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타인을 사랑하는 행위가 과연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 행복하지 못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이가 과연 마음 편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편안하지 않은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사랑은 자신에게 넘치는 분량을 타인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내가 가진 바구니에 사랑이 가득 차서 더 이상 혼자만을 사랑할 수 없을 때 타인에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사랑은 ‘쥐어짜 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베풀 사랑도 부족한 사람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의존’이 되고 ‘집착’이 된다. 그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원한다. 그 사람이 사랑‘하는’ 이유는 실제로는 사랑‘받기’ 위해서다.
사랑은 자연스러운 끌림이며 누가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을 있는 힘껏 쥐어짜 상대방에게 무한정 퍼붓는다고 해도,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는 나의 사랑과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사랑은 구걸로는 얻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하는’ 것이고, ‘받는’ 것이지, 억지로 받아 ‘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빛이 난다. 그 사람 곁에 머물고 싶은 편안함을 준다. 스스로 여유가 있기에 상대방을 답답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끌림을 느낀다.
사랑은 서로의 영역이 묘하게 뒤섞이는 것이다. 상대방과 분리되어 있었던 나의 세상이 부드럽게 합쳐지는 과정이 사랑이다. 하지만 나를 답답하게 하는 사람의 세상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그곳에 속하면 나의 고유한 영역까지 침범당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사랑을 ‘갈구’하고, 이것은 인간에게 반드시 존재해야 할 적정 수준의 사유 공간조차 용납하지 못하게 한다. 조급한 마음에 사랑을 서둘러 완성시키려 하고, 그것을 확인하려 하며, 자신의 불안으로 말미암아 상대방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모든 것의 시작은 ‘자기 자신’이다. 이것은 사랑도 마찬가지다. 내가 행복해야 상대방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고, 나에게 여유가 있어야 상대방에게도 그 여유를 나눠줄 수 있다. 여유는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지게 된다. 스스로 당당하기에 타인의 눈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타인과 비교하고 확인하고 견제하는 불필요한 수고에서 벗어나 자신을 보는데 집중할 수 있다. 자신을 먼저 살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고, 자신의 무기를 극대화하는데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아는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를 떳떳하고 당당한 사람으로 여기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자신을 가꾸고 더 사랑한다. 타인의 평가에 의존해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 하지 않으므로,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진다. 자신감이 충분하기에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방어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다. 존경받으려 하기보다 존중받을만한 사람이 된다. 사랑받으려 애쓰지 않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된다. 부자처럼 보이려 애쓰기보다, 진짜 부자가 된다.
그래서 이들이 사는 세상은 다른 빛이 난다. 사람들은 그의 세상을 궁금해하고, 자신 역시 그 세상에 함께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러운 끌림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란... 먼저 채우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으로 충만히 채운 사람은, 사랑을 갈구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며,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에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