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

보름달 덕분에

by 작가 전우형

"내 마음을 모르면 결국 상대방 마음도 모르는 거래."

"왜? 그게 무슨 상관인데?"

"마음은 거울이거든. 닦아주지 않으면 볼 수 없어."

"마음을 어떻게 닦니? 접시나 방바닥이나 화장실도 아닌데."

"마음에도 얼룩이 묻어. 만년필 잉크를 쏟은 아끼는 티셔츠와 청바지처럼. 아무리 비벼도 지워지지 않는 그런 얼룩이. 거뭇거뭇한 자국을 애써 지워내도 결국 파란색 얼룩이 남아. 그 마지막 얼룩은 아무리 손으로 문지르고 세탁기를 돌려도 그대로야."

"그건 결국 닦을 수 없다는 말 아냐?"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방법은 있어. 그 티셔츠와 청바지를 다시 입어야만 해. 입다 보면 얼룩은 서서히 연해지게 되어 있어."

"하지만 부끄럽지 않아? 그런 얼룩진 옷을 어떻게 입고 다녀?"

"마음에 남은 얼룩은 치열한 노력의 흔적들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얼룩질 일도 없어."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자랑스럽게 꺼내 입어야 해. 지울 수 없는 얼룩이 묻었다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벽장 속에 넣어두면 우린 결국 어떤 옷도 입을 수 없게 돼. 옷은 버리고 새로 살 수 있지만 마음을 그럴 순 없으니까. 그 옷이 얼룩진 덕분에 상처입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누가 물으면 설명해주면 그만이지 않을까? 의미 있는 얼룩이라고. 내가 참 좋아하고 애정 하는 옷이라고. 얼룩덜룩해도 나는 내가 좋다고."

나는 코끝이 뜨거워졌다. 물방울 하나가 또르륵 볼을 타고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문지르지 않고 그냥 두었다. 문득 창밖을 보는데 아파트 위로 크고 붉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초저녁에는 흐릿했었는데. 나는 마치 그 보름달이 잘 닦인 거울처럼 느껴졌다. 나는 묵묵히 기다려준 그에게 다시 물었다.


"내 마음을 알면 상대방의 마음도 알 수 있어?"

"아니, 그것만으론 안 돼."

"그럼 어떻게 해?"

"비춰야지. 내 마음으로, 상대방을."

"어떻게 하면 돼?

"멈추고 돌아서서 바라보는 거지."

"갑자기 웬 선문답이야?"

"걸어가면서 뒤나 옆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고개만 돌리면..."

"맞아. 그걸로도 옆이나 뒤에 사람이 걸어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옷을 입었는지까지 자세히 볼 수 있을까?"

"..."

"일단 멈춰야 해. 걸음이건 말이건 행동이건 생각이건, 내가 하던 일을 잠깐 멈춰야 상대방을 관찰할 수 있어."

"돌아서서 바라보라는 건 또 뭐야?"

"비스듬히 비추면 보이지 않으니까."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잘 닦아둔 마음이 있으면 상대방의 마음도 알아차릴 수 있어. 하지만 그건 내가 상대방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만 가능한 일이야. 관심은 무언가를 바라보고자 하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뜻하지만 그렇게 바라볼 때 안에 있는 말랑말랑하고 진실된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대충, 스쳐 지나가듯 봐선 알 수 없어. 물론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그의 모든 걸 안다는 것도 오만이고 착각이지만. 저 보름달을 봐. 우리가 잘 닦인 마음으로 상대를 보면 그가 가진 환하고 아름다운 빛을 함께 나눌 수 있어. 그럼 칠흑같이 어두운 밤도 환한 달그림자를 보며 걸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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