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둠으로써 서로를 사랑했다. 우린 같은 공간에서 다른 순간을 걸었다. 가끔 아무 말 없이 함께 있는 우리 두 사람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거면 뭐하러 같이 있냐며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에게 이해를 던지건 말건, 우리에게 '함께' 한다는 건 그런 상태였다. 함께 하되 함께 하지 않는 것.
우리는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아꼈고 각자의 사유와 행위를 방해하지 않았다. 매우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서로의 세상을 노크했고 그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해도 보채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세상에 깊이 빠져든 순간은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우리는 그처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아꼈고 편안했고 숨 쉴 수 있었다. 우리에게 '함께' 한다는 건 그런 관계였다.
우리는 한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아서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고 다른 이야기를 즐겼으며 다른 상상을 했다. 그러다 문득 하고픈 말이 있으면 툭 건넸다. 답할 말이 있으면 답했고 아니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싱긋 웃었다. 굳이 답하지 않아도 우린 서로의 뜻을 이해했고 적절한 말로 응대하거나 맞장구치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담 없이 말을 건네다가도 가끔은 진지한 대화에 돌입했으며 그런 중에도 각자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에게 '함께' 한다는 건 그런 대화였다.
우리는 그래서 '함께'를 즐겼고 시시때때로 기다렸다.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우리의 관계는 대기압 이상으로 무겁지 않았다. 편안히 숨 쉴 수 있었고 고갈된 연료를 채울 수 있었다. 우리에게 기다림은 그런 의미였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우리의 에너지는 오롯이 두 사람이 함께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향했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방식이었다.
우리는 함께하는 시간에 그런 방식으로 서로를 아꼈다. 사랑하는 느낌과 사랑받는 느낌으로 서로를 채웠다. 그 아무렇지 않은 충만함이 미풍처럼 따뜻했고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늘 고맙고 감사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언제나 지는 석양이 떠올랐고 비 온 뒤의 무지개가 머물렀으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여우비처럼 만났고, 또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