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행복
* 10편에서 이어집니다.
직선으로 펼쳐진 복도의 양 옆으로 여닫이 문이 줄지어 있었다. 어둑한 실내는 뱀의 아가리처럼 음침하고 위험해 보였다. 오래된 백열전구가 깜박일 때마다 복도는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는데 세계의 아침과 저녁이 지루하지만 확실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일상적으로 느껴졌다. 건물 외부는 대리석으로 마감하여 매끈한 신식 건물 형태였으나 그에 비해 낙후된 내부 조명은 거주자들로 하여금 전후 세대나 통금이 존재하던 새마을 운동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각각의 문에는 세 자리 수로 된 호실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는지 짐작할 수 있을만한 다른 단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낡은 기숙사 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뚜벅뚜벅 보다는 또각또각. 힐의 날카롭고 뾰족한 굽이 시멘트 재질의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속도가 균일하고 거침없는 게 마치 자신의 등장을 은근히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발자국 소리는 흔하지만, 어떤 발자국 소리는 끔찍했다. 그것은 그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을 익히 짐작할 수 있어서였는데 각 방마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 거주하는 아이들의 나이가 어린 편임에도 구분이 어렵지 않을 만큼 도드라진 음색이었다. 아이들은 그 소리의 주인공을 '붉은 입술의 마녀'로 칭했는데 그녀는 '마녀'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자신에게 덧씌워진 상황이 그리 거슬리지 않는 눈치였고 심지어는 기꺼워하거나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자신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기도 했고 그녀의 업무가 아이들에게 호의적인 일은 아니었기에 적절한 공포나 불호는 오히려 도움을 주는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누군가가-그 대상이 비록 어린아이라도-자신을 함부로 대하거나 업신여기지 못한다는 점에서 어떤 쾌감을 느끼는 듯했다.
아이들은 이러한 상황-특정 구두굽 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이 의미하는 바에 이미 익숙해진 것처럼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고 종소리가 들리자 복도로 나와 각각의 문 옆에 한 줄로 시립 했다. 짙은 회색 원피스에 하얀색의 카라와 타이트한 허리띠가 도드라졌고 소매와 치맛단 역시 하얀 레이스가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검은색 스타킹과 광택이 거의 없는 하이힐은 어둠에 동화되었지만 유달리 하얀 얼굴과 선홍빛 입술은 까만 연못 한가운데에 비친 보름달 같았고 '붉은 입술의 마녀'라는 별명과도 썩 어울리는 모습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런 외양적 특징보다도 '마녀'라는 호칭을 떠올리게 하는 건 아이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그녀의 표독스러운 눈빛인 것 같았다.
감자나 고구마의 상태를 점검하는 듯한 세심한 눈초리로 아이들의 품평을 마친 그녀는 이내 몇 호, 몇 호, 따라와 하고 그녀에게 호명된 숫자가 쓰인 방문 옆에 선 아이들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지지만 어떠한 거부반응도 생략된 신속한 동작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자연스레 그 외의 아이들은 다시 방으로 돌아갔고 복도는 인기척이 없었던 원래의 모습이 되었다.
"데려왔습니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음성으로 그녀가 말을 뱉었다. 내가 왜 이런 하잘것없는 일을 도맡아야 하냐는 볼멘소리였다. 그런 일이 아니면 네게 뭘 믿고 맡길 수 있지?라는 말이 목젖 바로 아래서 겨우 멈췄다. 그녀에게 내린 지시는 얼굴이 가장 어두운 아이들로 6명을 뽑아오라는 내용뿐이었다. 이유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으로 그런 부분이 서운하게 다가왔겠지만 알려준다 해도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일뿐더러 그녀의 위치나 성향 등을 미루어봤을 때 불필요한 어깨 힘이 더 들어갈 게 뻔했다.
필요 이상의 긴장이나 강압 혹은 열심은 늘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다. 인간은 언어를 배우기 전부터 의사소통하는 법을 터득하며 몸짓이나 표정, 눈빛 등의 언어는 말에 비해 훨씬 더 본능적으로 뇌를 파고든다. 비언어적 신호의 직설적인 면과 관통력은 그 뜻을 알고 싶지 않아도 굳이 눈치챌만큼 강력해서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덜컥 입력되는 보호자의 의도나 생각을 깨닫고 놀라움과 신비를 동시에 느낀다.
너무 미안해하거나 조심하다 보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억눌린 입에서 비틀어진 언어가 되려 삼켜지듯이. 행복은 사소한 관계의 만족과 욕구의 충족에서 비롯되고 이제 아이들은 그간 억눌려있던 행복이라는 감정을 되찾을 것이다. 순수한 행복은 신규 조제될 알약의 원재료가 되어 줄 것이고 사람들의 웃음을 되찾을 것이다. 웃음에 소정의 대가가 따르는 것은 이 세계에서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억만금을 주고도 찰나의 웃음을 구하지 못해 사라져 가는 생명들에 비하면 그들의 짧은 행복은.
아이들은 비교적 평온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는 것은 큰 능력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평온은 그런 자기 관리나 절제, 상황판단의 영역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이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더 벌어져도 지금보다 나빠질 것은 없다는 절망에 기반한 안도에 가깝다. 모든 악운에 태연해질 때 인간의 모습은 가장 애처롭고 불쌍하다. 표정에 가로세로의 그늘이 아로새겨지고 힘을 잃은 눈빛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절망이 채워졌음을 알려준다. 메마른 땅에 빗물이 흐르지 못하듯 마음이 불쌍해진 이의 텃밭은 희망이 내리는 족족 땅 아래로 스며들고 겉보기에는 새싹이 자라지 못하지만 그 속에는 씨앗이 움틀 준비를 한다. 행복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에너지는 바로 이 순간에 잉태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