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전우형 Mar 11. 2024

너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소설

  버터 와플은 절반쯤 찢어져 있었다

  나는 남은 세 조각을 입에 넣었다

  달짝지근하고 썼다

  하지만 쓴 맛 과자라니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수도꼭지가 또 고장 난 모양이었다




  30. 너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머니 다섯 분이 카페에 들어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1잔, 따뜻한 라떼 2잔, 따뜻한 레몬차 1잔. 아주머니들의 주문 내역이었다. 머리가 복슬복슬한 아주머니가 계산을 하며 물었다. 이 레몬청 직접 담근 거예요? 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웃는 건 어렵지 않다. 정작 힘든 건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은 너무 잘 알아서 웃기 힘들다. 너무 잘 알아서 화나는 일도 많고, 웃을 일보다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아주머니 다섯 분도 서로에게 잘 아는 사람인 것 같다.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복슬’이었다. 복슬은 이틀 전 퇴사했다. 퇴사 기념으로 집 근처 미용실에서 가장 비싼 파마를 했는데 그게 지금 머리 스타일이었다. 레몬차 맛있다. 복슬은 나와 눈이 마주칠 때 그렇게 말했다. 복슬은 말할 때 둘러앉은 4명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는데 그때마다 복슬 머리 아래쪽이 대추장식처럼 달랑거렸다. 3년 전 키우던 푸들이 떠올랐다. 푸들은 귀가 저렇게 달랑거린다. 그리고 사람만 보이면 쫓아가 짖는다. 그러다 산책하던 말랑구트에게 물려 죽었다. 말리거나 제지할 틈도 없이. 순해서 동네를 걷다 마주칠 때마다 손을 핥던 말랑구트의 이름은 올망이었다. 하도 올망졸망 따라다닌다고 해서 올망이. 덩치는 컸지만 눈동자가 순했다. 행동보다 눈빛이 더 이름과 어울리던 반려견이었다. 


  올망이는 청포도맛 사탕을 좋아했다. 몇 번 핥고 오물거리다가 바닥에 놓고 굴렸다. 모래가 자글자글하게 붙은 청포도맛 사탕을 주워 저쪽으로 던지면 올망이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듯 고개를 들었다. 멀뚱멀뚱. 순둥순둥한 얼굴로. 그렇게 말랑구트는 무심하게 푸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그리고 놀라 멍하니 선 내게 꼬리를 흔들며 푸들을 내려놓았다. 부드럽고 나름 가지런하게. 예의를 다 하는 것처럼. 복슬은 나 아니면 누가 하겠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커피 값을 계산한 다음에도 자리에 가장 마지막으로 앉으며, 같은 말을 했다. 나 아니면 누가 하겠어. 복슬은 그런 마음으로 퇴사를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복슬은 지적장애 가정을 방문해 생활 지원하는 일을 했다. 그중 한 가정은 걷지 못하는 모녀가 살고 있었다. 엄마는 지적장애 딸을 돌보며 살았는데 섬뜩하리만치 집이 깨끗했다. 엄마는 7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척추가 부러졌다. 응급 수술을 했고 하체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됐다. 중학생 딸이 있었는데 이름은 심지영이었다. 


  지영이는 걸음이 빨랐다. 부산의 한 특수학급을 다니던 지영이는 교출에 성공해 3시간 만에 무려 20km를 걸었다. 지영이의 담임은 임용 5년 차 특수교사로 이름은 공 씨에 외자로 ‘연’을 썼다. 공연은 지영이가 없어졌다는 걸 안 다음 시동이 걸리지 않는 카렌스 안에서 보험사 차량을 기다리다가 냅다 교문 밖으로 달려 나가 사람들을 붙들고 물었다. 혹시 앞만 보고 걷는 아이 못 보셨어요? 여학생인데 키는 160쯤 되고 다리가 길어요. 머리는 그것보다 더 길고요. 파란색 운동화에 방울 무늬가 쨍한데. 헐렁한 멜빵 청바지에 노란색 줄무늬 후드 티를 입었어요. 혹시 못 보셨어요? 보험사 차량이 오는 30분 동안 공연은 그렇게 미친 여자처럼 거리를 달렸다.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고 나서야 공연은 자신이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무릎이 찢어져 피가 나는 것도 모른 채 공연은 지영이처럼 앞서 걷는 사람들의 뒷모습만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지영아. 너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입술을 핥는데 피맛이 났다. 

이전 29화 빈 노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