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몇 마디에 담긴 의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by 작가 전우형

사람은 관계에 의해 상처 받기도 하지만, 관계를 통해 치유되기도 한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추운 겨울에 피는 붉은 꽃, 그래서 춥고 외롭고 또 아름다운 꽃. 동백꽃 필 무렵에 대한 이야기다.




"그냥 그러려니 해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 동백이가 습관처럼 내뱉던 말이다. 고구마 한 박스를 삼킨 것처럼 사람 답답하게 하던 말.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해요. 누가 동백이를 좋아하겠어. 엄마도 버린 아인데."


'그냥 그런가 보다, 받아들여야지 뭐, 현실이 그런 걸.' 하지만 동백이라고 사람들의 그런 무시를, 버려진 채 자라난 자신의 처지를, 아무도 나를 환영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과 자기 평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싶었을까? 어떤 선택은 강요의 다른 이름이다. 때때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처럼 아프고 무겁고 고통스럽다.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양에 차이가 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을수록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의 무게는 많아진다. 조금 더 비참한 상황도 '내가 원래 그렇지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라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게 과연 좋은 것일까? 팍팍한 현실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총량에 대해서라면 '그러려니 하는' 마음가짐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에 찌들어 사는 것보다는 그냥 쿨하게 받아들이고 마는 게 인생 편하게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동백이는 7살 무렵 엄마에게 버림받는다. 27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하는 엄마의 말. "엄마 이름 절대로 말하면 안 돼. 알았지?" 그날 이후로 동백이에게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얼굴에 그림자가 보인다는 이유로 입양과 파양을 또 한 번 겪은 동백이는 '버림받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살아갈 동력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런 동백이가 남편도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가 되었다. 운명이 대물림된다고 믿고 싶지 않은데, 홀로 필구를 키우는 동백이의 삶을 보면 꼭 동백이를 홀로 키우던 정숙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래서 더 슬프다.


"동백이를 누가 좋아하겠어?"라는 자조 섞인 읊조림은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강한 편향적 사고가 심어져 있음을 반영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종종 왜곡되기도 하고, 엄마가 사실 나를 버린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데 27년이 걸린다. 충격적인 경험을 연달아 경험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그녀의 자아상에 '버림받은 아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두었다.


저항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우리는 어떤 경우에 저항을 포기하게 될까? 어린 시절의 자아상은 스스로 만들어낸다기보다도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다. 부모와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점차 부모가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자아상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스스로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내릴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 있어 부모의 평가는 절대적이다. 그런 시기에 부모에게 버림받는 경험은, 아이에게 자신이 얼마나 인정받지 못하고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인지에 대한 강력한 자기 암시를 심어준다. '나는 엄마조차 버린 아이야. 그런 나를 누가 좋아해 주겠어?' 가장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나를 버린 경험이, 자존감의 마지막 영역을 침식해버리고, 자존감이 무너진 아이는 스스로를 지키고 저항할 힘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저항을 포기했다는 의미,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는 의미의 '그냥 그러려니 해요'라는 대사는, 그래서 참 슬프게 들린다. 세월이 흐르고, 자신의 선택에 의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뭐"하고 이야기하는 보통사람의 것과, 동백이의 '그러려니'는 완전히 다른 함의를 가진다. 겉보기에는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그녀가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어깨를 움츠린 채 살지 않고서는 엄혹한 세상을 살아갈 방법이 없었던 그녀의 아픈 지난 세월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한 어떤 선택은, 선택이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랑만이 치유해줄 수 있다. 동백이의 오래된 상처와 극도로 낮추어진 모순적 자기 평가는, 용식이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점차 치유되어간다. '동백 씨가 참 장해요'라는 용식이의 말은 결국 동백이의 눈물을 터트렸다. 그 눈물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눈물은 슬픔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것은 치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사소한 칭찬조차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질 만큼 자신을 누른 채 살아왔던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을 것이다.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 순수하지만 철딱서니 없는 연하남의 미혼모에 대한 사랑은 그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치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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