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아이를 사랑하는데 걸리는 시간

태어날 때부터 부모는 아니었을테니까...

by 작가 전우형

태어날 때부터 부모였던 사람은 없다. 나이가 들고 덩치가 커지고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덩치 큰 아이에 불과했다. 심지어 결혼을 하더라도 부부가 될 뿐 당장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 강제로 부모가 되어야만 한다. 나에게는 그 변화가 참 쉽지 않았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기뻤지만 한편으론 떨떠름했다. 언젠가 아내와 나 사이에 사랑스런 아이가 생길거란 믿음은 있었지만 그것이 이토록 빨리 현실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나는 아내와 결혼을 했고 사랑하는 부부 사이가 되었지만 아직 부모가 될 준비는 안된 상태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부생활의 모든 중심이 아이에게로 이전된다. 일상생활은 육아를 기준으로 돌아가고 이 현실은 받아들여야만 한다. 아빠로써의 자각은 있었지만 나의 솔직한 심정은 '어라?'였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모든 관심을 아이에게로 쏟는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알 수 없는 박탈감을 느꼈다. 여전히 나는 부부로서의 삶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는데 이미 아내는 완벽한 엄마로 변모되어 있었다. 그것이 약간의 심리적 거리를 만들었다.


아이의 시작은 엄빠로부터 균등하게 물려받은 유전자였지만, 생명체로의 성장은 엄마 뱃속에서 살아온 10개월의 기간동안 일어난다. 태어나기 전부터 긴 시간동안 아이는 엄마의 일부로써 함께한다. 그래서 엄마에게 아이란 자신에게서 분리된 자신의 '일부'나 다름없다. 그것이 어찌보면 '모성애'라 부르는 위대한 감정의 근원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빠와 아이의 유대는 엄마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내 핏줄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아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초보 아빠들은 잘 모른다. 아빠와 아이의 유대는 긴 시간에 걸쳐 아이의 성장을 함께하며 서서히 발전한다.


모든 아빠들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초창기에 아빠로서의 태세전환에 실패했던 것 같다. 마음가짐이 그렇게 확 바뀌지 않았다. 솔직히 나에게 실망스럽기도 했다. 언제나 아내와 나 사이에 있는 갓난아이를 바라보며 내 아이니까 당연히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렇게 긴 시간동안 나는 양가감정에 시달렸다. 여전히 나는 아내와의 더 유대가 깊고 소중한데 아내에게는 아이가 전부인 것 처럼 보였다. 마치 굴러온 돌이 박혀있는 돌을 밀어낸 것처럼 복잡한 마음이 들곤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아이를 방해물로 여기는듯한 내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아빠로서의 내 위치를 완전히 받아들이는데는 10년이 걸렸다. 아이들에게 든든한 지원자로써 아빠의 존재가 필요할텐데 내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는 조급한 마음도 있었다. 물론 그 기간동안 해야 할 의무를 등한시한 건 아니었지만 의무감으로 아이를 보살피는 것과 아빠로서 아이를 보살피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그 변화를 세번째 아이가 서너살이 되었을 무렵 체감했다. 어느순간부터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변화된 것을 느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는 걸 조금씩 깨닫다보니 어느새 그것이 자연스러운 자녀사랑으로 자리잡았다.


나와 아이들의 관계는 다소 특이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부모라기보다 친구로 접근했다. 애초에 좋은 아빠가 되긴 틀려먹었다는 생각에 그저 친구로 지내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해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치기에 부족하다는 자기평가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다투기도 하고 장난도 많이 친다. 때때로 화도 내고 소심하게 삐치기도 한다. 아내 몰래 아이들과 함께 장난감을 사서 숨겨두기도 했다. 내가 하겠다고 닌텐도를 사서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웃는 것을 보면 나도 좋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소리지르고 심하게 떠드는 것은 싫었다. 그럴 때면 짜증도 낸다. 그렇게 내가 아빠로 성장하는동안 아이들도 함께 성장했다. 더불어 부녀관계와 부자관계도 함께 깊어졌으리라 본다. 아이들에게 나는 여전히 어려운 아빠일지 모르나 나는 내 나름대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 부족한 아빠로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지만 나는 아빠로서의 현재 위치에 나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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