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납치극 - 15

쌍둥이

by 작가 전우형

* 14편에서 이어집니다.


담임은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세진이를 데리러 온 사람은 분명 남편 분이었어요."

그녀는 일어나 따지려는 남편을 제지하며 담임에게 되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죠? 세진이를 데려간 사람이 남편이었다는 근거가 있나요?"

담임은 두렵지만 부정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와 남편을 번갈아가며 힐끔거렸다.

"네. 이렇게 두 분을 마주 보고 있으니 기억이 더욱 선명해진 느낌이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닮은 수준을 넘어서 아버님과 완전히 똑같은 얼굴이었어요. 물론, CCTV로는 그런 얼굴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확인할 수 없으니 증거를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보육교사로서의 명예를 걸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때 제가 본 사람은 분명 아버님이었어요. 어째서 그 사실을 숨기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담임은 후회가 밀려오는 듯 여전히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지만 반드시 지켜내야 할 자신과의 약속이나 사회적 책무를 완수했다는 후련함이 저변에 맴도는 듯 오히려 처음의 잔잔한 떨림은 멎어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남편에게로 옮겼지만 그의 얼굴에 특별한 표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분노가 서려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편은 '최소한의 예의'에 대한 기준이 유난히 높은 편이었고, 평소 타인과 함께한 자리에서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오늘처럼 어떤 부모든 답답한 이성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원초아적 본능에 사로잡혀 누군가의 멱살을 잡아 흔들기에 충분한 상황에서도 강박에 가까운 그의 '예의'는 여전히 허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남편조차도 궤변에 가까운 담임의 말에는 다분히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던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편에게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 내가 쓰러진 동안 세진이 데리러 갔었어?"

남편은 아내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감정이 삭제된 눈빛으로 담임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굳어있던 표정이 풀리며 피식하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내뱉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웃음을 그린 입모양과 별개로 그의 언어에는 진득한 분노와 더불어 허탈감이 혀 밑을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철없는 담임의 자기변호에 휘둘려 아내가 자신에 대한 의심이 담긴 질문을 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근본적인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중량을 이기지 못한 유리 바닥처럼 금이 가고 있다는 허무감 때문일 것이다.

"그럼 설마 내가 세진이를 어딘가 몰래 데려다 두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내를 끌고 어린이집을 찾았다는 거야?"

그녀는 그런 남편의 물음에 순간적으로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계속 이 분과 말을 섞을 필요가 있을까?"

그는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담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실 말씀 끝났으면 이만 나가주시죠."

담임은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이내 체념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고개 숙인 뒤 조용히 상담실을 벗어났다. 이제 남은 것은 다시 두 사람.


남편은 담임이 상담실을 완전히 벗어난 것을 확인한 후 아내 옆으로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의 표정은 종전의 분노와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마도 담임의 말은 사실일 거야."

아까와는 다른 차분한 말투였다. 그녀 역시 남편의 변화를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다만 의문이 잔뜩 스며든 음색으로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자기가 어렸을 때 실종된 후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이미 오래전에 사망신고도 마쳤고. 하지만 나는 형이 죽었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형의 실종은 의문투성이였어."


남편의 쌍둥이 형, 종혁이 실종되던 해는 행복 알약 품귀 현상으로 전 세계가 시끄러웠다. 주식회사 유토피아는 돌연 행복 알약 생산 중단을 선포했고, 알약을 매일 복용해야만 정상 수준의 정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알약을 닥치는 대로 사모으기 시작했다. 행복 알약 생산이 중단된 것은 생산 과정의 치명적인 문제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행복에너지 추출 방식에 있었다. 위기에 몰린 사람을 데려다 거액을 지급하고 행복에너지를 추출했는데 추출이 끝나고 복귀한 참가자들이 족족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이 탐사보도로 밝혀진 것이었다. 보도의 파장으로 주식회사 유토피아는 새로운 행복 알약 생산방식의 연구가 완료될 때까지 생산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고 시중에 거래되던 행복 알약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 이듬해부터 10살 미만의 아이들이 대거 실종되는 기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났는데 종혁이 사라진 것도 바로 그즈음이었다. 실종 신고가 빗발치는 탓에 경찰은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렸고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아이들은 전국에 설치된 수십만 개의 CCTV 감시망을 유유히 뚫고 사라졌으며 종혁의 부모는 아이의 실종신고를 하러 간 경찰서에서 수십 명의 부모와 경찰이 뒤엉킨 아수라장을 목격할 뿐이었다. 종혁의 부모는 은행 창구 접수표같이 생긴 번호표를 받아 들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가까스로 경찰에게 아이의 실종 사실과 대략적인 경위를 설명하지만, 수사가 착수되려면 최소한 반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따져보아도 실종신고가 빗발쳐 인력 사정 상 저희도 어쩔 수 없다는 지극히 사무적이고 무책임한 경찰의 답변에 할 말을 잃고 직접 아이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두어 달 동안 나름의 추적을 해가던 종혁의 부모는 의미 있는 단서 하나를 얻을 수 있었고, 하나 남은 아이를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긴 채 그 길로 어딘가를 향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8살이었던 남편은 쌍둥이 형과 더불어 부모까지 갑자기 실종되자 이모 집에서 임시로 머물렀지만 친절하기만 했던 이모는 어린아이를 회유해 그의 집 일채를 매각해버리고 그 대금을 양육비로 퉁쳐버렸으며 부모가 아이 것이라며 함께 맡긴 행복 알약까지도 몰래 빼돌려버렸다. 알약을 복용하지 못한 어린 남편은 이지를 상실하다시피 한 채 이모집에서 쫓겨나고 숨을 거두기 직전 누군가에게 구출되었으며 국영 보호소에서 자라나게 된다. 그 보호소는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처음 인식한 곳이었고 자신의 주관적 세상에 입주 허가를 내어준 곳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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