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납치극 - 14

탐색전

by 작가 전우형

* 13편에서 이어집니다.


"뒤에 계신 분은 누구신가요?"

그녀는 원장 뒤에 선 사람을 향해 흘끗 시선을 던지며 원장에게 물었다. 원장은 그녀의 물음이 누구를 향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소개해드리려고 했습니다. 세진 양의 담임선생님입니다. 직접 사과드리고 싶다고 해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선생님, 이리 와서 앉으세요."

원장은 뒤로 손짓해 담임을 불러들였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확연히 느껴졌다. 그녀의 표정은 미안함과 죄송스러움이 지표면을 덮고 있기는 했으나 숨길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가 그 바로 아래에 흐르고 있었으며 틈만 보이면 언제고 지표면을 뚫고 솟아올라 거대한 먼지구름을 만들어 낼 것 같았다. 미안함과 죄송스러움은 원아를 하원 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것이겠지. 하지만 억울함과 분노의 시작점은 어딜까?


"사과... 보다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말씀해보세요."

그녀의 질문에도 담임은 드러날 정도로 원장의 눈치부터 살피고 있었다. 표정과 기색을 감추는 데 능하지 못한 것이 담임선생님의 직장이나 사회경험이 일천하다는 원장의 말은 사실로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담임의 태도가 어쩐지 경솔함이나 서투름의 발현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요청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아이 실종에 얽힌 문제가 애초부터 나이 어린 담임의 미숙함에 있지 않음을 알고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오늘의 방문은 원측에서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는지 탐색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아직은 아이 납치에 얽힌 배경이 부부 두 사람만의 비밀이라고 할지라도 이번 사건의 원흉으로 짐작되는 양육 대행업체는 그들의 활동을 시분초 단위로 감시하고 있을지 모르며, 필요 여하에 따라 일부만 발췌된 로그나 사건기록의 형태로 사건에 대한 정보를 교묘하게 흘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필요'는 결국 부모가 마음을 바꿔 아이를 되찾겠다며 온갖 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혹은 적잖은 협박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행동을 이미 실천에 옮긴 부모의 의지를 꺾는 데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담임선생님의 사정이 무엇인지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원장 선생님. 담임선생님께만 따로 말씀드릴 내용이 있는데 잠시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원장은 시위하는 듯한 담임의 태도가 못마땅하던 차에 안 그래도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자식 잃은 부모에게까지 그 태도에 내포된 어떤 메시지가 전달된 것을 직감하고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극성 부모를 상대할 때의 주요 원칙을 가까스로 잊지 않고 약간은 비굴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수준에서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원장은 식어버린 커피를 바꿔주겠다며 부부를 잠시 등졌는데 그 위치가 절묘하게도 잠깐 동안 부부의 시야로부터 담임을 가리는 지점이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면 특이할 뿐이었다.


조용한 공간에 문이 '탁' 하고 닫혔고 남은 것은 부부와 담임, 세 사람뿐이다. 방해물이 사라졌지만 담임은 여전히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양손을 맞잡았다 풀었다 할 뿐 입을 열지 못한다. 주머니 속의 칼을 꺼내 휘두를 때는 언제든 칼자루가 상대방의 손에 쥐어질 수 있음을 염두에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선 그 고민의 무게를 덜어줄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든 그것으로 인해 선생님께 다른 어떠한 피해도 가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저희는 그저 잃어버린 아이를 되찾고 싶을 뿐이에요. 어떠한 사소한 단서라도 좋으니 부디 말씀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릴게요. 원장님 눈치를 보니 혹 말씀하실 내용이 원에 어떤 손해로 돌아올까 걱정하시는 것 같던데 지금 들은 내용은 철저히 불문에 부칠 것도 약속드리죠. 그러니 속 시원히 말씀해주세요. 세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이미 정해둔 답을 꺼내는 데도 시간은 필요하다. 주먹을 내지르기 전에 손바닥을 몇 차례 피었다 쥐는 것처럼. 어린 담임은 두 눈을 한 차례 꼭 감은 뒤 가슴이 부풀 정도로 심호흡을 한 차례 마치고는 우물물 길어내듯 하고 싶었던 말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변명으로 들릴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담임이 느낀 '이상함'이란 불과 몇 시간 전임에도 이미 긴 시간이 흘러버린 듯한 아까의 상황이, 평소 세진이가 하원 하던 순간과 불가사의할 정도로 다른 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세진을 데려간 남성의 경우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 담임으로서도 분명 낯설지 않았고, 세진이가 그 남성을 대하는 눈빛이나 태도도 익숙함이 잔뜩 묻은 그것이었다. 만약 세진이가 그를 조금이라도 어색해하거나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담임은 자신이 몇 명 안 되는 자기 반 원아를 매일같이 데리러 오는 보호자의 얼굴조차 숙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불성실함을 들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신분을 먼저 확인하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으레 약속된 사람이 원을 방문하여 아이를 데려갈 때의 전형적인 그것이었고, 담임은 자신의 그런 느낌을 의심할만한 어떠한 징후도 포착하지 못했다.


담인은 그 점을 원장에게 강조했으나 원장은 이유가 무엇이건 보호자의 신분도 확인하지 않고 아이를 내어준 것은 명백한 원측의 과실이고, 그런 발언은 아이 잃은 마음에 끓어 넘치기 직전의 부모에게 면피성 발언 이상으로 들리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게 뻔하니 불필요한 추측성 발언은 자중해줄 것을 재차 강조할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원장 선생님은 제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어요. 그건 단순히 저의 느낌일 뿐이라며, 커다란 실수로 지금과 같은 위기에 몰린 사람의 느낌이야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심할 경우 기억조차 일정 부분 왜곡되는 것이 '사람'이라고. 저는 억울했지만 딱히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요. 기억은 증거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체념하고 있었는데 좀 전에 두 분을 뵙고는 발설하지 않겠다는 원장님과의 약속을 도저히 지켜낼 수 없었어요. 그건..."


잠시 하던 말을 멈춘 담임은 순간적으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의식적인 촌각의 응시였으나 담임의 일거수일투족을 세밀히 살피고 있던 그녀는 담임이 남편에 대한 어떤 의구심을 품고 있음을 눈치챘다. 잠깐의 침묵이 세 사람을 감쌌다. 침묵이 가진 수천 가지 단어 중에서도 이번 침묵은, 담임 스스로도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꺼낼 때의 통제할 수 없는 두려움, 해당 발언이 불러일으킬 파장이 자신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에 대한 고통스러운 계산, 그리고 타인은 관여할 수 없는 불가해한 부부 사이의 깊은 문제를 공연히 건드림으로 인한 어떠한 방어작용이 자신을 공동의 적으로 돌리게 할 수 있다는 몇 단계 건너뛴 불확실성에 기반한 불안을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담임은 결국 이 말을 꺼내지 않을 거라면 굳이 두 사람에게 애써 신호를 보내지 않았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른 수많은 이유 속에서 결국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진짜 이유는 어쩌면 아이를 데려간 채 모른척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알려야 한다는 현재 담임의 처지로는 주제넘을 같은 여자로서의 의무감이나 모성애일지도 몰랐다.


(계속)

keyword
이전 13화대낮의 납치극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