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납치극 - 13

조각모음

by 작가 전우형

* 대낮의 납치극 - 12편에서 이어집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낭떠러지 앞에 서면 해석할 수 없는 공포가 뒷덜미를 잡아당긴다. 펀치 드렁크처럼 의식이 혼미한 가운데 '이제, 어떻게, 할까?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지...?' 질문은 산인데 답은 물 속이다. '이 상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위급함 속에서도 합리와 이성을 써 내려가고 적절한 답을 찾아내는 능력자들과는 달리 안온의 평범함에 익숙한 보통의 사람은 갑작스러운 포르티시모에 손가락이 반응하기보다는 정신세계가 허물어져버린다.


'꿈이라면...' 발바닥을 겨우 덮을만한 너비의 난간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거리를 채운 사람들의 정수리가 구두점처럼 한 문장의 끝과 시작을 나타내고, 끊어지기 직전의 전신과 정신의 긴장이 삶의 종결을 팽팽하게 당긴다. 귓전을 스치는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다. 목소리는 크지만 멀다. '목소리만으로는 누구도 붙들 수 없어.' 사람을 잡으려면 손을 내밀어야지. 그렇게 말하기 위해 뒤돌아선다. 균형이 무너지며 휘청거린다. 발밑의 허공은 나를 지지해주기는 커녕 무한한 아래로 잡아당긴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하얀 실선 위에서 춤을 추던 흔한 구두점 하나가 음이탈처럼 원래의 악보에서 떨어져 나간다. 하강은 어쩐지 따뜻하고 포근하다. 이대로라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그들은 왜 세진이를 데려간 걸까?'

도둑맞은 줄 알았던 막내 아이가 아빠의 품에 안겨 멀쩡히 돌아온 기쁨도 잠시, 종점에 다다르지 않는 의구심으로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연다.

"여보, 나 그날 봤어. 자기가 접속했던 사이트.'

색깔 없는 도화지처럼 창백하던 그녀의 얼굴이 뚜렷한 경악으로 채색된다. 일시적으로 치켜뜬 눈이 다시 감기고 얇은 속눈썹이 드러 날정도로 파르르 떨린다. 주먹 쥔 손에서 시작된 미묘한 경련이 팔과 어깨, 목을 타고 턱선을 따라 전류를 방출한다.

"낮에. 막내와 같이 자기 연락을 기다리며 고민해봤어. 당신이 왜 내게 연락하지 않는지. 어떤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올랐어. 충격이었지만 잊어버리기로 마음먹었던 그 이상한 사이트. 그런 어린애 장난 같은 사이트가 실존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자기가 아이를 대신 키워주네 어쩌네 하는 사이트를 알고 또 거기서 무언가를 하려 했다는 사실이었어."


너, 흔들리는 나무 앞에 서봤니? 나무가 흔들리는 게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야. 나무는 그저 지루했을 뿐이야. 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 삶이.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엄마가 아이를 보살피는 것은 당연하다. 엄마가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엄마가 아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당. 연. 하. 다.' 그런데 뭐가 당연하지? 그럼. 나... 는? 내 인생은? 내 삶은? 엄마는 원래 다 그런 거라고?


차갑게 식은 밥상 앞에서 기다린다. 우두커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현실 검증력이 사라지고 아이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이동한다. 눈물 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내리고 부서진 손가락 사이로 식은 핏물이 흐른다. 피 묻은 손으로 아이의 얼굴을 만진다. 하얀 도화지에 빨간 그리움을 그린다. '힘들어. 힘들지 않아. 괜찮아. 할 수 있어.' 최면처럼 맴도는 마음의 메아리가 체념을 무너트리고 나는 또다시 고상함을 가장하지. '엄마'라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로 남기 위해.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또 다른 눈초리. '제발. 그렇게 보지 마. 감시하지 마. 나를 내버려 둬.'


빛이 반짝이고 상황은 아이가 사라진 오후. 낯선 이의 손에 이끌려 어린이집을 나서는 세진. 그런데 세진이가 웃는다. 무척 즐거워 보인다. 내 아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의 뒤를 따라가는 그녀. 하지만 멀어지기만 하는 두 사람.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그녀를 비웃고. 남자가 아이를 안아 들고 뒤쫓는 수상쩍은 여자를 한번 흘겨본다. 낯익은 얼굴이다. 바람이 불고 머리칼이 흩날리며 시야를 가린다. 그림자가 오후의 바닥에서 바스락거린다.


어린이집은 이 상처 입은 부부의 방문으로 분주하다. 평소라면 세진의 담임선생님이 두 사람을 맞이했겠으나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원장이 직접 건물 입구에서부터 부부를 맞이해 상담실로 안내한다. 원장은 미리 준비해 둔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는 커피를 두 사람에게 내밀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던 원장은 우선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하며 운을 뗀다. 어린 담임 선생님이 아무래도 이곳이 첫 근무지고 아직 경험이 없어 '실수'를 한 것 같다는 말을 이어하며 어떻게든 이번 사건을 선생 개인의 부주의로 몰고 가려는 의도를 내비쳤지만 어쩐지 원장 뒤에 선 젊은 여선생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앳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표정도 그러했지만, 그보다는 어쩐지 미안함이나 죄송스러운 마음보다는 감출 수 없어 삐져나온 억울함이나 못마땅함이 먼저 느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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