소리로 간호사를 호출하려 할 때 익숙한 두 사람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긴 회상으로부터 그를 현재로 불러 세운 것은 한 통의 전화였다. 기다리던 아내의 번호는 아니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표시된 스마트폰 화면을 그는 한참동안 바라만보았다. 그는 발신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마음 속에 불안이 휘몰아쳤다. 긴 호흡도 답답한 속내를 밀어내지 못한다. 명치끝이 단단하다. 통화버튼에 손을 가져가는데 신호가 끊어진다. 다시 걸어보아야 하나 하고 얕은 고민에 빠지려 할 때 끊어졌던 전화가 다시 울린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은 그의 고막으로 익숙하지 않지만 낯설지도 않은 한 남자의 목소리가 다가와 문을 두드린다. 개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은 남편은 여전히 단잠에 빠진 아이를 안고 카페를 나서며 직원에게 준비된 케이크는 임의로 처리해달라고 한다.


시간이 멈춘다. 아이가 엄마를 보고 웃는다. 그 웃음이 기나긴 악몽에 종지부를 찍어준다. 그녀의 눈에서 맑고 따뜻한 물방울이 떨어진다. 남편은 아무 생각 말고 지금은 그저 누워있으라며 그녀를 다독인다. 안정을 되찾은 그녀는 생각한다. 아이를 데려간 남자는 누구였을까? 아이는 어째서 남편과 함께 있을까? 그 문자는 무엇이었을까? 남편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 그녀가 정신없던 사이 놓치고 만 그 무엇. 그녀가 묻는다.


"여보, 그런데 다른 애들은 집에 잘 도착했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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