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것인가, '진격'할 것인가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리뷰

by 작가 전우형

거대한 위기 앞에서 인간 스스로는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하고 옆사람과 힘을 합치기 시작한다. 절망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절망 속에 멈춰 설 것인가. 절망을 뚫고 앞으로 내딛을 것인가. 거대한 벽에 몸을 숨긴 채 절망으로부터 도피하기에 자유에 대한 염원은 너무나 강렬했던 것일까. 세상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은 절망 속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을 사람들. 바로 개척자들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함께하던 사람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죽음의 의미는 무엇으로 설명하더라도 슬픔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계속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죄의식 안에서 피어난 꽃은 선명한 붉은빛이지만, 그 꽃을 바라보는 나는 피눈물을 흘린다. 잃은 것에 비해 얻은 것은 너무 보잘것없어 보여 슬프다. 생명은 그런 것.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 유한하기에 인간은 생명을 불태우는 장엄함을 최후의 동기부여로 삼는다. 누군가를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으려면, 자신이 먼저 죽음 앞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힘없는 자는 부모의 죽음을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둘러업고 달린 누군가에게 욕을 퍼부어도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었다. 용기가 없었다는 말에, 힘이 없었다는 말에 무어라 쏘아붙이고 싶은데 쏘아붙일 말이 없었다. 그것이 더 슬프고 더 절망적이었다. 그렇게 도망치던 사람들에게 가장 하기 쉬운 위로는 '어쩔 수 없었어'라는 말이다. 지금은 물러서야만 해. 시간이 흐르고 강해졌지만 그동안 위기는 함께 커진다. 결국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 지금 싸울 것인지, 아니면 돌아설 것인지.


도망칠수록 더 커지는 위기 앞에 결국 누군가는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용기가 아니라 만용처럼 여겨질지라도 누군가가 뛰어들지 않는 한 모두 등을 보인채 도망칠 뿐이니까. 희생을 딛고 기회는 피어난다. 새빨간 진실 앞에 고개 숙였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그동안 외면해왔던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너무나 거대한 적 앞에 그저 달아나야 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뭉칠 수 있게 된다.


'심장을 바쳐라' 심장은 곧 생명 그 자체다. 심장은 우리를 달리게 한다. 심장은 온 힘을 다해 피를 쥐어짜 온몸으로 보낸다. 그 피가 도달하지 못하는 곳은 망가진다. 우리 중 누군가는 이 세계의 심장이 된다.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벽 너머의 세상을 보라고 소리친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가 딛고 있는 대지를 넓혀나간다. 무엇이 진짜 세상인가. 우리는 무엇에 갇혀 살고 있는가. 우리가 모르는 세상은 무엇인가. 인간이 가진 호기심은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게 한다.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개척하고 삶의 영역을 넓혀간다.


새로움에 대한 추구는 안락하지 않다. 도전은 위험하고 신경 쓸 것 투성이며 수많은 좌절을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변화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자리에 머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인간을 불구덩이에 뛰어들게 하는가. 멈추지 않는 자.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자. 그것이 바로 '진격'의 본질이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이길 사람은 없다. 상상을 뛰어넘는 집요함은 때때로 경이롭고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가능케 한다. 그들은 그렇게 100년 감옥을 딛고 세상을 향해 뛰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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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격의 거인'에 나온다. 한편으로 잔인하지만, 그 잔인함이 세상의 어쩔 수 없는 본질이다. '거인'이라는 다소 판타지적 요소가 등장하지만, 거인의 본질은 감당할 수 없는 '위기'다. 거인을 피해 거대한 벽 안으로 자신의 영역을 축소시킨 인류는, 그 안에서 100년의 평화를 이뤄가지만 영원할 것 같은 평화가 무참히 짓밟히는 순간이 온다. 결국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더 좁은 곳으로 도망갈 것인가, 거인에게 빼앗긴 영역을 되찾을 것인가.


슬피 우는 어미에게 찢겨나간 신체 일부밖에 돌려줄 것이 없다. 그의 죽음에 의미를 찾으려는 부모에게 차마 진실을 말해줄 수도 없다. 의미 있는 죽음보다 개죽음이 일상인 벽외탐사였기에. 강력한, 집요할 정도로 강력한 목적의식이 없는 사람은 조사에 나설 수도 없었지만, 그런 그들도 한번 조사를 나갈 때마다 사라져 가는 동료들을 보며 인간적인 회의감을 품을 수밖에 없다.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 그 일에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째서 사람은 찢기고 뜯기면서도 자유의 날개를 펼치려 하는가? 자유의 의미와 열망을 보고 싶다면 '진격의 거인'에서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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