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보내며

에세이

by 작가 전우형

재촉하는 시간에 반기라도 들으라는 걸까. 첫눈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잠시 멈춰 있으라고. 두텁게 쌓인 눈은 그 자체로 행인의 발걸음을 묶어두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 이르면 하늘을 뒤덮은 은회색 결정들처럼 시간을 먹빛으로 얼려버리기도 하나보다. 112년 만의 기록적 폭설. 기상관측 이래 가을 최대 적설량. 가을과 겨울을 통틀어 수위권 안에 든다는 무겁고 거세었던 가을의 눈보라. 불과 이틀새 수많은 뉴스와 사고, 그리고 '최초', '기록적'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낸 2024년의 첫눈은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첫눈'이라는 낭만 가득한 이름에 어울릴 만큼 강렬한 춤사위를 흩날리고서. 나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떠올렸다. 눈앞에서 힘찬 기운으로 몸을 회전하는 무용수를 바라보았을 때처럼.


수요일에 함박눈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반가움에 젖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멎지 않네?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날이 기울 시각에도 잦아들지 않는 눈발을 보면서는 '고립'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잔잔한 우려와 걱정이 소리도 없이 키를 높이는 새하얀 벽 위로 파문처럼 동심원을 그렸다. 유리문을 열고 정강이까지 솟은 눈덩어리를 밀어보며 새삼 그 무게와 밀도에 내밀던 동작을 머뭇거렸고, 길을 내며 걸음을 옮긴 다음에는 몇 걸음 내딛지 못한 발자국을 뒤돌아봤다. 파인 발자국이 만들어낸 어둠과 나아갈 시간의 좌표를 비교해 보기라도 하듯이. 첫눈은 소복소복. 폭폭. 뽀득뽀득. 이 세 단어를 11월의 끝자리에 깊이 각인시켰다.


목요일에는 눈과 비가 교차로 대지를 적셨다. 길가에는 내린 빗물이 진창이 된 눈길을 따라 흘렀고, 음지에 쌓인 눈들은 더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눈은 습설이라고 했다. 습기를 머금고 있어 무게가 더 무겁고, 더 차곡차곡 틈 없이 서로의 몸을 묶었다. 피해가 심각했던 건 그런 무게 탓. 준비되지 않은 제설장비는 제 몫을 하지 못했고, 출근길에는 수령이 30년도 넘은 느티나무가 켜켜이 쌓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도로 쪽으로 고된 몸을 누이고 있었다. 가로수들의 가지는 부서져 있었고. 그 모습은 내게 섬뜩함을 주었다. '앞으로 나란히'를 한 채, 팔에 얹은 양동이에 서서히 눈이 채워진다면. 나는 팔을 움직일 수도 접을 수도 없고, 그 자세 그대로 버텨야만 하는데. 부르르 떨리는 팔을 내리지 못하게 벽에 묶인 채로. 팔이 부러지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있다면. 나는 잠시 눈을 감았고, 부르르 떨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역시, 인간은 식물일 수 없지. 아니, 적어도 나는 식물로 살아가기에는 인내심도, 강성도 부족하구나. 고된 몸을 누인 느티나무는 차라리 후련해 보였다. 이제 중노동에 가까운 시간으로부터 벗어났으니 축하받을 일이고, 이제 평안을 축복할 일만 남았구나. 삶이라는 건 어쩌면 매 순간 늘어가는 무게를 버텨내는 일. 그 무게가 팔다리를 부러트리기 전에 햇살이든, 바람이든, 그 무엇이든 무게를 덜어주기를. 녹여주기를. 흩어주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일.


금요일의 아침이 되자 눈의 질감이 달라졌다. 목요일까지 남아있던 온화함이 이제는 서슬 퍼런 냉기아래 대지를 단단하고 미끄러운 빙판으로 덮은 다음이었다. 불과 이틀 만에 '뽀득뽀득'은 '탁'으로 바뀌었고, 나는 가을의 종언이 어느덧 겨울의 시작으로 넘어갔음을 느꼈다. 은행나무 잎이 남지 않았고 첫눈은 그렇게 가을의 마지막을 드러냈다. 이틀밖에 남지 않은 11월은 기다리던 겨울과 마주했다. 첫눈에 반할 만큼 강렬한 눈보라와 함께.


첫눈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지 못한 모든 존재들에게 아픔과 고통만을 전해주는 듯했다. 다행히 내게는 애틋한 정취를 바라볼 틈이 있었다. 고립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며 서서히 길을 나설 때, 그래, 천천히 가면 되지, 하며 불안을 다독이던 그때 나는, 오늘의 풍경은 오늘뿐이므로 그것이 좋든 나쁘든 귀하고 유일하다는 말을 마음의 창호지에 비추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2024년 11월 27일의 눈을 만질 수 없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그를 내일 다시 만질 방법이 없다. 가슴 뛰던 감정도 그 순간을 놓치면 색도, 온도도 변한다. 마치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순간은 그 모습 그대로 결코 머물러주지 않는다. 손에 흐르던 냉기와 하얗게 언 볼의 감촉, 입김의 흐름과 머리끝의 곡선. 손끝의 갈라진 끝매음새까지도. 살아있다는 건 어쩌면 가슴 뛰는 감각을 마주하는 일일지 모른다. 그것을 잃었을 때 나는 한차례 완전히 죽었고, 고장 난 하늘처럼 움직이지 않는 시계의 건전지를 바꿔 끼운 채 멈추어 지냈다. 바스러진 태엽의 이를 하나하나 맞춰 끼우는 심정으로. 그러므로 온기를 나눌 대상과 장소, 그리고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소중했고, 평화를 위한 방을 굳건히 비워두는 일에는 품이 부족했다. 그러나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사랑방 하나를 넉넉히 비워두는 마음은 얼마나 따뜻한가. 11월의 끝은 예정돼 있었지만 불현듯 찾아온 겨울이라는 손님. 그리고 손 흔들 틈 없이 자취를 감춘 가을. 시간의 형(形)을 다듬듯 한해의 끝을 준비하는 오늘은 멈추었던 11월을 다시 흐르게 만들어 주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