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21)

21.

by 작가 전우형

21.


나는 당신에게로 간다. 나는 열린 문틈으로 당신의 잠든 모습을 본다. 나는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나는 문을 닫는다. 아주 조금이지만 모든 소리가 한걸음 멀어진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


나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작은 양은 냄비를 정수기 추출구에 놓고 물을 틀었다. 그동안 가스레인지의 불은 혼자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후드를 틀었다. 그리고 가스밸브를 잠갔다.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양은 냄비 위로 정수기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나는 정수기 레버를 내리고 싱크대에 양은 냄비의 물을 절반 정도 버렸다.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두고 불을 켰다. 그리고 나는 바닥에 흥건한 물을 닦았다. 다 닦고 일어났을 때 양은냄비의 물은 전혀 끓고 있지 않았다. 가스밸브가 잠겨 있었다. 엉망이었다.


오후 3시쯤 되었을 뿐인데 나는 점점 더 눈을 뜨고 있기 버거워졌다. 쇠틀로 조이듯 묵직한 고통이 서서히 머리 전체를 압박해왔다. 눈은 점점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바싹 마르며 쪼글쪼글해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싶었다. 정말이지 그러고 싶었다. 잠시만이라도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적외선 치료기를 세워두고 그 앞으로 내 얼굴을 밀어 넣은 뒤 눈을 감지 못하도록 걸쇠를 채워둔 것 같았다.


병원은 엉망이었다. 일곱 살쯤 되는 남자아이 둘은 서로 레이스를 하듯 소파 사이를 뛰어다녔다. 아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휴대전화를 쳐다볼 뿐이었다. 간호사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자 아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오히려 간호사를 노려봤다. 도망치던 아이 하나가 나를 치고 지나가며 손에 쥐고 있던 빼빼로를 놓쳤다. 뒤쫓아오던 아이는 그 빼빼로를 냉큼 집어먹었다. 놓친 아이는 허망한 눈으로 그 장면을 보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레이스는 멈췄고 통곡이 시작되었다. 아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여전히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나는 아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애들 좀 챙기세요.”

아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다가 점차 안색이 굳어졌다.

“저 엄마 아니에요.”

그때 울던 아이가 진료실 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한쪽 눈을 감싼 중년 여성이 하나 남은 눈으로 저간의 사정을 살피며 서 있었다. 나는 여자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요즘 좀 엉망이라서요.”

여자는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손을 저었다. 멀리서 중년 여성이 소리쳤다.

“죄송해요. 애들이 너무 시끄러웠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애들이 시끄러운 게 아니라 내가 엉망인 거였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사무적인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눈 뜨고 있기가 힘들어서요.”


의사는 한 손으로 턱을 잡고 다른 손으로 집게를 만들어 눈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나를 안내하더니 틀에 얼굴을 고정시키고 눈에 레이저를 쏘기 시작했다.

“눈 뜨고 계세요. 잠깐이면 됩니다.”

무자비한 광선검 같은 불빛이 눈을 때리며 나는 더욱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행히 내가 발작하기 전에 그 괴기스러운 작업은 끝났다.


“눈이 조금 충혈된 것 말고는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환절기라 눈이 건조한 분들이 많아요. 안약을 사흘 치 처방해 드릴 테니 넣어보시고 그래도 안 좋으시면 그때 다시 보죠.”


**


존재를 드러내고 싶을 때 모든 것들은 소리를 낸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듯이. 아이는 엄마가 사라지면 엄마를 찾는다. 아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엄마가 사라진 줄 안다. 아이는 엄마가 절대 자기를 버리지 않을 거란 걸 모른다. 아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늘 불안하고 두렵다. 아이가 엄마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아이는 다만 그 사람이 엄마라는 걸 모른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절대 자기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모른다. 아이가 엄마가 엄마라는 걸 알면 그때는 울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가 엄마라는 걸 알고도 우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그건 항생제조차도 듣지 않는다는 얘기니까.


**


“엄마는 어떤 느낌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글쎄요.”


너무 오래돼서 한참을 떠올려야 했다.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미안하죠.”

“누가요? 영우 씨 엄마가요?”

“아뇨.”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무섭죠.”

“왜요?”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요.”

“거짓말. 그런 엄마가 어디 있어요.”

“있어요.”

“그건 엄마가 아니죠.”

“맞아요. 그건 엄마가 아니죠. 하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내가 정할 수 없어요. 그런 건.”

그녀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배부른 소리예요.”

“자책하지 마요. 그건 희영 씨 탓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말을 돌렸다.

“눈은 좀 괜찮아졌어요?”

“잠을 좀 잤어요.”

“다행이네요.”

“네. 여긴 빛이 거의 없어서 좋아요.”


그녀는 숨을 길게 마시고 후 하고 내뱉었다. 나도 따라 했다. 그녀는 시선을 멀리 던지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노련한 낚시꾼이 던진 낚시찌처럼 수면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어릴 땐 캄캄한 방이 무서웠어요. 불을 켜기 전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못했죠. 가장 끔찍한 방은 줄을 당겨서 켜는 전등이 설치된 방이었어요. 의자에 올라서야 겨우 손이 닿았죠. 하지만 더한 건 화장실이었어요. 변기 위에 올라서면 커다란 거울로 희미하게 제가 비쳤죠. 희끗희끗 움직이는 게 저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결국 고모를 깨웠죠. 고모는 웃으면서 불을 켜주었어요. 그리고 임시로 긴 줄을 연결해주었죠. 다음 해에는 버튼이 생겼고요. 아마 저에게도 엄마가 있었을지 몰라요. 그 일만 없었다면요.”


**


희영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누군가가 천정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머리의 각도가 기묘하게 꺾어진 채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한 사람을 희영은 조금 멍한 눈동자로 한참을 쳐다보았다. 초저녁이었지만 암막커튼이 쳐져 있어서 안은 캄캄했다. 아무리 봐도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희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희영은 짧은 순간 얼른 불을 켜야겠다고 천만번쯤 되뇌었지만 손과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때 불이 달칵하고 켜졌다. 희영의 뒤에서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스라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모는 달려가서 그 천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희영아. 불 좀 꺼줄래?”


희영은 그제야 손이 풀리는 걸 느꼈다. 희영은 불을 껐다. 희영이 마지막으로 본건 혓바닥이 길게 늘어진 여자아이의 얼굴이었다. 지은이를 닮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 같았다. 그리고 지은이를 안은 고모의 마지막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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