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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Mar 05. 2024

모르는 사람들의 언어

소설

  아이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해줄 게 없는데

  교복 차림을 한 여학생 두 명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밖은 봄이었다

  그 사실이 지독하리만치 싫었다




  26. 모르는 사람들의 언어    


  마상은 호수변에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 마상에게는 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초등학생 아들, 마야가 있다. 나는 마야를 두 번 봤는데 한 번은 머리 전체가 하얗게 탈색돼 있었고 다른 한 번은 정수리 왼쪽이 차분한 금색이었다. 마상은 바이크 동호회를 하며 전국을 떠돌다 나이 육십에 마야를 낳았다. 마상은 가죽 재킷에 스키니 진, 뾰족구두를 즐겨 신지만 마야와 함께 올 때는 수수한 운동복 차림의 동네 아저씨가 된다. 마상은 카페에 오면 허리를 쭉 빼고 앉는다. 오늘도 그런 자세로 사장 앞에 앉아 원두를 대량으로 주문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마상이 크, 하면 마야가 인상을 쓰며 마상을 흉내 냈다. 녹색 브리지를 물들인 마상의 앞머리와 보는 각도에 따라 금발과 백발의 비율이 달라지는 마야의 머리가 동시에 흔들렸다. 


  마상은 이번이 세 번째 결혼이었다. 두 번의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고, 20년 동안 독신으로 살다가 바이크 동호회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났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아내였다. 마상의 아내는 마흔다섯에 마야를 낳았다. 초산이었고 임신 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마상은 마야를 끔찍이 아꼈다. 마상은 은색 벤츠를 타고 다니다 오래돼 제네시스로 바꿨고, 요즘은 할리데이비슨을 나들이하듯 천천히 타고 다닌다. 멀리서 전투기가 날아오는 것 같은 광폭한 엔진음이 들리면 나는 마상의 접근을 추측했다. 소음기를 덜어낸 할리데이비슨처럼 마상은 감추어야 할 것들을 감추지 않는다. 


  마상은 평택호변에 카페를 차렸다. 그리고 개업을 일주일쯤 앞두고 브라질 6킬로그램을 주문했다. 사장은 로스팅한 원두를 가지고 마상의 카페로 갔다. 수율을 맞추는 일은 복잡하지는 않지만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일이다. 원두의 굵기와 무게, 추출 시간과 추출량을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에스프레소의 품질이 저하된다. 에스프레소는 모든 커피 음료의 기본이어서 에스프레소가 맛이 없으면 다른 바리에이션도 맛을 기대하기 힘들다. 달리 말하면 에스프레소만 제대로 추출할 수 있으면 커피 맛의 80%는 이미 해결된 셈이다. 전에 사장이 수율을 맞추는 걸 눈대중으로 한번 본 적이 있다. 그라인더 굵기를 조절한 뒤 무게를 재고 추출을 시작한 다음 추출 시간과 추출된 에스프레소의 무게를 측정한다. 원하는 추출 시간과 추출량이 나올 때까지 그라인더 굵기와 추출 버튼의 세팅 값을 조절하면서 같은 절차를 반복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마상은 마대 공장 운영으로도 손이 달렸고 평택호변의 카페는 그의 아내가 담당했다. 마상의 아내는 바리스타 자격증은커녕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해 본 적도 없어서 전문 직원을 고용해야 했다. 마상의 아내는 커피에 대한 주관이 강한 편이었고 30대 시절 커피 맛집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 이야기를 레퍼토리처럼 했다. 하지만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마상의 아내는 좋은 스토리텔러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에게서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손님들은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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