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전우형 Feb 09. 2024

늘 입던 패딩 조끼 대신

소설

어지럼증

그것은 관성의 부작용

멈추지 않는 우주가 만들어내는 창조적 멀미




  6. 늘 입던 패딩 조끼 대신     


  작은 가스난로를 창가 쪽으로 돌려둔 채 나는 책을 읽는다. 늘 입던 패딩 조끼를 두고 와서 두터운 점퍼를 벗어놓을 수 없었다. 입구 오른쪽 유리를 따라 화분들이 쭉 늘어서 있다. 늦은 오후가 되면 햇살이 길게 드리우는 자리다. 식물들은 생명력이 강하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낸다. 겨울은 변곡점에 접어들었다. 해는 길어지고 밤은 싸늘하다. 인간에게 믿음이 싹튼 것은 신이 영혼의 이해력에 빛을 비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이 밤을 맞이하는 건 우리가 빛으로부터 돌아섰기 때문이다. 태양은 영원하다. 적어도 인간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어쩌면 이 식물들에게도 빛은 믿음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따뜻한 그 빛을 맞이하다 보면 아직은 겨울이 버틸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무나무 잎이 망고 껍질처럼 익어버리긴 했지만 시들해 보이지는 않는다.     

 

  카페의 겨울은 유독 춥고, 불이 꺼져 있을 때가 더 많다. 작년 여름에 화분을 한 트럭 실어 왔고 일부가 죽고 일부는 나눠주었으며 일부는 아직 남아있다. 그들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시간이다. 시간의 톱니바퀴는 돌보지도 못할 것들을 자주 데려왔고 또 데려갔다. 그때부터 이 화분들은 나의 일부가 되었고 나의 시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통로를 확보하기도 벅찰 만큼 카페를 가득 채웠던 그들이 보기 좋을 만큼만 남게 된 것도 시간의 결정에 맡긴 결과다. 


  모든 식물이 정처를 찾지 못해 이곳에 세워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사랑목이라는 이름의 다육식물과 장미 허브는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작은 화분 하나였던 사랑목은 녹색 사이에 하얀 잎과 분홍 잎이 꽃처럼 피어나서 많은 손님들에게 사랑받았다. 장미 허브는 홍로처럼 고운 빨간색 손잡이가 달린 화분에 심어진 채 나와 만났다. 만지면 장미 향이 난다. 나는 장미 향을 모르지만 가끔 실수로 그것들을 건드리면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사랑목은 비슷한 크기의 화분 5개로 불어났다. 물만 주어도 잘 자라는 장미 허브는 부족한 집사의 보살핌에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들은 카페 곳곳에서 자연의 냄새를 만들어 낸다. 그들은 내게 또 다른 이유가 되어 주었다. 




내일은 민족의 큰 명절, 설입니다. 차례상은 다들 준비를 마치셨는지요. 저는 가족과 함께 저녁으로 떡국을 먹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인 따뜻함이 이제 다가올 봄의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 우리의 겨울이 어디까지일지 기대반 설렘반의 기분으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전 05화 지구 탈출 속도로 상상하는 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