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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May 22. 2024

심지

나는 가끔

내게 남은 심지가 얼마인지

가늠해보곤 한다

아직 탈 것이 남았는가

아니면 이제

가슴 지필 일 없는 인생인가


아주 오래전

그 심지가 똑하고 끊어진 적이 있었다

사랑목 줄기를 자르면

고무나무 가지를 자르면

거기서는 두 갈래 새순이 뻗어 나오던데

끊어진 내 심지에서는

마른 눈물조차 비치치 않았다


생장점까지 모두 도려낸 탓인가

애초부터 내 심지가 거기까지였던 탓인가

잉크가 다한 펜처럼 서서히 희미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자국만 남았다

그럼에도 심지가 다한 채로 살은 것은

그 희미한 자국에 기대어 잠드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내게 남은 심지가 얼마인지

가늠해보곤 한다

아직 탈 것이 남았는가

아니면 이제 영영

가슴 지필 일 없는 인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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